사도행전 19장은 두 개의 시간을 나란히 소개한다. 하나는 두란노 서원의 두 해이고, 다른 하나는 에베소 극장의 두 시간이다. 회당에서 밀려난 바울이 두란노 서원에서 날마다 말씀을 강론했는데, 그렇게 두 해가 지나자 '아시아에 사는 이들이 유대인이든 헬라인이든 다 주의 말씀을 들었다'(행 19:9-10). 2년 동안 날마다 했다고 하니 줄잡아 육백 번이 넘는 강론이다. 고대 사본 가운데 하나인 베자 사본은 그 강론이 오전 11시부터 오후 4시까지였다고 덧붙인다. 모두가 더위를 피해 쉬던 한낮에 비어 있는 강당을 빌려 바울이 말씀을 풀었던 것이다.
같은 도시에서 전혀 다른 시간이 다시 소개된다. 아데미 신전 모형을 은으로 만들어 팔던 데메드리오는 바울 때문에 "우리의 이 영업만 천하여질 위험이 있을 뿐 아니라" 여신의 위엄까지 떨어질 것이라며 직공들을 선동했다(행 19:27). 밥그릇 불안이 신앙이라는 옷을 걸치고 선동하자 이만 명 넘게 들어서는 극장이 가득 찼고, 거기 모인 사람들은 두 시간 동안 "크다 에베소 사람의 아데미여"를 외쳤다(행 19:34). 그 자리는 그렇게 종교심 가득한 신앙의 구호로 가득했다. 그런데 누가는 여기에 서슬퍼런 한 줄을 남긴다. 거기 모인 무리의 태반이 "어찌하여 모였는지 알지 못하더라"(행 19:32). 군중들은 이유도 모른 채 그 소리에 휩쓸렸다는 말이다.
그로부터 이천 년이 지난 9월 어느 주일, 부산의 한 강단에서 설교자가 "CBS는 여러분 기독교 방송이 아닙니다"라고 외쳤다(노컷뉴스 2026년 9월 15일 기사). 2005년 정관에서 '기독교'를 지웠다는 주장이었지만, 현행 정관은 이 법인을 한글로 "기독교방송이라 한다"고 분명히 적고 있다(재단법인 CBS 정관 제1장 제1조). 그가 내민 근거는 20여 년 전 약칭 통일 기사와 AI 검색 결과였다. AI는 묻는 사람의 생각을 좀처럼 거스르지 않으니, 확증편향이 설교대 위에서 성령의 능력으로 변신한 격이다. 그사이 영상은 단톡방을 타고 번졌고, CBS에는 '적그리스도'라는 딱지가 붙었다. 공유 버튼을 누른 사람들 가운데 정관을 확인해 본 사람은 몇이나 될까? 에베소 극장 속 흥분한 군중들처럼 함성은 컸지만, 까닭을 아는 이는 드물었다.
<에베소의 광란을 멈춘 이는 뜻밖에도 도시의 서기장이었다. 그 공무원은 바울 일행이 신전 물건을 도둑질하지도 여신을 비방하지도 않았다는 사실을 먼저 짚고, 할 말이 있으면 법정으로 가라고 이른다(행 19:37-39). 이방인 공무원이 "네 이웃에 대하여 거짓 증거하지 말라"(출 20:16)는 계명을 교인들보다 먼저 지킨 것이다. 루터는 이 계명을 풀며 이웃에 대해 "모든 것을 가장 선하게 해석해야 한다"(마르틴 루터, 『소교리문답』, 1529, 제8계명 해설)고 가르쳤다.>
거짓 뉴스에 들썩이는 한국교회를 보며 사도행전 19장이 새삼 생생하게 읽힌다. 극장의 두 시간은 순식간에 사람을 모으고 흥분케 만들지만, 흩어져 아무것도 남기지 않는다. 두란노의 두 해는 소리 없이 쌓였지만, 한 지역 전체를 변화시켰다.
오늘 우리는 두란노의 묵직한 시간 안에 사는가, 선동하는 극장의 두 시간 속에 사는가? 신앙 있다 자신하는 교회와 그리스도인이라면 깊이 돌아볼 일이다. 그래서 오늘 나는 CBS를 위해, 그리고 그 강단의 설교자를 위해서도 기도한다. 함성의 크기로 진리를 재는 시대에 우리가 함성보다 말씀 곁에 오래 머무는 사람들이 되기를 바라서다.
최주훈 목사(중앙루터교회, CBS 자문위원)영문기사 보기 (View English Artic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