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곽종근 전 육군특수전사령관, 이진우 전 수도방위사령관, 여인형 전 국군방첩사령관, 박안수 육군참모총장, 윤석열 대통령, 김용현 전 국방부장관, 조지호 경찰청장, 이상민 전 행정안전부 장관. 윤창원·황진환 기자·대통령실 제공비상계엄의 준비와 실행 등 일련의 과정에서 윤석열 대통령을 가까이서 보좌한 '내란 키맨'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의 공소장이 공개됐다. '피고인 김용현'에 대한 검찰 특별수사본부의 수사 결과가 담긴 이 공소장에는 '12·3 내란사태'의 윤곽이 담긴 것으로 평가된다. CBS노컷뉴스는 '김용현 공소장'을 토대로 이번 사태를 문답 형식으로 정리했다.
①계엄, '언제'부터 몇 차례 논의?
공소장에 따르면, 첫 비상계엄 언급은 2024년 3~4월쯤이었다. 윤 대통령은 계엄 선포 약 8개월 전인 지난해 3월 말에서 4월 초순경 김 전 장관을 비롯한 참모들을 만나 처음 계엄을 언급한 것으로 보인다. 당시 윤 대통령은 참모들에게 "비상대권을 통해 헤쳐 나가는 것밖에는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고 한다.
그날을 시작으로, 지난해 4월 중순, 5월에서 6월경, 8월 초순경과 10월 1일, 11월 9일과 24일, 30일, 그리고 계엄 선포 나흘 전인 11월 30일에도 윤 대통령은 주변 참모들이나 군 장성들에게 "헌법상 비상조치권, 비상대권을 써야 이 난국을 해결할 수 있다"는 취지로 말했다. 계엄 선포 직전까지 윤 대통령은 최소 9차례에 걸쳐 '계엄', '비상대권', '비상조치'의 시급성을 피력했다.
②도대체 '왜'?
윤석열 대통령. 연합뉴스"우리 사회 곳곳에 암약하고 있는 종북주사파를 비롯한 반국가세력들을 정리하지 않고는 대한민국의 미래가 없다". 윤 대통령이 평소 자주 하던 말이라고 한다.
윤 대통령은 시국 상황을 걱정하며 '반국가세력', '민주노총', '좌익세력, '언론계' 등을 언급하면서 "이 사람들에 대한 조치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치브로커 명태균씨의 '공천개입 의혹'과 검사 및 감사원장들이 줄줄이 탄핵되는 상황도, 야당의 쟁점법안 단독 처리 등도 윤 대통령의 걱정거리였다.
또 극우세력이나 일부 유튜버들이 주장하는 '부정선거 의혹' 역시 비상계엄의 배경으로 작용했던 것으로 조사됐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서버 등이 해킹에 취약하다고 판단했던 윤 대통령은 비상계엄을 통해 부정선거를 증명할 단서를 찾으려 했던 것으로 보인다. 김 전 장관은 여인형 방첩사령관에게 "부정선거와 여론조작 증거를 밝혀내면 국민들도 (계엄을) 찬성할 것"이라며 "선관위의 전산자료를 확보해 부정선거의 증거를 찾아야 한다"고 지시하기도 했다.
③'누가' 깊숙이 개입?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 윤창원 기자'키맨'은 김 전 장관으로 지목된다. 김 전 장관이 가장 먼저 포고령과 계엄 선포문, 대국민 담화문 등의 초안을 작성하고 윤 대통령에게 보고한 것으로 조사됐다. 또 계엄 선포 당시 전군주요지휘관회의를 열고 "명령에 따르지 않으면 항명죄로 처벌한다"고 군 관계자들에게 으름장을 놓기도 했다.
여 사령관, 곽종근 당시 육군특수전사령관, 이진우 당시 수도방위사령관 등도 핵심 역할을 수행한 것으로 검찰은 보고 있다. 지난해 6월 서울 삼청동 안가에서 김 전 장관은 이들을 윤 대통령에게 "대통령께 충성을 다하는 장군"으로 소개했다.
아울러 조지호 경찰청장과 김봉식 서울경찰청장도 계엄 당일 저녁, 대통령 안가에서 윤 대통령의 계엄 지시를 받으며 추후 가세한 것으로 검찰은 판단하고 있다.
④준비는 '어떻게'?
