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 수십 개의 공유기가 설치된 모습. 부산경찰청 제공 해외에서 걸려 온 피싱 전화 발신번호를 국내 휴대전화 번호인 '010'으로 바꿔주는 중계기를 밀수하고 유통, 운영한 일당이 경찰에 대거 적발됐다. 부산의 한 원룸 배수구에서 발견된 유심(USIM) 조각이 범죄 조직 검거로 이어졌다.
부산경찰청 마약·국제범죄수사대는 통신사기피해환급법과 전기통신사업법 위반 혐의로 101명을 적발하고, 이 가운데 러시아 국적 총괄 유통책인 A(20대·남)씨 등 16명을 구속했다고 20일 밝혔다.
A씨 일당은 지난해 11월부터 올해 9월까지 해외 인터넷전화 발신번호를 국내 휴대전화 번호로 바꾸는 중계기를 하드디스크 등으로 위장해 국내에 밀반입한 뒤 원룸 등에 설치해 피싱 사기 조직의 범행을 도운 혐의를 받고 있다.
발신번호 변작 중계기를 이용하면 해외에서 걸려 온 전화도 국내 휴대전화 번호인 '010'으로 표시돼 수신자가 정상적인 국내 전화로 오인할 수 있다.
경찰에 따르면 A씨 조직은 중계기의 수령과 보관, 공급을 관리하는 유통책부터 조직원 모집책, 장비 전달책, 설치·운영책으로 역할을 나눠 체계적으로 범행했다.
조직원들은 러시아 구인·구직 게시판을 통해 모집됐으며, 러시아를 포함해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등 러시아계 국적 외국인들로 구성됐다.
이들은 텔레그램으로 연락을 주고받고 특정 장소에 장비를 놔두는 이른바 '던지기' 수법을 이용해 점조직 형태로 활동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른바 '던지기' 수법으로 중계기 등 장비를 전달한 후 연락을 주고받은 모습. 부산경찰청 제공 유심 제공자들은 유심 1개당 6만~12만 원을 받거나 대출을 조건으로 자신의 명의로 유심을 개통해 범죄 조직에 전달했다. 적발된 101명 가운데 84명은 내국인이었다.
경찰은 올해 2월 부산 연제구 연산동의 한 원룸 건물 배수구에서 다량의 유심 조각이 발견됐다는 정보를 입수해 수사에 착수했다. 이들 범죄 조직은 사용한 유심을 부숴 하수구 등에 버려온 것으로 파악됐다.
경찰은 해당 유심이 검찰 사칭 피싱 사기에 이용된 사실을 확인한 뒤 현장 조사와 주변 CCTV 분석 등을 통해 중계기 운영책을 특정했다.
또 장비 보관 창고 2곳과 조직원 주거지 등을 압수수색하고 중계기와 유심의 전달 경로를 추적해 관련자들을 차례로 검거했다. 경찰은 이 과정에서 중계기 400대와 대포폰 121대, 유심칩 5256개, 라우터 등 기타 장비 848대를 압수했다.
경찰 조사 결과 해당 조직이 제공한 중계기를 이용한 검찰 사칭 보이스피싱 범행으로 19명이 15억 원의 피해를 입은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은 현재까지 검거하지 못한 중국 국적 총책과 밀수책 등 해외 조직원을 계속 추적하는 한편 중계기의 국내 반입 경로 등을 추가로 수사할 방침이다.
부산경찰청 관계자는 "발신번호가 '010'으로 표시되더라도 정상적인 국내 전화라고 단정해서는 안 된다"면서 "수사기관을 사칭해 송금이나 현금 전달을 요구하면 통화를 중단한 뒤 해당 기관의 공식 연락처로 사실 여부를 확인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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