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훈 '항명' 무죄로 'VIP 격노' 수사 새 국면 맞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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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무죄는 곧 '尹의 유죄' 의미일 수도

1심 재판부 "정당한 명령 아니었다"…"상관명예훼손도 고의성 없어"
부실수사 정황도 지적…포렌식 등 면밀한 조사 부족, 장관 대면조사도 안 해
해병사령관도 모순적 진술…최초 진술과 다르고, 본인 업무수첩과도 배치
중범죄 누명 씌운 주요 직위자 등 책임추궁 불가피…직권남용, 위증죄 등 예상
최종 종착점은 尹 외압설…시민단체 '채 상병 국조, 특검법' 재추진 촉구

해병대 채 상병 순직 사건과 관련해 항명 및 상관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된 박정훈 전 해병대 수사단장(대령)이 9일 오전 서울 용산구 중앙지역군사법원에서 열린 1심 선고공판에서 무죄를 선고 받은 후 법원을 나서고 있다. 황진환 기자해병대 채 상병 순직 사건과 관련해 항명 및 상관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된 박정훈 전 해병대 수사단장(대령)이 9일 오전 서울 용산구 중앙지역군사법원에서 열린 1심 선고공판에서 무죄를 선고 받은 후 법원을 나서고 있다. 황진환 기자
채 상병 순직사건과 관련해 항명 등의 혐의로 기소된 박정훈 전 해병대 수사단장(대령)이 1심 무죄 판결을 받음에 따라 반대급부로서 군 검찰의 무리한 기소가 비판대에 올랐다.
 
아울러 무리한 기소의 배경은 윤석열 대통령의 '격노'였다는 박 전 단장 주장이 힘을 얻게 되면서 정권 외압설에 대한 수사 필요성이 더욱 커졌다.
 
중앙지역군사법원은 9일 1심 판결에서 박 전 단장이 2023년 8월 당시 김계환 해병대 사령관으로부터 채 상병 사건 수사기록의 경찰 이첩을 보류‧중단하라는 지시를 받고도 항명했다는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이첩 보류 명령은 명시적이지 않았고, 이첩 중단 명령은 명시적이긴 하나 정당한 명령이 아니었다는 취지로 판시했다. 
 
상관명예훼손 혐의에 대해서도 박 전 단장의 기자회견 등의 발언이 가치중립적 표현이었으며 고의성도 없었다는 식의 결론으로 무죄 판결했다.
 
재판부는 피고 측이 제기한 군 검찰의 공소권 남용 주장은 배척했지만 전체 판결에 별 영향을 주지 못했다.
 
재판부는 군 검찰의 부실 수사 정황을 지적하기도 했다. 당시 이종섭 국방부 장관은 상관 명예훼손의 피해자임에도 대면조사가 전혀 이뤄지지 않았다는 게 대표적이다.
 
해병대 채모 상병 순직 사건과 관련해 항명과 상관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된 박정훈 전 해병대 수사단장(대령)이 9일 오전 서울 용산구 국방부 군사법원에서 열린 1심 선고 공판에서 무죄를 선고 받은 뒤 어머니 김봉순씨와 포옹하며 기쁨을 나누고 있다. 연합뉴스해병대 채모 상병 순직 사건과 관련해 항명과 상관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된 박정훈 전 해병대 수사단장(대령)이 9일 오전 서울 용산구 국방부 군사법원에서 열린 1심 선고 공판에서 무죄를 선고 받은 뒤 어머니 김봉순씨와 포옹하며 기쁨을 나누고 있다. 연합뉴스
국방부 차관과 국가안보실 등에 대한 충분한 수사가 없었고, 휴대전화 포렌식 등의 면밀한 조사가 부족했던 것도 언급됐다. 재판부는 "피고인의 권리를 중대히 침해함으로써 공소권을 자의적으로 행사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기도 한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이번 사건의 핵심 관련자인 김계환 사령관의 모순적 진술에 대해서도 일침을 놓았다. 
 
김 사령관의 진술이 본인의 최초 진술과 일부 차이가 있을 뿐 아니라, 객관적 근거인 국방부 군사보좌관과의 텔레그램 메시지, 본인의 업무수첩 내용 등과도 부합하지 않는 부분이 상당수 존재한다는 것이다.
 
이런 사실만 놓고 보더라도 군 검찰의 무리한 기소와 군 지휘부의 무책임한 태도로 인해 자칫 무고한 영관장교가 희생될 뻔한 셈이다.
 
결과적으로 부하에게 항명이라는 중범죄 누명을 씌운 이종섭 전 장관을 비롯한 당시 주요 직위자, 대통령실 관계자, 군 검찰 등에 대한 책임 추궁이 불가피해졌다. 이들은 직권남용과 위증죄 등 민형사상의 책임이 주어질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번 판결은 1심에 불과하기 때문에 최종 결과는 더 지켜봐야 한다. 당장 군 검찰의 기계적 항소 여부가 관심이다. 국방부는 판결을 존중한다고 밝혔지만 항소 가능성이 적지 않다.
 
다만 12.3 내란 사태의 여파로 군의 입지가 줄어든 상황이고 여론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에 평소처럼 항소를 밀어붙이기는 쉽지 않을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박 전 단장 측 김정민 변호사는 "김선호 국방부 차관이 항소를 포기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한다"고 말했고 임태훈 군인권센터 소장은 "박 대령을 해병대 수사단장과 군사경찰 병과장으로 복직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이번 사건의 최종 종착점은 'VIP의 격노'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윤 대통령이 채 상병 사건 수사결과를 보고 받고 크게 화를 낸 것이 수사 외압설의 발단이 됐다는 의혹이 짙기 때문이다.
 
박 전 단장은 이번 판결에 "정의로운 재판"이라며 감사의 뜻을 밝혔지만 재판부는 외압설에 대한 판단까지 내리지는 않았다.
 
현재로선 박 전 단장에 대한 불법‧부당한 명령이 국방부 장관으로부터 해병대 사령관 등을 거쳐 내려왔다는 것만 규명됐을 뿐이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에 접수된 그 윗선에 대한 수사는 답보 상태나 마찬가지다.
 
시민사회단체 연대체인 '윤석열즉각퇴진·사회대개혁 비상행동'은 이날 "수사 과정에서 대통령실과 국방부가 끊임없이 외압을 행사해온 이 사건은 이제 새로운 국면을 맞이했다"며 "외압의 핵심인 윤석열을 즉각 체포 및 구속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들은 국회에 대해 중단된 국정조사와 특검법 재추진도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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