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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죽으면 애들 유령돼요"…시한부 베트남 엄마의 호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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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주

대한민국 교실이 빠르게 변하고 있습니다. 학령인구가 줄어드는 가운데 이주배경 학생 수는 가파르게 늘어, 이제 교실 20명 중 1명꼴로 이주배경 학생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들을 맞이할 준비는 미흡합니다. 국적 없는 '미등록 학생'에게 학교는 유일한 울타리지만 이들의 고립은 깊어지고 있습니다. 중도입국 학생들도 언어 장벽과 경직된 입시 제도에 가로막혀 사회 바깥으로 밀려나고 있습니다. CBS노컷뉴스는 5부작 기획을 통해 '이주학생 5% 시대'를 맞은 대한민국 공교육의 현실을 짚고, 나아가야 할 방향을 모색합니다.

[이주학생 5% 시대①]
자궁경부암 4기 엄마…'무(無)국적' 아이들 미래 걱정뿐
치료비에 퇴직금 바닥…쌀밥과 김으로 끼니 해결
한국서 태어난 두 아이…출생등록도 체류자격도 없어
학교가 유일한 버팀목…엄마와 딸이 기댈 곳은 공교육

인터뷰하는 레데리(43) 씨. 그는 자신이 죽더라도 아이들은 꼭 체류 걱정 없이 한국에 살길 바란다고 한다. 고성민 기자인터뷰하는 레데리(43) 씨. 그는 자신이 죽더라도 아이들은 꼭 체류 걱정 없이 한국에 살길 바란다고 한다. 고성민 기자
▶ 글 싣는 순서
①"저 죽으면 애들 유령돼요"…시한부 베트남 엄마의 호소
(계속)

"제가 세상을 떠나더라도 제발 우리 아이가 무사히 살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인천 서해구의 낡은 반지하 집에서 만난 베트남 출신 레데리(43)씨가 한국 사회에 남긴 이른바 '유언'이다. 자궁경부암 4기 진단을 받은 그는 최근 의료진으로부터 남은 시간이 6개월에서 1년가량이라는 설명을 들었다. 일주일에 두 번씩 고통스러운 항암·방사선 치료를 받고 있지만, 그가 더 두려워하는 것은 자신의 병보다 두 아이의 미래다.

초등학교 1학년인 딸 수현(가명·8)양과 동생 지훈(가명·6)군은 한국에서 태어나 자랐다. 일상에서 한국어를 쓰며 한국 사회에서 성장한 아이들이다. 엄마와 달리 베트남어는 전혀 하지 못하고 한국어로만 생활한다. 아이들 스스로도 자신을 한국인으로 여긴다고 레데리씨는 말했다.

그러나 두 아이는 출생 사실을 증명할 공식 기록이 없는 이른바 '무적자(無籍者)'다. 외국인 부모에게서 태어났지만 국내에 출생 사실을 등록하지 못했다. 베트남 국적도 취득하지 못해 사실상 어디에도 출생 사실을 증명할 공식 서류가 존재하지 않는다. 체류 자격도 등록돼 있지 않아 제도적 보호를 받기 어려운 처지다. 지방자치단체의 복지·돌봄·보호서비스를 이용하는 데도 제약이 따른다.

이런 상황에서 레데리씨마저 세상을 떠난다면 두 아이는 의지할 곳을 잃게 된다. 불법체류자였던 아빠는 본국으로 추방된 뒤 연락이 끊겼고, 양육비나 경제적 지원도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베트남으로 돌아가기도 쉽지 않다. 레데리씨의 부모는 모두 세상을 떠났고, 아이들을 맡길 만한 가족도 없다.

레데리씨는 아직 아이들에게 신분 문제를 제대로 설명하지 못했다. 한국에서 살아온 아이들에게 자신의 처지를 설명하는 것 자체가 쉽지 않은 데다, 한국인으로 여겨온 정체성에도 혼란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자신의 생명이 얼마 남지 않았을 수 있다는 사실도 아이들에게 말하지 못했다. 엄마 없이 홀로 살아가야 할 수도 있다는 현실을 받아들이기에는 아이들이 너무 어리기 때문이다.

레데리씨는 "최대한 항암 치료를 하면서 아이들이 조금이라도 클 때까지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며 "그냥 하루하루 버티는 게 전부"라고 말했다.

