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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혀진 항일 운동가 부부, 김찬, 도개손을 아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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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송 : CBS 라디오 <박재홍의 뉴스쇼=""> FM 98.1 (07:30~09:00)
■ 진행 : 박재홍 앵커
■ 대담 : 원희복 ('사랑할 때와 죽을 때' 저자)

일제강점기였던 1930년대 조선의 한 항일운동가와 중국 명문가 출신의 한 여인이 사랑에 빠집니다. 남자의 이름은 김찬. 그리고 여자 이름은 도개손. 이 두 사람은 부부로서 항일운동을 함께하고 끝내 죽음까지도 동행하게 되는데요. 우리에게 낯선 이름인 김찬과 도개손. 이 항일투사 부부의 삶을 담은 책인 '사랑할 때 와 죽을 때'가 최근 출간돼 주목을 끌고 있습니다. 오늘 화제의 인터뷰에서는 이들 부부의 이야기를 담은 책의 저자인 경향신문 원희복 기자를 만납니다. 원 기자님, 안녕하세요.

◆ 원희복> 네, 원희복입니다.

◇ 박재홍> 항일운동가 김찬, 사실 낯선 이름인데요. 어떤 분이었습니까?

◆ 원희복> 최근에 영화 ‘암살’이 인기를 끌고 있죠. 시대적 배경이 1930년대입니다. 바로 그 시기, 책의 주인공 김찬이 혁명적 노동운동, 노동운동가로서 항일투쟁을 한 사람입니다.

◇ 박재홍> 책의 내용을 보니까 45일간 일제 경찰의 고문을 견디면서 자백을 하지 않았던 유일한 항일운동가였다, 이런 기록도 있더군요.

◆ 원희복> 그 당시에 재미있는 게 일제 경찰들이 사상범을 잡고 취조했던 수기를 남겼어요. 그 내용에 보면 김찬이 45일 동안 입을 열지 않았다, 이런 대목이 있죠. 정말 전무후무한 사람이다라고 이렇게 평가한 대목이 있는데 굉장히 잔혹한 일제의 고문을 45일 동안 견뎠다는 건 대단한 사람이죠.

◇ 박재홍> 대단히 의지가 강한 항일 투사였네요. 말씀하신 1930년대, 그러니까 세계대공황시절이 겹치면서 조선인 항일운동가들도 중국에서 상당수 활동을 하고 있었고 이런 배경 가운데 김찬 역시 중국인 여성과 사랑에 빠지게 된 거군요.

◆ 원희복> 그렇죠.

◇ 박재홍> 그런데 도개손이라는 인물이 평범한 인물이 아니었어요. 그러니까 중국 명문가 출신이고 또 중국 최고의 명문인 북경대학 이과계열 최초의 여학생이었다면서요?

◆ 원희복> 도개손의 집안이 정말 대단한 사람인데요. 그 아버지는 변호사였는데 청조 말기에 개화를 주장하다가 감옥에 갔을 정도였고. 도개손 가족은 9남매였는데 중국 최초의 뇌신경학자, 최초의 여성의학박사 이런 사람들이 다 도개손의 형제들이거든요. 대단한 이과계열로 주로 갔고. 도개손의 경우에는 1929년도에 베이징대 최초의 이과계 여학생이었는데, 베이징대에서 여학생의 입학이 허가가 된 게 1920년이거든요. 그러니까 여성의 입학이 허가된지 9년 만에 이과계열 최초의 여학생으로 들어갔죠.

◇ 박재홍> 그런데 어떻게 이런 여성이 나라를 잃은 조선인 항일운동가와 사랑에 빠졌을까요?

◆ 원희복> 처음에 여학생으로 만나가지고 같은 공청단 활동을 하다가 애정을 느꼈겠죠. 그리고서 나중에 김찬은 조선에 들어와서 항일투쟁을 했고 도개손은 북경대 다니다가 학교를 그만두고 중국 독립을 위해서 항일투쟁을 했고. 그렇게 하다가 오히려 이제 사랑과 혁명도 같이 맞아떨어지면서 정치 상황이 아마 두 사람의 사랑에 중요한 작용을 하지 않았나, 이렇게 생각을 합니다.

◇ 박재홍> 시대적 배경을 고려하면 단순한 남녀간의 사랑을 뛰어넘어서 동지애적인 사랑이다, 이렇게도 볼 수 있겠네요.

