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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기자(들) 또는 경찰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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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암살자(들)' 스틸컷. 하이브미디어코프 제공영화 '암살자(들)' 스틸컷. 하이브미디어코프 제공
영화 제목을 '기자(들)'이라고 정했으면 어땠을까. '기자(들) 또는 경찰관(들)'이라고 해도 좋았을 것이다. 허진호 감독의 영화 '암살자(들)'의 주인공은 사실 기자와 경찰관이다. 박해일이 연기한 사회부장 김재환과 유해진이 맡은 형사 박철구. 신참 시절부터 알고 지낸 사이다. 박철구는 김재환을 '김 기자'라고 부른다.

1974년 8월 15일. 박철구는 광복절 기념식장에 들어가려는 수상한 인물을 발견한다. 비표는 없다. 제지하려 하지만 상부 지시로 들여보낸다. 잠시 뒤 총성이 울리고 대통령 영부인이 피격된다. 문책은 현장 경찰관에게 향한다. 박철구는 김재환에게 억울함을 풀어달라고 하소연한다. 김재환은 기사를 써달라는 부탁에 "기사 맡겨놨어요?"라고 받아친다.

기자와 경찰관은 각자의 자리에서 나란히 또는 경쟁하며 사건의 진실을 추적한다. 현실의 수사 체계는 달랐다. 경찰은 오랫동안 검찰의 지휘를 받으며 수사의 상당 부분을 담당해 왔다. 검찰이 주연이라면 경찰은 조연이었던 셈이다. 영화에서, 또 실제로도 합동수사본부를 꾸려 수사를 주도하고 결과를 발표한 이는 검사였다.

형사사법체계가 이달 2일 바뀌었다. 검찰을 대신할 중대범죄수사청이 신설됐다. 공소청은 보완수사도 맡지 못한다. 수사의 중심에는 경찰이 선다. 부담은 커졌다. 경찰청장 자리는 22개월째 비어 있다. 수사 전문성 저하와 사건 처리 지연, 기관 간 역할 공백 등 우려는 여전하다. 최근 만난 한 경찰관에게 말했다. 문제가 터지면 '거봐, 내가 뭐랬어'라는 반응이 쏟아질 것이라고. 대답은 짧았다. "저도 걱정입니다."

경찰의 책무는 수사권에만 있지 않다. 경찰법 제3조가 규정한 경찰의 첫 번째 임무는 '국민의 생명·신체 및 재산의 보호'다. '범죄의 예방·진압 및 수사'는 그다음이다. 수사라는 무대에서 경찰은 오랫동안 조연이었다. 시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무대에서는 늘 주연이었다.

21일 경찰의 날을 앞두고 강력범죄가 잇따랐다. 대통령은 20일 국무회의에서 치안 시스템의 대대적 정비를 주문했다. 인천 남동 흉기난동 사건의 피의자 최충락은 범행 전 두 달 동안 여섯 차례 신고됐다. 지난달 흉기소지 혐의로 입건됐다. 이달 6일 경찰 조사를 받았다. 범행 직전 보호관찰관과 면담할 때도 흉기를 소지하고 있었다.

서울 송파 장모 살인 사건에서는 아내의 가정폭력 신고에 따른 접근금지 조치가 지난달 30일 만료됐다. 아내는 혼인무효 소송을 제기한 상태였다. 경찰은 이달 6일 임시조치를 재신청했다. 세 차례 압수수색 시도는 모두 무산됐다. 경찰에 따르면 김성우는 접근금지 기간을 포함해 한 달 새 아내를 18차례 스토킹했다. 경찰 조사를 미룬 다음날 새벽 처가를 찾아가 장모를 살해하고 아내를 납치했다.

전북 전주 아내 살해 사건의 피해자는 6개월 동안 여덟 차례 경찰에 도움을 요청했다. 경찰은 남편을 고위험군으로 분류하고 스토킹 잠정조치 1~3호를 받도록 했다. 매주 한 차례 전화로 안부를 확인했다. 범행 당일 오후 5시 43분 안전 확인 전화에 응답이 없었다. 경찰은 직접 찾아가지 않았다. 범행은 오후 5시 30분부터 7시 사이 이뤄진 것으로 추정된다. 경찰은 이튿날 지인의 신고를 받고 숨진 사실을 파악했다.

범행의 경위는 달랐다. 위험 징후가 확인됐다는 점에서는 같다. 경찰이 이를 제대로 판단하고 대처했는지는 향후 수사와 감찰이 가릴 일이다. 모든 범죄를 경찰이 예방할 수는 없다. 결과를 알고 과거의 판단을 재단하는 것도 경계해야 한다. 현장의 경찰관에게는 법적 권한과 인력, 시간의 제약이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지나간 대응을 돌아보지 않을 수는 없다. 경찰이 가장 먼저 책임져야 할 것은 생명이다.

영화 '암살자(들)' 스틸컷. 하이브미디어코프 제공영화 '암살자(들)' 스틸컷. 하이브미디어코프 제공
영화 속 박철구는 비표 없는 인물을 불러 세웠다. 실제 사건에서도 문세광의 출입을 저지하려는 시도가 있었다. 끝내 입장은 허용됐고 비극이 벌어진 뒤 사람들은 되물었다. 그때 막을 수는 없었느냐고.

위험이 사건으로 번지기 전에 개입하기 위한 제도도 마련되고 있다. 지난해 4월 시행된 공공장소 흉기소지죄로 1년 반 동안 1164명이 검거됐다. 도로와 공원 등에서 정당한 이유 없이 흉기를 드러내 시민들에게 불안감이나 공포심을 일으킨 사람들이다. 실제 강력범죄로 이어졌을지는 알 수 없다. 경찰이 나설 수 있는 수단이 생긴 것만은 분명하다.

영화 속 김재환은 후배 기자에게 말한다. "볼 것만 보고, 쓸 것만 쓰고." 기자에게는 사건의 진실을 끝까지 확인할 책임이 있다. 경찰에게는 그보다 앞선 시간이 있다. 징후를 먼저 알아채고 범행을 차단해야 할 시간이다. 기자와 경찰관은 같은 사건을 좇는다. 바라는 결말은 조금 다르다. 기자에게 사건은 취재의 시작이다. 경찰에게는 막아야 했던 비극일 수 있다.

수사권 개편 후 처음 맞는 제81주년 경찰의 날이다. 경찰은 치안에 더해 수사에서도 주역이 됐다. 경찰의 실패는 기사가 된다. 경찰이 지켜낸 하루는 대개 뉴스가 되지 않는다. 기자도, 경찰관도 주인공이 될 일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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