항암 치료를 시작하면서 일을 그만둔 레데리씨의 경제적 기반도 흔들렸다. 퇴직금과 모아둔 돈도 치료비와 생활비로 대부분 소진됐다. 한창 자라는 두 아이는 쌀밥과 김으로 끼니를 때우고 있다. 지금은 주변에서 소액을 빌려 생활하고 있지만, 이런 생활을 언제까지 이어갈 수 있을지는 알 수 없다. 보증금 100만원에 월세 20만원인 지금의 집에서도 조만간 나가야 할 처지에 놓일 수 있다.

태어난 곳은 한국인데…출생 공식 기록도 없어 '공백'

차례대로 레데리씨와 수현(가명·8)양, 동생 지훈(가명·6)군. 고성민 기자차례대로 레데리씨와 수현(가명·8)양, 동생 지훈(가명·6)군. 고성민 기자
수현양과 지훈군이 출생 사실을 공식적으로 증명하지 못하는 이른바 '유령' 신분이 된 배경에는 국내 출생등록 제도의 공백이 있다. 현행 가족관계등록법은 국민을 대상으로 가족관계등록 제도를 두고 있어, 외국인 부모에게서 태어난 아동은 국내에서 태어났더라도 이 제도를 통해 출생 사실을 등록하기 어렵다. 부모가 모두 외국인인 경우, 한국에서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한국 국적을 취득할 수 없는 실정이다.

그러나 국적과 관계없이 출생 사실 자체를 기록할 수 없는 현행 제도에는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이어져 왔다. 국적 취득이나 체류 자격과 관계없이, 태어날 장소나 부모를 선택할 수 없는 아동에게 출생 사실만큼은 공식적으로 기록할 수 있도록 보장해야 한다는 취지다.

출생 사실을 증명할 공식 서류가 없으면 공공·민간 영역에서 자신의 신원과 부모와의 관계 등을 입증하기 어렵다. 의료서비스 이용 등 건강권 보장에서도 사각지대에 놓일 수 있고, 향후 체류 자격을 취득하는 과정에서도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출생 사실이 공식적으로 기록되지 않는 문제는 아동의 생명과 권리 보호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실제로 2023년 6월에는 경기도 수원시의 한 아파트에서 출생신고가 되지 않은 영아 2명을 친모가 살해한 뒤 시신을 냉장고에 보관한 사실이 드러나 사회적 파장을 일으키기도 했다.

이와 관련해 헌법재판소는 지난 8월 27일 국회에서 관련 법을 규정하지 않아 제도적 공백 상태가 있다고 보고 입법부작위에 따른 위헌 판단을 내렸다. 국내에서 태어난 외국인 아동도 국적이나 체류 자격, 본국의 출생등록 여부와 관계없이 출생 사실을 기록할 수 있도록 보장해야 한다는 취지다.

'유령' 신분 아이들에게 유일한 버팀목은 공교육

슈퍼에서 먹고 싶은 간식을 고르라고 했더니 햄과 식료품을 고른 아이들. 고성민 기자슈퍼에서 먹고 싶은 간식을 고르라고 했더니 햄과 식료품을 고른 아이들. 고성민 기자
출생 사실을 공식적으로 증명하기 어려운 수현양과 지훈군에게 학교는 사실상 유일한 울타리다.

초·중등교육법은 미등록 아동도 체류 자격과 관계없이 공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관련 법령이 입학 기회를 보장하고 있다. 관련 시행령에 따르면, 외국인 등록 관련 서류가 없더라도 임대차계약서나 거주 사실 확인 서류 등을 제출하면 초등학교에 입학할 수 있다. 출입국 행정상 체류 자격이 확인되지 않더라도 공교육에서는 학생으로서 교육받을 기회를 보장받는 셈이다.

학교생활 과정에서 알게 된 외국인 학생의 신상정보는 출입국관리법상 통보 의무 면제 대상에 해당한다. 따라서 학교가 학생의 미등록 상태를 알게 되더라도 이를 반드시 출입국 당국에 통보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유엔(UN)의 '아동의 권리에 관한 협약'도 아동에 대한 차별 금지와 교육받을 권리를 규정하고 있다. 해당 협약에 따르면 모든 아동은 인종, 국적, 신분, 체류 자격과 관계없이 교육을 받을 권리가 있다. 헌법에 따라 체결·공포된 조약은 국내법과 같은 효력을 갖는다.

이런 상황에서 레데리씨는 수현양이 학교에 있을 때 가장 마음이 놓인다고 한다. 그는 "아이들이 학교에 있어야 안심이 된다"며 "최소한 추방당할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내후년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지훈군은 현재 어린이집에 '정원 외'로 다니고 있다. 다만 내국인 아동에게 적용되는 지원을 받지 못해 관련 비용으로 30만원을 부담하고 있다.

