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얀트리 부산 해운대 리조트의 승강식 피난기구가 연결되는 피트층 내부 모습. 독자 제공 불길을 피해 피난기구를 타고 아래로 내려온 끝에 기다리고 있는 건 안전한 지상이 아니었다. 붉은 배관과 기계 설비가 얽혀 있는 캄캄한 '기계실(피트층)'이었다.
지난해 6명의 목숨을 앗아간 부산 반얀트리 리조트가 대수선 과정에서 설치한 승강식 피난기구가 화재 시 고립 위험이 높은 '피트층'으로 연결돼 있어 또다시 안전성 논란이 일고 있다. 소방 당국은 피트층에도 필요한 소방시설을 갖춰 피난 안전에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지만, 실제 화재 시 낯선 공간에선 동선 확보가 어려워 고립 위험성이 있다는 우려가 이어지고 있다.
피난기구 타면 배관·설비 얽힌 복잡한 기계실로
지난해 2월 14일 작업자 6명이 화재로 숨지는 참사가 발생한 반얀트리 부산 해운대 리조트. 20일 부산 기장소방서 등에 따르면 이곳에서 승강식 피난기구를 이용해 대피하면 지상 1층이 아닌 피트층으로 지상 1~2층 사이에 있는 피트실로 내려오게 된다.
피트층은 붉은색 대형 배관과 기둥, 각종 기계 설비가 대부분을 차지하는 공간이다. 실제 해당 리조트 내 피트실에는 천장과 벽면을 따라 각종 배관과 여러 기계 장치가 설치돼 있고, 평소 일반인 출입이 제한되는 것으로 파악됐다.
만약 이곳에서 불이 나 승강식 피난기구를 이용한 투숙객들은 이곳에서 다시 특별피난계단으로 이어지는 출입문을 찾아 지상 1층으로 이동해야 한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화재가 나 당황한 상황에서 연기까지 들어찰 경우 대피가 어려워질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소방 당국 "구조상 불가피…법적 예외 기준 적용해 안전 검증"
행정규칙 '피난기구의 화재안전기술기준'에 따르면 승강식 피난기 등은 설치 층에서 피난층까지 직접 연계되는 구조로 설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피난기구를 이용했을 때 건물 외부로 즉시 대피할 수 있는 지상 1층에 도착해야 한다는 의미다. 다만 규정은 건축물의 구조와 여건상 불가피한 경우에는 예외를 두고 있는데, 불가피한 상황에 대한 세부적인 내용은 명시되지 않았다.
소방 당국은 지상 1층 구조상 피난기구를 직접 연결하기 어려워 불가피하게 피트층을 경유하도록 설계됐으며, 필요한 소방시설과 특별피난계단을 갖춰 안전에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부산 기장소방서 관계자는 "지상 1층에는 수영장과 로비 등이 설치돼 있어 피난기구 하부에 필요한 방화구획을 설치할 공간이 없었다"며 "건축물 구조상 불가피한 경우 피트층을 피난경로로 이용할 수 있도록 하는 관련 예외기준에 따라 설치된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피트층에 소화전과 스프링클러, 자동화재탐지설비 등 소방시설이 설치돼 있고 특별피난계단도 갖춰져 있다"며 "최근 소방시설 완공검사를 위한 현장 확인 과정에서 피난 동선에 장애물이 없는지와 화재 시 출입문 자동 개방 여부 등도 확인했다"고 덧붙였다.
전문가들 "법적 기준 넘어 실질적 대피 안전 담보해야"
부산 기장군에 위치한 '반얀트리 부산 해운대' 전경. 정혜린 기자 하지만 전문가들은 평소 일반인 접근이 어려운 낯선 설비 공간을 피난 경로로 활용할 경우 화재로 인한 대피 상황에서 출구와 계단 위치를 찾기 어려울 수 있다고 우려를 표했다.
이용재 경민대 소방안전관리학과 교수는 "원칙적으로 피난 동선은 평상시 사람들이 이용하는 경로를 사용하는 게 바람직하다"면서 "화재를 피해 피난기구로 내려왔는데 배관과 설비가 얽힌 복잡한 공간이 나온다면 당황해 대피가 어려워질 수 있다. 이는 일반적이지 않은 대피 경로"라고 지적했다.
공하성 우석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도 "승강식 피난기구를 이용했을 때 일반적으로 건물 밖으로 바로 대피할 수 있어야 한다"며 "피트층에서 출구를 찾지 못하면 내부에 고립될 위험이 있는 만큼 실제 대피가 원활하게 이뤄질 수 있는지 살펴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특히 과거 대형 화재로 6명이 숨지는 사고가 발생한 만큼, 예외 규정을 적용해 피난 경로를 설계한 구조가 형식적인 기준 충족을 넘어 실제 투숙객 안전을 담보하는지 더욱 엄격하게 살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이영주 경일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최근 1층이 필로티 구조인 건물 등에는 이런 경우가 있지만 공간 구조와 피난계단 위치를 모르는 투숙객이 복잡한 설비 공간을 통과하는 건 현실적으로 어려울 수 있다"며 "피난유도선과 안내 표지, 비상조명 등을 통해 실제 대피 상황에서 누구나 쉽게 출구를 찾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반얀트리 부산 해운대 시행사 관계자는 "연내 개장을 앞두고 있는데 적법한 기준에 따라 전반적인 인허가를 받은 것으로 알고 있다"며 "현재는 과거 화재에 대한 대수선 사용 승인을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지난해 '6명 사망' 대형 화재 참사…시공·시행사 비리도
앞서 이곳 반얀트리 부산 해운대에서는 지난해 2월 14일 대형 화재 참사가 발생했다. 당시 사용승인이 난 리조트 건물에는 작업자 수백 명이 투입돼 대대적인 인테리어 공사가 진행됐고 안전관리를 소홀히 한 채 배관 절단 작업을 진행하던 중 불이 나 작업자 6명이 숨지고 27명이 다쳤다.
이 화재 참사와 관련한 경찰 수사 결과, 시공사와 시행사가 개장 지연을 막으려고 감리단을 로비와 회유·압박해 허위 보고서로 인허가를 받아낸 비리도 밝혀졌다. 이와 관련한 시공사와 시행사 대표, 기장군청 공무원, 소방공무원 등에 대한 경찰 수사 끝에 10여 명이 재판에 넘겨졌다.
반얀트리 부산 해운대 리조트는 해당 화재 이후 대수선에 따른 추가 사용승인 절차를 진행 중이며, 소방 당국은 소방시설 완공검사 신청에 대한 감리 결과 적합성 여부를 검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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