구체적인 계엄 준비는 지난해 11월 24일 본격 시작됐다. 11월 24일부터 12월 1일까지 김 전 장관은 계엄 선포문과 대국민 담화문, 포고령 초안 등 '계엄 문건' 작성에 돌입했다.
12월 1일, 계엄군을 투입할 구체적인 장소가 특정됐다. 김 전 장관은 그날 오후 곽 사령관에게 "계엄 상황이 발생하면 국회, 중앙선거관리위원회, 더불어민주당 당사, 여론조사업체 '꽃'에 육군특수전사령부 부대를 투입시켜 시설을 확보하라"고 지시했다. 이에 곽 사령관은 국회, 선관위 등에 각각 투입할 부대를 미리 특정했다.
비슷한 시기, 계엄 당일 동원할 군인과 경찰 인력에 대한 계획도 윤곽을 드러냈다. 방첩사, 특전사, 수방사, 정보사령부 등에 소속된 무장 군인, 그리고 경찰청 및 서울경찰청, 경기남부경찰청 등에 소속된 경찰관들의 동원 계획이 세워졌다.
곽 사령관을 비롯한 여 사령관, 이 사령관 등은 부하들에게 '북한 도발에 대비하라'는 취지의 거짓 지시를 하며 계엄에 대비한 것으로 파악됐다.
⑤'타깃'은 누구?
지난해 12월 3일 오후 10시 20분쯤 윤석열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한 뒤 자정 무렵, K1 기관단 총으로 무장한 계엄군이 국회의사당 본관 정문으로 진입을 시도하며 국회 관계자들과 시민들이 이를 저지하며 대치했다. 박희영 기자계엄군의 '타깃'도 정해졌다. 국회, 선관위 직원들, 그리고 여야 주요 정치인들이 그 대상이었다. 우선 김 전 장관은 여 사령관에게 이재명 민주당 대표, 한동훈 국민의힘 전 대표, 우원식 국회의장 등 주요 정치인 10여 명을 체포, 구금하라고 지시했다. 이를 위해 김 전 장관은 국군방첩사령부 수사관 50명, 경찰 수사관 100명, 국방부 수사관 100명 등 총 250명으로 구성된 체포조를 운영하려 했다.
또 이들은 중앙선관위 직원 30여명을 선별해 불법 체포하려 했으며, 국회와 민주당사, 여론조사업체 꽃 등에 대한 장악도 꾀했다. 김 전 장관은 조지호 경찰청장 등에게 '2200 국회', '2230 민주당사', '비상계엄', '여론조사 꽃' 등 계엄군이 출동할 시간과 장소 등 비상계엄 계획이 기재된 문서를 건네주며 '잘 협조하라'고 당부했다.
⑥계엄 '당일' 막을 순 없었나?
박종민 기자계엄 선포 당일 점심부터 오후 9시 33분까지 윤 대통령은 국무총리를 비롯한 국무위원들에게 소집 이유를 알리지 않은 채 '대통령실로 출석하라'고 지시한 것으로 드러났다.
국무위원들이 시간 차를 두고 속속 소집됐고, 계엄 소식을 들은 일부는 이를 만류하기도 했다. 한덕수 당시 국무총리는 "(비상계엄을 선포할 경우) 경제가 아주 어려워진다. 대외 신인도 하락이 우려된다"며 반대했다. 조태열 외교부 장관도 "외교적 영향뿐만 아니라 70년 동안 대한민국이 쌓은 성취를 무너뜨리는 것"이라고 우려했다.
하지만 윤 대통령은 끝내 뜻을 굽히지 않았다. 윤 대통령은 "종북 좌파들을 이 상태로 놔두면 나라가 거덜 나고 경제든 외교든 아무것도 안 된다"고 말했다. 김 전 장관도 조태열 장관에게 "이미 군대가 대기하고 있다. 언론에도 22시에 특별담화가 있다고 이미 얘기해 놨기 때문에 더 이상 계획을 바꿀 수 없다"고 말했다.
"나는 간다"는 말과 함께 떠난 윤 대통령은 결국 12월 3일 오후 10시 23분쯤, 대국민 담화문을 발표하며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⑦'숫자'로 본 계엄…4749명, 5만 7천발
지난해 12월 4일 새벽 국회에 도착한 계엄군 차량 안에서 '실탄통'으로 추정되는 함이 자물쇠에 잠긴 채 포착됐다. 함 안에 실제 실탄이 있었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서울경제신문 제공계엄의 선포와 함께, 곧장 대규모의 인력과 장비가 동원됐다. 경찰 3144명과 군 1605명, 총 4749명이 동원됐다. 세부적으로는 특전사 1109명, 수방사 282명, 방첩사 164명, 정보사 약 40명, 국방부 조사본부 10명으로 알려졌다.