수현양도 학교에 가는 시간이 가장 즐겁다. 한국어가 서툰 어머니를 대신해 가장 많은 대화를 나눌 수 있는 대상이 학교 선생님이기 때문이다. 집에서 거의 말을 하지 않는 수현양은 "선생님이랑 대화할 때가 가장 편하다"고 말했다.

다만 학교에 다닌다고 해서 수현양과 지훈군의 향후 체류 자격까지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고등학교를 마치고 성인이 된 뒤에도 취업 등 자격 요건을 충족하지 못하면 체류 자격을 상실한다. 이 때문에 특정 조건을 갖추지 못할 경우 아이들은 스스로 출국해야 한다. 체류 자격을 얻지 못하면 아이들은 스스로 출국해야 한다. 출국하지 않을 경우 불법체류 상태가 돼 출국 조치된다.

교실에서는 안전하지만…학습권 보장은 부족한 현실

레데리 씨 가족이 거주하는 인천 서해구의 한 반지하 주택. 고성민 기자레데리 씨 가족이 거주하는 인천 서해구의 한 반지하 주택. 고성민 기자
학교는 아이들에게 안전한 공간이지만, 학교에 다닐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 충분한 교육권이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대한민국 공교육의 목적은 학생들이 자립적인 사회 구성원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언어·문화·사회적 역량을 길러주는 데 있다. 단순히 교실에 앉아 있을 기회를 제공하는 데 그치지 않고, 사회 구성원으로 성장하고 적응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는 취지다. 이를 위해 수현양과 지훈군 같은 이주배경 아동에게는 충분한 한국어 교육과 사회성 발달을 위한 지원이 필요하다.

그러나 수현양은 어휘력과 의사표현 능력이 또래에 비해 한참 부족하다.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충분히 전달하는 데 어려움을 겪으며, 하루 종일 말없이 휴대전화만 들여다보는 경우가 많다. 어머니와도 원활하게 의사소통하기 어려워 가정에서 언어를 익힐 기회가 충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수현양은 '어제'를 '아까'라고 말하는 등 일상에서 쓰는 어휘를 혼동하는 모습을 자주 보였다. 하고 싶은 말이 있어도 적절한 표현을 찾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한 번은 방과후 돌봄교실에서 다른 아이가 던진 공에 맞았지만, "하지 마"라고 말하거나 교사에게 도움을 청하지 못한 채 굳어 있던 적도 있었다. 목소리가 큰 친구 앞에서는 위축됐다가 집에 돌아와 펑펑 울기도 했다.

"휴대전화로 '틱톡(댄스 챌린지 등을 즐기는 플랫폼)'을 하고 싶은데 친구가 별로 없어요."

레데리씨를 돕고 있는 인천서해구가족센터 관계자는 "수현양의 어려움은 단순한 학습 문제를 넘어 또래 관계와 자기표현, 자기보호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며 "지속적인 언어·사회성·정서 지원이 필요하다"고 진단했다.
 
이에 따라 수현양 같은 이주배경 아동에게 공교육 차원의 체계적인 한국어 교육과 사회성 발달 지원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선생님 개인이 단순히 말동무를 해 주는 것 이상의 체계적인 지원이 필요하다는 취지다.

경기연구원은 '미등록 이주아동 지원방안 연구' 보고서에서 미등록 이주아동이 체류 자격 문제뿐 아니라 학교에서도 충분한 교육적 지원을 받지 못하는 '이중 공백'에 놓여 있다고 지적했다. 미등록 상태에 따른 제도적 제약에 더해, 학교에서도 필요한 교육적 지원을 충분히 받지 못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학교에 이주배경 아동 지원을 전담할 사회복지사를 배치해야 한다는 제언도 나온다. 초록우산 시흥다어울림아동센터 송지현 팀장은 국회 정책토론회에서 학교사회복지사 배치 기준이 저소득 내국인 아동 중심으로 마련돼 있어 이주배경 아동이 많은 학교에 필요한 인력이 충분히 배치되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송 팀장은 "사회복지사 배치 기준을 이주배경 아동 비율과 지원 필요도를 반영하는 체계로 전환할 것을 제안한다"며 "이를 통해 현장에서 지원이 필요한 미등록 아동을 보다 신속하고 실질적으로 발굴해 지원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레데리씨는 지금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아이들의 미래"라고 답하며 눈시울을 붉혔다. 그는 "내가 없더라도 아이들이 걱정 없이 한국에서 살 수 있었으면 좋겠다"며 "아이들이 나처럼 추방을 걱정하지 않고 사는 게 소원"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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