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과 윤석열 대통령. 연합뉴스'12·3 내란사태'의 핵심 역할을 했던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구속기소)의 공소장에는 이번 내란사태에 대한 모의와 준비 과정, 구체적 실행 등 전반적인 조사 내용이 담겼다.
특히 윤석열 대통령과 김 전 장관은 더불어민주당 등 야권이 압도적 다수를 차지한 국회 상황을 '의회 독재'로 판단해 비상계엄을 통해 전세 역전을 노렸고, 계엄의 명분으로 부정선거 의혹을 들춰내려 한 정황 등도 공소장에 고스란히 담겼다.
"국회가 패악질"…野공세를 '계엄'으로 막으려
4일 CBS노컷뉴스가 입수한 김 전 장관의 공소장에 따르면, 윤 대통령이 '비상 대책' 등 특단의 대책을 언급하며 계엄의 필요성을 강조한 것은 지난해 11월 24일이다.
지난해 3~4월 제22대 국회의원 선거의 야권 승리가 확실시되던 시점부터 '비상대권'을 언급하긴 했지만, 검찰은 비상계엄 선포 9일 전부터 윤 대통령의 계엄 관련 발언 수위가 고조됐다고 판단하고 있다.
윤 대통령은 11월 24일 관저에서 김 전 장관과 만나 "이게 나라냐, 바로 잡아야 한다. 국회가 패악질을 하고 있다"며 "미래세대에 제대로 된 나라를 만들어 주기 위해서는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고 비상대책의 필요성을 강조했다고 한다.
당시에는 정부의 예산안이 국회에서 대폭 삭감되는 데다, 정치브로커 명태균씨의 공천 개입 의혹이 '명태균 게이트'로 커지던 시점이다. 또 윤 대통령의 골프 외교 거짓말 논란 등으로 여론은 더욱 악화돼 지지율은 20%대 초반에 머물렀고, 도심에서는 대규모 대통령 퇴진 집회가 매주 열리기도 했다.
윤 대통령의 말을 들은 김 전 장관은 비상계엄 선포가 임박했다고 판단해 구체적인 준비에 들어갔다. 11월 24일부터 12월 1일까지 계엄 선포문과 대국민 담화문, 포고령 초안 등을 작성했다.
그리고 군 조직 내 '충암파' 여인형 방첩사령관에게 조만간 계엄령이 선포될 것이란 사실을 전달했다. 김 전 장관은 "이것은(비상계엄) 대통령이 가지고 있는 헌법상 비상대권의 일환"이라며 "국군통수권자인 대통령이 하시는 일이니 전혀 문제가 없다"고 설득한 것으로 나타났다.
부족한 계엄 명분, '부정선거'로 돌파
윤석열 대통령이 당선인 신분이었던 지난 2022년 4월 11일 오후 경북 상주시 중앙시장을 방문해 어퍼컷 세레머니를 하고 있다. 인수위사진기자단거대 야당의 공세나 저조한 지지율 등을 타개할 방법으로 비상계엄을 기획한 것으로 보이지만, 문제는 명분이었다. 비상계엄은 '전시·사변 또는 이에 준하는 국가비상사태에 있어서 병력으로써 군사상의 필요에 응하거나 공공의 안녕질서를 유지할 필요가 있을 때'에만 선포할 수 있도록 헌법에 규정돼 있다.
검찰 특별수사본부도 김 전 장관의 공소장에서 야당의 공직자 탄핵이나 쟁접법안 단독 처리, 간첩법 개정 반대, 정부의 예산 삭감 등이 "헌법상 계엄을 선포할 수 있는 요건에 해당하지 않고, 계엄법상 비상계엄을 선포할 수 있는 요건인 '사회질서가 극도로 교란되어 행정 및 사법 기능의 수행이 현저히 곤란한 경우'나 '군사상 필요에 따르거나 공공의 안녕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경우'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이에 윤 대통령과 김 전 장관이 떠올린 방법은 '부정선거'였던 것으로 보인다. 야권이 다수 의석을 차지한 선거 결과가 잘못된 것임을 나타낸다면, 야권을 일거에 몰아낼 수 있어 정치적 어려움을 해결하는 한편 계엄의 명분도 어느 정도 챙길 수 있다는 판단이 작용했을 것이란 분석이다.
김 전 장관은 여 사령관에게 "국회를 계엄군이 통제하고, 계엄사가 선거관리위원회와 여론조사 꽃 등의 부정선거와 여론조작의 증거를 밝혀내면 국민들도 (계엄을) 찬성할 것"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계엄령을 발령해서 국회를 확보하고, 선관위의 전산자료를 확보해 부정선거의 증거를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계엄령으로 악화될 게 뻔한 여론을 야권의 부정선거 의혹을 띄워 대응하는 것으로 내란을 기획했다고 해석할 수 있는 대목이다.