◆ 원희복> 그렇죠.

한중 항일투사 김찬과 도개손 부부 (저자 제공)

 

◇ 박재홍> 두 사람이 함께 항일운동을 하다가 죽음도 함께했다면서요? 그 내용을 좀 소개해 주실까요?

◆ 원희복> 중국에서 쭉 독립운동을, 항일투쟁을 같이 하다가 연안에 가게 되죠. 1937, 38년 당시에 중국 공산당이 장정을 마치고 연안에 집결을 해 있었거든요. 그 연안이라는 곳이 어떻게 보면 중국혁명의 이상향 같은 곳이었는데 거기 연안에서 공부를 하다가 연안 정풍운동이 불면서, 그 당시에 정풍운동이 대대적으로 연안에서 일어나거든요. 그때 일제의 간첩이라는 죄목으로 검거가 되어서 처형이 되게 되죠.

◇ 박재홍> 일제 간첩이라는 누명을 썼던 거네요, 그러면.

◆ 원희복> 그렇죠.

◇ 박재홍> 그런데, 도개손의 경우에는 중국 명문가 집안의 자제였기 때문에 살려주겠다는 제안을 받았는데, 이를 거부하고 죽음을 맞았다면서요? 그 내용은 어떤 내용입니까?

◆ 원희복> 김찬과 도개손의 경우에는 검거를 하고 1년 3개월 동안이나 끌었거든요. 이렇게 오랫동안 끈 경우가 없거든요. 그건 도개선의 집안이 워낙 중국에서도 알아주는 명문가 집안이었던 데다가 또 중국 공산당에서의 활동도 굉장히 컸고. 그래서, 조선인 남편인 김찬을 부인해라, 이혼을 해라, 그러면 살려주겠다고 중국 공산당에서 그렇게 했는데. 그걸 거부하고 스스로 죽음을 택한 거죠. 도개손이라는 여성도 대단한 여성이라고 보아집니다. 그래서 이번에 제가 부부평전을 쓴 것입니다.

◇ 박재홍> 일제 강점기에 있었던 치열하고 처절한 삶이었다, 이렇게 말할 수 있겠는데요. 취재하시면서 느끼신 점이 있다면 어떤 게 있을까요?

◆ 원희복> 주로 현대사와 관련된 쪽에 제가 관심이 많아서 그쪽으로 기사를 많이 썼어요. 그러다 보면 이런 억울하게 죽은 사람들이 굉장히 많거든요. 억울하게 죽은 사람들에 대한 기사를 쓸 때면, 저는 염을 해 보지 않았지만, 염장이들이라는 게 마지막 시신을 이렇게 정돈을 해 놓는 사람 아닙니까? 그런 측면에서 현대사와 관련된 그런 기사를 쓸 때는 그런 역사의 염장이 같은 생각이 들 때가 많아요. 그래서 그런 심정이었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 박재홍> '사랑할 때와 죽을 때', 이 책을 통해 김찬, 도개손 부부의 항일희생이 알려지게 됐네요. 이외에도 우리가 알지 못하는, 혹은 집단으로 망각하고 있는 항일운동가들이 많이 있을 것 같습니다. 어떻게 보시나요?

◆ 원희복> 많죠. 중국 대륙은 물론이고 유럽, 그다음에 남미까지 그당시에 우리 항일운동가, 이름도 없이 사라진 분들이 얼마나 많겠습니까? 사실 '아리랑'에 나오는 장지락도 우리가 몰랐던 인물이거든요. 뒤늦게 '아리랑'이 국내에 알려지면서 장지락이라는 인물이 있었구나, 뻔히 이런 사실과 문헌이 남아있는데 우리가 잊어버리고 있는 거거든요. 사실은 어떻게 보면 망각이죠, 망각. 우리가 집단으로 망각하고 있는 거...

◇ 박재홍> 광복 70주년을 앞두고 참으로 의미있는 책을 내신 것 같습니다. 더 많이 읽혀서 또 이렇게 잊혀진 독립운동가들이 기록으로 다시 살아나면 좋겠네요. 말씀 잘 들었습니다.

◆ 원희복> 네, 고맙습니다.

◇ 박재홍> 화제의 인터뷰 오늘은 한중 항일투사 김찬과 도개손의 이야기를 책으로 펴낸 경향신문 원희복 기자를 만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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