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누칼협 세계의 '자발적' 심야노동

노컷뉴스 이 시각 추천뉴스

닫기
  • 2025-11-05 05:00
  • 0

- +

이 시각 추천뉴스를 확인하세요

연합뉴스연합뉴스
"사람의 인체 리듬상 야간에 일하면 건강을 더 해칠 가능성이 크다. 그런데 그걸 다 알면서 선택을 한 것 아닌가." 한동훈 국민의힘 전 대표가 3일 CBS 라디오 '박재홍의 한판승부'에 출연해 심야 시간 노동 제한 필요성에 반대하며 한 말이다. "교통 상황이 야간에는 뻥뻥" 뚫리는 등 업무 환경이 더 나은 편이고 "수입이 조금 더 많"기 때문이라고 한다. 제일 인상적인 말은 여깄다. "(택배 노동자들이 심야 시간 노동에) 강요에 의해 간 것이 아니라는 것."

야간노동이 건강에 유해하다는 그 모든 과학적 증거에도 불구하고 노동자의 자발적 선택이라면, 이를 제한하고자 하는 접근 자체가 기각돼야 하는가. 여기에 소비자의 편리함 증대와 일자리 창출이라는 효과까지 덧붙인다면, 죽음까지 각오해야 하는 노동이 여전히 선택의 영역인가. 우리 사회는 개개인의 자발적 선택에 모든 것을 맡기고 여기까지 왔는가.

하루 8시간 노동이 법으로 정해진 것은 그렇게 오래된 일이 아니다. 하루 14~16시간씩 일하면서 입에 풀칠할 수준의 낮은 임금을 받고, 안전장치 하나 없이 위험에 노출됐다 사고라도 나면 그 자리에서 일자리를 잃던 시절이 있었다. 산업혁명 초기에는 기계 안에 들어가서 문제(?)를 해결할 수 있고 더 낮은 임금을 줘도 된다는 이유로 아동들도 공장에서 장시간 노동을 했다.

주목할 건, 이들 역시 '누가 칼 들고' 강제로 일하도록 '협박(이른바 누칼협)'한 게 아니었다는 점이다. 다들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 안달이었으니까. 낮은 임금이라도 받아야 생존이 가능한 현실 조건 위에서 '관 침대(coffin bed)'라 불리는 나무짝에서 구부린 채 잠을 자며 돈을 벌어야 했으니까. 열악하다고? 힘들다고? 그럼 그만 둬. 당신이 선택해. 그때도 같은 얘기가 나왔다.

황진환 기자황진환 기자
그럼에도 8시간 노동제가 생긴 것은 열악한 근무환경이 노동자 개인의 장기적 삶은 물론 그들로 인해 지탱되는 사회 전체를 고갈시킨다는 인식 덕분이었다. 주 52시간 제도도 마찬가지다. 쉬지 않고 일해서 더 벌겠다는 자발적 선택이 결국 노동자를 해친다는 구성원들이 공감대가 있었다. 그 연장선상에서 심야노동에 일정 정도 제한을 두자는 얘기는 충분히 시작할 만하지 않은가.

그리고 이 제한은 '전면금지'냐 아니냐의 납작한 논쟁이 아니라, 기본적으로 심야 노동의 위해성을 인지하고 심야노동에 대해 기업과 소비자가 정당한 대가를 지급하는 방식으로, 수요를 최대한 억제하는 쪽으로 유인을 만드는 방식으로 논의 돼야 하지 않을까. 심야 노동 대폭 할증이라는 비용적 접근부터 교대제 활용 등 제도적 접근까지 얼마나 얘기할 게 많은가. 마침 문제제기를 하는 쪽에서도 새벽배송의 전면 금지가 아니라는 점을 필사적으로 강조하고 있다.(혹은 해야만 하는 여건이다.)

노동시간 단축이나 아동노동 금지 등 제한 없는 노동에 대한 규제는, 한 때 유혈사태와 교수형까지 각오해야 하는 과격한 주장이었다. 그러나 문명의 진화와 함께 사회의 기준, 아니 상식이 됐다. 노동을 사고 파는 시대에 진입한 뒤 수 많은 논쟁과 합의가 이어지는 과정에서, 지금 이 시점에 마침 심야 노동이라는 소재가 새롭게 등장한 셈이다. 노동 조건에 대한 논의는 '누칼협'적 세계관에 외롭게 둘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훨씬 비참했던 시절에도, 그동안에도 계속 그랬다. 아니 그러니까, 심야 노동 줄여보자는 말 좀 하면 안됩니까.

0

0

실시간 랭킹 뉴스

오늘의 기자

※CBS노컷뉴스는 여러분의 제보로 함께 세상을 바꿉니다. 각종 비리와 부당대우, 사건사고와 미담 등 모든 얘깃거리를 알려주세요.

상단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