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서 있는 퇴진'은 또 다른 위헌이다[기자수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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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임'과 '양도' 차이 잘 아는 尹…계엄 때 권한위임 해놓고 직접 지시
8일 정부‧여당에 권한위임, 韓대표는 '양도'인 것처럼 알려
반나절 만에 엇박자…행안부 장관 사표 수리, 국정원 1차장 교체
헌법에 따라 이미 질서정연한 탄핵 경험…정부‧여당은 어떤 '질서' 원하나

윤석열 대통령이 3일 밤 비상계엄을 선포한 가운데 4일 새벽 계엄군이 서울 여의도 국회 경내로 진입하고 있다. 박종민 기자윤석열 대통령이 3일 밤 비상계엄을 선포한 가운데 4일 새벽 계엄군이 서울 여의도 국회 경내로 진입하고 있다. 박종민 기자
박안수 육군참모총장은 지난 3일 밤 비상계엄 선포 당시 김용현 국방부 장관에게 윤석열 대통령의 위임을 받았는지 물었다.
 
얼떨결에 계엄사령관이 된 박 총장은 전국 단위 계엄은 지휘‧감독권이 대통령에게 있기 때문에 장관 지시를 그대로 받들어도 되는지 확인한 것이다.
 
윤 대통령은 과연 법률 전문가답게 '위임'을 제대로 활용했다. 그는 비상계엄 작전 진행 중에 수방사령관과 특전사령관에게 전화를 걸어 상황을 직접 점검했다는 구체적 증언이 있다.
 
초조함 때문이지, 아니면 고교 선배 국방장관도 못미더워서였는지는 알 수 없다. 그는 국정원 1차장에게는 "이번 기회에 다 잡아들여 싹 다 정리하라"는 섬뜩한 지령을 하달했다고도 한다.
 
어쨌거나 윤 대통령은 자신의 소중한 지휘‧감독권을 일시 빌려준 것일 뿐 권한 자체를 넘긴 게 아니라는 사실을 명확히 알고 있었다.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오른쪽)와 한덕수 국무총리가 8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민의힘 당사에서 국정 수습 방안에 대한 공동 담화문을 발표하고 있다. 박종민 기자국민의힘 한동훈 대표(오른쪽)와 한덕수 국무총리가 8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민의힘 당사에서 국정 수습 방안에 대한 공동 담화문을 발표하고 있다. 박종민 기자
그런 윤 대통령이 8일 정부‧여당에 권한을 위임했고,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는 이를 마치 권한 양도인 것처럼 발표했다.
 
한 대표는 "(윤 대통령이) 국민의 명령에 따라 임기를 포함해 앞으로의 정국 안정 방안을 당에 일임했다"면서 이른바 '질서 있는 조기 퇴진'을 약속했다.
 
하지만 대통령과 정부‧여당의 위장계약은 채 한나절도 지나기 전에 탄로났다. 윤 대통령은 이날 오후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의 사의를 수용하고 국가정보원 1차장 교체 인사를 단행했다.
 
야당은 한덕수 총리와 한동훈 대표의 사실상 권한대행 체제는 명백한 위헌이라고 맹렬히 비판했다.
 
기실 '질서 있는 퇴진'은 그 자체로 우리 헌법을 폄하하는 표현이다. 헌법 제65조는 대통령 등에 대한 탄핵 절차와 방식을 부족함 없이 규정했다.
 
국민은 박근혜 대통령 탄핵의 실전 경험을 갖고있고, 권력 이양 과정도 세계가 경탄할 만큼 평화로웠다. 이미 존재하는 정연한 헌법적 질서를 놔두고 추구하고자 하는 또 다른 질서는 도대체 무엇인가.
 
연합뉴스연합뉴스
질서 있는 퇴진론이 더 불온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협상할 수 없는 것을 협상했다고 하기 때문이다. 대통령은 국민의 주권을 위임받아 권한을 행사할 뿐, 그 권한은 배우자를 포함한 누구에게도 단 일부라도 양도할 수 없다. 박 전 대통령이 그래서 탄핵됐다.
 
애초 불가능한 일을 가능한 것처럼 국민을 속이는 행위, 더구나 내란죄 혐의가 짙은 중범죄자가 마치 형량 협상이라도 하려는 듯 당당한 태도에 주권자의 분노는 임계점을 넘어섰다. 

"과연 계엄을 한다면 어떤 국민이 용납하겠나. 저는 안 따를 것 같다"며 감쪽같은 기만술을 부렸던 전 국방장관을 비롯해 정부와 여당은 이미 국민을 너무도 많이 속이고 또 속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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