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통령이 4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내년도 정부 예산안에 대한 시정연설을 마친 뒤 본회의장에서 나와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와 악수하고 있다. 연합뉴스더불어민주당이 대통령의 형사재판을 중지하는 '재판중지법' 처리를 공식화했다가 대통령실로부터 '공개 경고'를 받고 하루도 채 되지 않아 입장을 바꿨다. 당은 '급발진'을 하고, 용산은 이를 막아세우는 모습이 반복되면서 여권 내에서도 우려가 커지고 있다.
정청래, 李대통령과 악수 사진 게시…'엇박자' 수습 진땀
4일 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2026년도 정부 예산안에 대한 시정연설을 위해 국회를 찾은 이재명 대통령과 활짝 웃으며 악수하는 사진을 본인 페이스북에 "오늘의 포토제닉"이라며 올렸다. '당정 엇박자'란 해석이 계속되자 서둘러 진화에 나선 모양새다.
앞서 민주당 박수현 수석대변인이 '재판중지법 연내 처리 가능성'을 언급하자, 대통령실 강훈식 비서실장이 직접 나서서 제동을 걸었다. 강 실장은 여당 지도부를 향해 "더 이상 대통령을 정쟁에 끌어들이지 말라"며 공개적으로 경고하기도 했다.
이에 민주당 지도부는 재판중지법 추진을 공식화한 지 만 하루도 지나지 않아 이를 번복했다. 이를 두고 당 안팎에서는 '지도부가 사고를 쳤다(여권 관계자)'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박 수석대변인의 메시지가 정 대표와의 교감 하에 발신됐을 거라는 인식에서다.
여기에는 APEC 정상회의 성과 홍보에 치중하자는 공감대가 형성됐던 시점에 별안간 대통령의 사법리스크가 부각됐다는 점에서 '전략 부재'만 노출했다는 인식이 깔려 있다.
이와 관련, 지도부 내에서도 "오히려 이 얘기를 꺼내면서 국민들께 '대통령에게 진행 중인 재판이 있다'는 사실을 다시 일깨워 주는 효과가 났다"며 "묻힌 사안을 굳이 긁어 부스럼을 만든 것"이라는 비판이 나왔다.
정청래 SNS 캡처李정부 성과 국면마다 '찬물'
문제는 대통령과 정부에 유리한 판이 조성될 때마다 이렇게 여당에서 일을 거칠게 추진하면서 갈등 국면만 돋보이게 됐던 사례가 반복됐다는 점이다. 당정이 일부러 '굿캅·배드캅' 역할을 나눠 일종의 '약속대련'을 벌이고 있다는 해석도 유사한 상황이 반복되면서 점차 설득력을 잃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지난 9월 말쯤 이 대통령이 유엔(UN)총회 연설을 위해 미국을 방문했을 때 국내에서 벌어졌던 일이다. 당시 이 대통령은 유엔총회 연설에서 대북 정책으로 'END' 구상을 처음 발표했고, 폴란드·체코 대통령과 각각 정상회담을 통해 방산산업과 원자력 협력을 논의했다. '세일즈 외교'에 나선 셈이다.
하지만 여당 강경파 의원들의 돌발 행동이 이슈를 주도했다. 당시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조희대 대법원장 청문회를 강행 통과시키면서 주요 일간지 1면을 장식하면서다.
이 과정에서 '원내지도부 패싱' 논란이 터졌지만, 오히려 정청래 대표가 "대법원장이 뭐라고 호들갑이냐"며 법사위를 격려 방문하는 등 힘을 실어주면서 언론의 관심을 한몸에 받았다. 추미애 법사위원장은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에게 "윤석열 '오빠'한테 무슨 도움이 되느냐"고 언급하면서 이슈의 중심에 서기도 했다.
통상 대통령의 외교 행사 때는 이를 돋보이게 하기 위해 여야 정쟁도 멈추기 마련인데, 오히려 여당에서 나서서 이를 덮어버린 셈이다. 결국 10월 초쯤 대통령실 우상호 정무수석이 라디오 인터뷰에서 "민주당 입장이나 취지에 동의하지만 가끔 속도나 온도에서 (대통령실과) 차이가 난다"며 공개적으로 불만을 표시했다.
그러자 박수현 수석대변인이 "대통령의 주요 외교 일정시 국내 정치 이슈가 매끄럽지 못한 점은 돌아봐야 한다"며 "앞으로는 그런 부분까지 면밀히 고려하겠다"고 입장을 내기도 했다.
與 내부 갈등이 국정 운영 부담으로
연합뉴스최근 이 대통령이 경주 APEC 직전인 지난달 26~27일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아세안) 정상회의 참석차 말레이시아 순방을 다녀왔을 때도 유사한 상황이 반복됐다.
정 대표가 야당에 '무정쟁 주간'을 제안하면서 나름의 성의를 보였으나 민주당 소속 최민희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장의 딸 '축의금' 논란이 불거지면서 이슈의 중심에 섰다.
특히 최 위원장이 과방위 국감 과정에서 본인 보도와 관련해 문제를 제기하며 MBC 보도본부장을 퇴장시킨 사안이 '이해관계 충돌' 논란을 빚으면서 확산되기도 했다.
여당 내부 엇박자가 국정 운영에 부담을 주게 된 경우도 있었다. 지난 9월엔 여당 투톱인 정청래 대표와 김병기 원내대표 간 소통이 원활하지 않으면서 야당과 '3대 특검법 개정안' 관련 합의를 했다가, 이를 여당이 일방적으로 파기하면서 야당의 반발을 불러왔다.
문제는 야당이 합의 파기를 명분 삼아 '무제한 필리버스터'를 천명했고, 민주당은 민생 법안 수십여개를 본회의에 상정조차 못했다는 점이다. APEC 직전 야당과의 합의로 뒤늦게 통과시키긴 했지만, 이재명 정부 첫 정부조직법이 금융 거버넌스 개편 제외로 크게 후퇴한 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