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희대 대법원장을 비롯한 대법관들이 1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의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과 관련한 전원합의체 선고를 위해 대심판정에 착석해 있다. 사진공동취재단조희대 대법원장 등 대법원은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의 청문회에 불출석하고 법사위원들이 요청한 자료 제출을 당일 전면 거부하며 청문회 개최에 강하게 반발했다. 그러나 더불어민주당 주도로 이른바 조희대 특검법과 대법관 수를 늘리는 법원조직법 등이 법사위에 상정되는 등 사법개혁 압박은 점차 강화되고 있다.
조희대 대법원장 등 대법원 법관들 청문회 불출석…법사위, 법적 조치 예고
15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은 지난 12일 국회에 '청문회 출석 요구에 대한 의견서'를 제출했다. 의견서에는 조 대법원장을 비롯한 대법관, 대법원 수석·선임재판연구관, 대법원장 비서실장, 법원행정처 사법정보화실장 등 대법원 소속 판사 16명이 모두 국회 청문회에 출석하지 않겠다는 내용이 담겼다.
실제 전날 국회 법사위가 연 '조희대 대법원장 등 사법부의 대선 개입 의혹 진상규명 청문회'에는 조 대법원장 등이 출석하지 않았다. 국회가 채택한 청문회 증인 중 윤석열 전 대통령의 대학 동기인 서석호 변호사만 출석했다.
정청래 법제사법위원장은 전날 법사위 전체회의에서 조 대법원장이 제출한 불출석 사유서를 공개했다. 조 대법원장은 불출석 사유서를 통해 "최근 대법원에서 선고한 판결과 관련한 이번 청문회는 진행 중인 재판에 대하여 합의과정의 해명을 요구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며 "사법부의 독립을 보장한 대한민국 헌법 103조, 합의과정의 비공개를 규정한 법원조직법 제65조, 재판에 관한 국정조사의 한계를 담은 국정감사 및 조사에 관한 법률 제8조, 국회법 37조 1항, 제2호 비목 등 규정과 취지에 반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이에 대해 법사위는 청문회에 불출석한 조 대법원장 등 법관들에 대해 법적 조치를 예고했다. 정청래 법사위원장은 "국회에서의 증언 감정 법률 제2조를 위반한 만큼 법사위 차원에서 적절하게 법적 조치를 취하겠다"고 밝혔다.
14일 국회에서 열린 법원조직법·공직선거법·헌법재판소 등을 심사하는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더불어민주당 소속 정청래 위원장이 대법관들의 불출석 사유서를 보여주고 있다. 연합뉴스대법원은 또 청문회를 앞두고 법사위원들이 요구한 자료 제출을 전면 거부했다. 민주당·조국혁신당 소속 법사위원들은 이재명 민주당 대선 후보의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을 서울고등법원으로 파기환송하는 과정에서 사법권이 남용되고 대선에 개입하려 했다는 의혹 관련 자료를 요청했다. 법사위원들이 요구한 자료는 대법관들의 전자기록 열람 로그 자료, 전원합의체 회부 과정과 회의록 등이었다.
대법원은 자료 제출 기한 마감인 14일 오전 9시를 30분을 한 시간 정도 앞둔 오전 8시 30분쯤 '이번 청문회는 진행 중인 재판의 합의 과정에 관한 것으로 헌법 제103조, 법원조직법 제65조 등 규정의 취지에 따라 요구한 자료를 제출할 수 없다'고 국회 측에 알렸다.
서석호 변호사, 중재자 역할 의혹 부인…파면 뒤 관저 방문 '인정'
국민의힘 의원들이 "사법부 겁박용 청문회"라며 청문회 개최에 반발하며 집단 퇴장하면서 청문회는 민주당과 조국혁신당 의원들만 참여한 채 진행됐다. 민주당은 청문회에서 이 후보 선거법 사건에 대한 대법원의 파기환송 선고를 이례적 속도전을 벌인 "사법 쿠데타"라고 비판했다.
김용민 민주당 의원은 "대법원이 이 후보 선거법 사건을 유죄취지로 파기환송하는 과정에서 사건 기록을 제대로 검토하지 않아 민주주의를 무너뜨리고 삼권분립을 형해화했다"고 비판했다. 박지원 민주당 의원도 "기록도 보지 않고 파기환송하는 신속한 재판을 왜 이 후보에게만 보장해야 되나. 새 정부가 들어서면 반드시 사법 개혁이 이뤄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대법관들이 청문회에 출석하지 않으면서 윤석열 전 대통령과의 친분을 토대로 이번 대법원의 이 후보 사건 선고의 막후 조력자 역할을 했다는 의혹을 받는 서석호 변호사의 진술에 가장 큰 관심이 모아졌다. 국회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의 공직선거법 사건 상고심에서 파기환송 결정을 한 조희대 대법원장과 윤 전 대통령 사이에서 서 변호사가 중재자 역할을 했다는 의혹과 관련해 청문회 증인으로 채택됐다.