또 "실탄 지급은 없었다"는 윤 대통령의 해명과는 달리, 검찰 조사에 따르면 최소 5만 7천여 발의 '실탄'이 동원됐다. 특전사가 계엄 당시 가장 많은 실탄을 동원했는데, 곽 사령관의 지시를 받은 이상현 1공수여단장은 계엄 당일 오후 11시 57분쯤 140명을 국회로 출동시키면서 자신의 지휘 차에 소총용 5.56㎜ 실탄 550발과 권총용 9㎜ 실탄 12발을 실었다. 707특수임무단도, 3공수여단과 9공수여단도 실탄으로 무장했다.
⑧'적법 계엄'? 곳곳서 드러난 '불법' 정황
'실탄' 동원 뿐만 아니라, 계엄의 '불법성'은 공소장 곳곳에서 드러났다. 공소장에는 계엄군이 '도끼'와 '야구방망이', '공포탄' 등을 동원하려 한 내용이 담겨있다.
계엄 선포 직후 윤 대통령의 독촉을 받은 곽 사령관은 707특수임무단장, 1공수특전여단장에게 "대통령님 지시다. 문짝을 도끼로 부수고서라도 안으로 들어가서 다 끄집어내라"는 등의 지시를 내렸다. 곽 사령관은 시민들에게 '공포탄'과 '테이저건'을 사용할 것까지도 건의한 것으로 조사됐다. 뿐만 아니라 윤 대통령은 국회 본회의장에 의원들이 모여들자 이 사령관에게 직접 전화해 '총을 쏴서라도 문을 부수고 들어가서 끌어내라'고도 지시했다.
지난해 12월 3일 비상계엄 직후 선관위에 배치된 계엄군(왼쪽). 선관위 제공·연합뉴스 선관위 직원들에 대한 체포 방식의 위법성도 드러났다. 계엄군은 '알루미늄 야구방망이 3~4개, 케이블타이, 안대, 복면, 밧줄' 등을 준비하고, 이들을 포승줄로 묶고 얼굴에 복면을 씌운 후 수도방위사령부 벙커로 이송하려는 계획까지 세웠다. 영장도 없이 선관위 직원들에게 휴대전화를 제출하게 하고, 유선전화를 사용하지 못하게 한 것 또한 직권남용 권리행사 방해 혐의에 해당한다.
또 검찰은 계엄을 심의한 국무회의의 불법성도 지적했다. 계엄법 등에 따르면 계엄 선포와 그 해제는 국무회의 심의를 거쳐야 하는데, 윤 대통령과 김 전 장관은 비상계엄 선포 안건을 국무회의에 의안으로 제출하지 않았고, 구성원(국무위원) 11명이 모두 모이기 전에 한 총리 등 소수 국무위원과 비공식적으로 의견을 교환한 게 전부였으며 국무회의록 조차 작성되지 않았다. 검찰은 김 전 장관 공소장에 '하자 있는 국무회의'라고 적시했다.
⑨검찰 "위헌·위법한 계엄" 결론…남은 과제는?
"비상계엄은 위헌, 위법했다". 검찰이 내린 결론이다.
검찰은 공소장에 "대통령 윤석열이 선포한 비상계엄은 헌법과 계엄법에서 정하고 있는 비상계엄 선포 요건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명시했다.
검찰은 또 윤 대통령이 "헌법상의 국민주권제도, 의회제도, 정당제도, 선거관리제도, 사법제도 등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파괴하려는 국헌문란의 목적으로, 헌법과 법률에 위반되는 비상계엄을 대한민국 전역에 선포했다"고 덧붙였다.
남은 과제는,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의 윤 대통령 신병 확보다. 지난 3일 대통령 경호처의 저지로 공수처의 체포영장 집행이 불발됐다. 체포영장의 유효 기한은 오는 6일까지다. 남은 시간은 이틀, 공수처가 윤 대통령 체포에 성공해 수사에 박차를 가할 수 있을지 국민들은 지켜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