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부터 곽상도 전 의원과 권순일 전 대법관. 윤창원 기자·연합뉴스대장동 사업 로비·특혜 의혹을 수사 중인 검찰이 '아들의 화천대유 퇴직금 50억 원 수령 논란' 당사자인 곽상도 전 의원과 퇴임 이후 화천대유 고문으로 거액의 보수를 받아 재판 거래 의혹에 휩싸인 권순일 전 대법관을 27일 동시 소환했다.
검찰이 전날 박영수 전 특별검사와 홍선근 머니투데이 회장을 소환한 데 이어 이날 곽 전 의원과 권 전 대법관까지 소환하면서 대장동 개발업자들로부터 금품을 받았거나 제공을 약속받았다는 의혹이 제기된 '50억 클럽' 대상자들에 대한 수사 속도가 붙는 모양새다.
검찰, 곽상도 첫 소환…아들 50억 퇴직금 대가성 추궁
서울중앙지검 대장동 의혹 전담수사팀(팀장 김태훈 4차장검사)은 이날 오전 곽 전 의원을, 오후 2시부터 권 전 대법관을 피의자 신분으로 잇따라 비공개 소환해 조사하고 있다. 곽 전 의원은 대장동 민간사업자인 화천대유자산관리(화천대유)와 하나은행 간 컨소시엄 구성에 도움을 주고 그 대가로 아들이 화천대유로부터 거액의 퇴직금을 수령한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알선수재 혐의를 받고 있다.
곽 전 의원의 아들 병채씨는 2015년 6월 화천대유에 1호 사원으로 입사해 근무하다가 올해 3월 퇴사하면서 퇴직금과 위로금 등 명목으로 50억 원을 받은 사실이 CBS노컷뉴스 보도로 확인돼 논란이 일었다. 수사팀은 이 거액의 퇴직금이 곽 전 의원에 대한 대가성 자금으로 의심하고 수사를 이어왔다.
화천대유자산관리 사무실 모습. 이한형 기자곽 전 의원은 대장동 사업 초기인 2015년 화천대유가 참여한 하나은행 컨소시엄이 경쟁업체의 견제로 무산될 위기에 놓이자 하나금융지주 측에 영향력을 행사해 화천대유 대주주 김만배씨 등에 도움을 줬다는 의혹을 받는다. 당시 경쟁관계였던 산업은행 컨소시엄에 참여한 A사의 모회사 B사 측이 하나은행 측에 자산관리회사 지분 일부를 내주겠다는 조건으로 포섭을 시도하자 김씨가 곽 전 의원에게 부탁해 위기를 모면했다는 게 의혹 내용의 골자로 파악됐다.
지난달 경기도 국정감사에서는 더불어민주당 민형배 의원이 "대장동 개발에 함께할 금융사 혹은 돈줄이 필요했던 김만배씨가 곽 의원 소개로 김정태 (하나금융지주) 회장의 도움을 받는다"는 제보 내용을 공개하기도 했다. 김씨와 곽 전 의원, 김 회장은 모두 성균관대 동문이다. 당사자들은 해당 의혹을 모두 부인하고 있다. 일각에선 대장동 사업 초기 핵심 민간 사업자들의 재판 과정에 곽 전 의원이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의혹도 제기된다. 그러나 곽 전 의원은 "대장동 개발사업이나 화천대유와 관련해 어떤 일도 하지 않았다"며 "어떤 일에도 관여돼 있지 않다는 점을 다시 한 번 말씀드린다"는 입장으로 선을 긋고 있다.
검찰은 앞서 병채씨를 두 차례 불러 조사했다. 병채씨는 "3월 퇴사 전 50억 원을 지급받는 것으로 성과급 계약이 변경됐고 원천징수 후 약 28억 원을 4월에 계좌로 받았다"며 근무 중 건강 이상에 따른 위로금과 성과급도 포함된 정상적인 금액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수사팀은 수사 초기 김만배씨와 곽 전 의원 간 '이익금 분배 사전 약속'이 있었다고 보고 50억 원을 처분하지 못하도록 병채씨 계좌를 동결했다. 컨소시엄 구성 실무자이자 성남시 관계자들과 긴밀한 관계라고 지목된 하나은행 이모 부장에 대한 참고인 조사도 수차례 진행했고, 지난 17일에는 곽 전 의원의 자택 등에 대한 압수수색도 단행했다. 검찰은 곽 전 의원을 상대로 제기된 의혹 전반을 확인할 것으로 보인다.
검찰은 지난달 12일 김만배씨에 대해 1차 구속영장을 청구하면서 병채씨에게 지급된 퇴직금 50억 원을 곽 전 의원에 대한 뇌물로 보고 뇌물공여 혐의를 적시했지만, 이후 구속 과정에선 이 혐의를 뺐다. 수사팀은 의혹이 제기된 시기인 2015년 곽 전 의원이 대한법률공단 이사장이었다는 점에서 직무와 관련해 금품을 받았다는 뇌물 혐의 적용은 어렵다고 판단해 지위를 악용했다는 논리의 알선수재 혐의 적용으로 방향을 튼 것으로 보인다. 곽 전 의원 등이 혐의를 전면 부인하고 있다는 점에서 구속영장 청구 가능성도 거론된다.
권순일도 소환…이재명 선거법 위반 재판 영향력 대가 받았나 추궁
고승범 금융위원장이 지난달 6일 국회에서 열린 정무위원회의 금융위원회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박수영 국민의힘 의원이 공개한 대장동 개발사업 의혹 관련 화천대유의 이른바 '50억원 약속 클럽' 명단을 바라보고 있다. 윤창원 기자권 전 대법관은 퇴임 직후 화천대유 고문으로 일하며 고액 보수를 받아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인 이재명 전 경기도지사의 선거법 위반 재판 거래 의혹이 제기된 상태다.
권 전 대법관은 지난해 9월 퇴임 후 같은 해 11월부터 화천대유 고문으로 일하며 월 1500만 원의 보수를 받은 사실이 뒤늦게 알려지면서 의혹에 휩싸였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권 전 대법관이 지난해 7월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당시 경기도지사인 이 후보의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을 무죄 취지로 파기환송할 때 캐스팅보트를 쥔 상태였다는 점에 주목했다. 권 전 대법관이 무죄 쪽에 표를 던지는 대가로 화천대유 고문직에 임명된 것이라는 의혹을 거두지 않고 있다.
특히 전직 언론사 법조팀장 출신이자 권 전 대법관의 성균관대 후배인 김만배씨가 지난 2019년 7월 16일~2020년 8월 21일 사이 총 9차례 대법원을 방문했고, 8차례는 방문지를 '권순일 대법관실'로 적은 사실이 공개되면서 의혹은 더욱 확산됐다. 김씨는 "동향 분이라 가끔 전화하고 인사차 방문한 것"이라며 의혹을 전면 부인하고 있다.
왼쪽부터 대장동 의혹의 핵심 피의자 김만배씨와 남욱 변호사. 이한형 기자권 전 대법관은 논란이 확산되자 화천대유 고문 자리에서 물러났고, 10개월간 일하며 받은 보수를 전액 한국자폐인사랑협회에 기부했다. 지난해 12월 임용된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석좌교수 자리도 임기가 끝난 이달 말 재임용 없이 퇴임한다.
이번주 초 김만배씨, 남욱 변호사, 정영학 회계사까지 재판에 넘기면서 대장동 민관(民官) 주요 사업주체들의 유착 의혹 수사를 일단락 지은 검찰이 정치권·법조계 로비 의혹에 속도를 올리고 있어 어떤 결과가 도출될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