서 변호사는 이 후보의 파기환송 판결에 개입했다는 의혹부터 해명했다. 서 변호사는 "전혀 근거 없는 얘기이기 때문에 가라앉지 않겠나 생각했는데 점점 엄청나게 번지는 것 같고, 법사위에서 증인으로 채택했다는 얘기를 듣고 너무 놀랐다"며 "적극적으로 대응하고 법적 조치도 해야 되겠다는 생각에 퇴사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서 변호사는 "조 대법원장과 개인적 친분이 전혀 없다. 연락하거나 연락받은 자체가 없다"며 "제가 (조 대법원장과) 같은 고등학교를 나왔다는 것 때문에 친한 것처럼 오해한 것 같다. 연수원 기수도 다르고 저는 변호사를 했기 때문에 그분을 법관으로서 뵐 기회도 전혀 없었다"고 말했다.
다만 서 변호사는 지난달 초 윤 전 대통령이 파면된 뒤 관저를 찾았고 대통령에 출마했을 때 1천만 원을 후원했다고 밝혔다. 서 변호사는 "사저로 나가기 전 짐을 싸고 있을 때 동기 모임이 있어 (관저로) 갔다"고 말했다. 서 변호사는 한덕수 전 총리와의 관계에 대해서도 "개인적 친분은 전혀 없다"고 강조했다. 서 변호사는 서울대 법대 79학번으로 윤 전 대통령과 동기이며, 조 대법원장과는 대구 경북고와 서울대 법대 동문이다. 한 전 총리가 공직에서 물러난 이후 김앤장에서 근무할 당시 서 변호사도 김앤장 소속 변호사로 일했다.
청문회에 참고인으로 출석한 서보학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대법원이 이례적으로 빠른 선고를 토대로 이 후보의 대선 출마 자격을 박탈하려 했다고 분석했다. 서 교수는 "대법원이 급하게 2심 무죄판결을 파기환송해서 고등으로 내려 보냈고 또 파기환송 재판부도 처음에는 굉장히 속도를 내지 않았느냐"며 "파기환송심이 서둘러 유죄판결을 선고하고 대법원에 재상고됐을 때 자격박탈형이 포함되는 유죄판결을 확정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민주, 조희대 특검법 등 상정…시간 흐를수록 조 대법원장 압박 커질 듯
14일 국회에서 열린 법제사법위원회의 조희대 대법원장 등 사법부의 대선개입 의혹 진상규명 청문회에서 증인 및 참고인으로 출석한 이준일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왼쪽부터), 서석호 변호사, 이성민 전국공무원노조 법원본부장이 의원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연합뉴스민주당은 이날 청문회에 앞서 조 대법원장의 대선 개입 의혹을 수사하는 특검(특별검사)법과 대법관 수를 증원하는 '법원조직법 개정안', 대법원 판결을 헌법소원 대상에 포함시키는 '헌법재판소법 개정안'을 표결로 상정해 법안심사 소위로 회부했다. 민주당의 개정안이 본회의를 통과할 경우 대법원 판결에 대해서도 헌법소원을 제기할 수 있게 되며 대법관 수를 기존 14명에서 100명으로 늘릴 수 있게 된다.
민주당은 또 허위사실 공표 구성 요건 중 '행위'를 삭제하는 내용의 '공직선거법 개정안'을 법사위를 통과시켰는데 추후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게 될 경우 이 후보의 선거법 위반 사건은 법 조항 폐지로 처벌할 수 없는 면소 상태가 된다. 이에 대해 국민의힘은 크게 반발했지만 민주당의 법안 표결을 막지 못했다.
대법원이 법관 청문회 불출석과 자료 제출 거부 등으로 강하게 반발했지만 사법개혁 요구와 압박이 더 강화되면서 사법부는 당혹스러워하는 분위기가 엿보인다. 한 사건의 재판 결과를 근거로 사법부 전체를 흔드는 것은 지나치다는 입장이다. 다만 대선을 앞두고 큰 갈등이 초래될 수 있는 원인 제공을 사법부가 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는 평가도 나온다. 수도권의 한 부장판사는 "사법부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와 함께 이번처럼 실제 제도 개정이 추진된 사례는 드물다"며 "정치권의 공세에 사법부가 대응할 수 있는 방안이 없는 상황에서 먼저 원인 제공을 했다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도 문제"라고 말했다.
법조계 일각에서는 대선이 채 20일도 남지 않은 상황에서 시간이 흐를수록 조 대법원장이 느끼는 압박감은 커질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국회의 청문회 개최에 강하게 반발하기는 했지만 추가 대응 방안이 마땅치 않은 상황에서 이 후보가 대통령으로 당선될 경우 민주당을 중심으로 한 사법개혁 요구가 당분간 지속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