'충성' 다한 사령관들, 국회와 선관위로 일사불란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곽종근 전 육군특수전사령관, 이진우 전 수도방위사령관, 여인형 전 국군방첩사령관, 박안수 육군참모총장, 윤석열 대통령, 김용현 전 국방부장관, 조지호 경찰청장, 이상민 전 행정안전부 장관. 윤창원·황진환 기자·대통령실 제공윤 대통령은 지난해 6월 서울 삼청동 안가에서 김 전 장관과 여 사령관, 곽종근 특전사령관, 이진우 수도방위사령관, 당시 합참 차장이었던 강호필 사령관과 함께 저녁 식사를 했다. 김 전 장관은 이 자리에서 윤 대통령에게 "이 4명이 대통령께 충성을 다하는 장군"이라고 말한 것으로 조사됐다.
'충성을 다하는 장군'들은 비계엄 당시 핵심적인 역할들을 수행했다. 곽 사령관은 707특수임무단 병력 197명과 1공수특전여단 269명을 국회로 출동시켰다. 국회의 헬기 진입과 국회 경내 월담도 지시한 것으로 조사됐다.
곽 사령관은 또 비상계엄 선포 이튿날 오전 0시 20분쯤 윤 대통령으로부터 "문짝을 도끼로 부수고서라도 안으로 들어가 다 끄집어내라"는 지시를 받았고, 0시 20분에서 0시 57분 사이 당시 박안수 계엄사령관에게 시민들을 제압할 목적으로 공포탄과 테이저건의 사용 승인을 건의한 정황을 검찰이 포착하기도 했다.
이 사령관의 경우 수방사 간부들에게 대테러 특수임무부대 16명을 국회로 출동시키도록 하면서 소총 15정과 권총 15정, 저격소총 1정, 5.56㎜ 보통탄 1천920발, 5.56㎜ 예광탄 320발, 9㎜ 보통탄 540발, 슬러그탄 30발, 엽총용 산탄 30발, 섬광폭음수류탄 10발, 5.56㎜ 공포탄 360발을 소지하도록 했다.
민주당 이재명 대표와 당시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 우원식 국회의장 등 요인 체포조도 운영됐다. 여 사령관은 경찰에 요인들의 위치를 물으면서 방첩사 수사관 50명을 보냈고, 경찰과 국방부도 각각 100명씩 요인 체포조를 지원했다고 검찰은 판단하고 있다.
선관위에는 정보사령부 요원들이 가장 먼저 출동했다. 이들은 알루미늄 야구방망이와 케이블타이, 안대, 복면, 밧줄 등을 준비했다. 특전사 소속 병력과 방첩사 병력, 경찰들 역시 선관위로 출동해 점거했고, 방첩사 요원들은 선관위 서버 반출을 시도했다.
계엄 해제 후에도 김용현 '병력 투입' 가능 여부 재확인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 국회사진취재단국회에서 비상계엄 해제요구안이 가결된 시각은 4일 오전 1시 1분쯤. 그렇지만 윤 대통령은 비상계엄 해제를 발표하지 않고 합동참모본부 지하 결심실에서 회의를 했다.
이 자리에서 김 장관은 곽 사령관에게 선관위에 병력을 재차 투입할 수 있는지를 문의했다고 한다. 곽 사령관이 '어렵다'는 취지로 답변하자, 김 전 장관은 그제야 포기를 선언했다는 게 검찰의 수사 결과다.
김 전 장관은 "대통령님의 명을 받들어 임무를 수행했다. 그러나 중과부적으로 우리가 원하는 결과가 되진 않았지만 그래도 우리는 우리의 할 바를 다했다고 생각한다"며 "어려운 여건에서 임무를 완수해 준 우리 수방사, 방첩사, 특전사, 지작사 그리고 여기 함께하고 있는 지통실(지휘통제실) 참모들, 합참의장님 포함 모든 분들께 고맙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김용현 시작으로 '계엄 사령관' 줄기소…尹만 버텨
검찰 특수본은 김 전 장관과 여인형·곽종근·이진우 사령관들을 구속상태로 줄줄이 기소했다. 김 전 장관을 지난달 27일 가장 먼저 기소했고, 이어 여·이 사령관을 지난달 31일, 곽 사령관은 전날(3일) 각각 기소했다.
이들에게는 모두 내란중요임무종사 및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혐의가 적용됐다. 내란중요임무 종사 혐의가 인정되면 최대 사형에 처하거나, 무기징역 또는 5년 이상의 징역이나 금고에 처할 수도 있다.
하지만 정작 내란 수괴 혐의를 받는 윤 대통령은 아직 수사기관의 조사를 한 차례도 받지 않았다. 소환통보에도 불응해,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가 체포영장까지 발부받아 집행을 시도했지만 경호처의 저지로 불발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