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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능지수 72' 장애인이어야만 살 수 있는 사람[법정B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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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주

수사보다는 재판을, 법률가들의 자극적인 한 마디보다 법정 안의 공기를 읽고 싶어 하는 분들에게 드립니다. '법정B컷'은 매일 쏟아지는 'A컷' 기사에 다 담지 못한 법정의 장면을 생생히 전달하는 공간입니다. 아무도 주목하지 않지만 중요한 재판, 모두가 주목하지만 누구도 포착하지 못한 재판의 하이라이트들을 충실히 보도하겠습니다.

장애인이 돼야 살아갈 수 있는 마흔 살 경계선 지능인의 선택

연합뉴스연합뉴스장애인에서 '장애'는 신체 기관이 본래의 제 기능을 하지 못하거나 정신 능력에 결함이 있는 상태라는 뜻입니다. 그렇다고 장애가 있는 모든 사람이 각 사회가 규정한 장애인인 것은 아닙니다. 어떤 나라에서는 장애인이었던 사람이 다른 나라에 가면 장애인이 아닐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장애인에 대한 규정은 장애가 있는 사람이 살아가면서 겪는 불평등을 줄이고 이들을 효과적으로 지원하기 위해 만들어졌습니다. 문제는 그 규정이 부작용을 낳는 원인이 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이는 기초생활수급자에게만 복지 정책이 집중될 경우 경제적 여건에 큰 차이가 없는 차상위계층이 역으로 차별당하는 상황과 비슷할 수 있습니다. 제도의 사각지대는 없는지 살펴봐야 하는 이유입니다.

일반 초·중·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군 복무를 마쳤으며 그리고 10년 동안 공무원 시험까지 준비했던 '경계선 지능인' 마흔 살 A씨가 장애인이 되기 위해 법정에 설 수밖에 없었던 이야기를 들여다보려 합니다.
 

"혹시 지능검사 받아보면 어떨까"…37살에 '경계선 지능인'이 된 남성

지난 2022년 37살이던 A씨가 웩슬러 지능검사를 받게 된 것은 어떻게 보면 우연이었습니다. 평생 별다른 지능검사를 받아보지 않았다는 점에서 호기심도 있었습니다. 당시 A씨는 식당에서 단기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는데 점주는 일이 좀처럼 늘지 않는 A씨를 여러 차례 꾸짖었습니다.

그럼에도 A씨는 달라지지 않았고 점주는 조심스럽게 말을 건넸습니다. "너 좀 심각한 것 같은데 혹시 지능검사를 받아보면 어떨까" 당시 A씨에게는 충격적인 말이었습니다. 학창 시절과 군 복무 시절 내내 적응에 어려움을 겪으며 외톨이로 지내는 경우가 많았지만 남들보다 사회성이 부족하고 적극성이 떨어지는 게 원인이라고만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간단한 아르바이트조차 한 달을 지속하지 못하는 A씨에게 선택지는 없었습니다. 같은 해 11월 10일 A씨는 웩슬러 지능검사를 받았고 결과는 72. 경계선 지능인이었습니다. 지적장애인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70보다 겨우 2 높은 수치였습니다. A씨는 그제야 깨달았습니다. 생애주기별로 비장애인들과의 경쟁에서 뒤처지고 적응에 어려움을 겪었던 원인이 따로 있었던 것입니다.

경계선 지능인의 지옥 같았던 군 복무 그리고 공무원 수험생활

지능검사 결과를 받아 든 A씨가 가장 억울했던 것은 다름 아닌 군 복무였습니다. 군 복무 전에 지능검사를 받았다면 최소한 현역병으로는 복무하지 않아도 됐기 때문입니다. 육군에서 취사병으로 복무한 A씨에게 군대는 악몽 그 자체였습니다. 지각 추론 점수가 62로 특히 낮았던 A씨는 손을 사용해 무언가를 만들어내는데 취약할 수밖에 없었는데 이는 취사병에게는 가장 필요한 능력이었기 때문입니다. 지각 추론 점수가 낮았던 A씨는 신발 끈을 묶거나 비교적 단순한 편의점·커피숍 아르바이트에도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이 때문에 군에서 A씨는 관심병사를 넘어 개선될 수 없다는 의미가 담긴 이른바 '폐급 병사'로 취급되기도 했습니다. 선·후임들과의 갈등은 징계로 이어졌고 자살예방센터 문을 두드렸을 정도로 힘든 시기를 보냈습니다. 지옥과도 같았던 상황을 끝까지 견뎌야만 했던 게 가장 억울했던 A씨는 국가를 상대로 배상 청구를 하려 했지만 이미 시효가 지난 상황이었습니다.

국가가 정상적으로 군 복무를 할 수 있는 상태인지 확인했거나 상대적으로 수월하게 수행할 수 있는 보직을 부여했다면 그렇게 힘들지는 않았을 것이란 게 A씨 생각이었습니다. 다음으로 떠오른 건 노량진에서의 긴 공무원 수험 생활이었습니다. A씨는 공무원인 아버지의 조언을 토대로 공무원 시험을 무려 10년 가까이 준비했지만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했습니다. 아니 낼 수 없었습니다.

최소 수십대 일의 높은 경쟁률의 시험에서 A씨가 합격하지 못한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당시에는 노력이 부족했던 것은 아닌지 끊임없이 스스로를 탓했습니다. 자신이 경계선 지능인이라는 것을 알았다면 공무원 시험에 10년을 투자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가족들과의 갈등도 그렇게 심하지 않았을지 모릅니다. 다른 사람과의 교류가 거의 없는 은둔형 외톨이로 오랜 기간 지내면서 A씨는 가족들과 이런저런 이유로 다퉜고 가정 내 불화가 이어졌습니다. 이 과정에서 혹시 성격에 문제가 있는지 검사하기 위해 심리센터를 찾기도 했지만 개선되지 않았습니다.

마지막 희망 '장애인 등록'…"경제 활동 할 수 없다고 느꼈다"

아르바이트도 한 달 이상 해본 적 없는 A씨의 마지막 희망은 장애인 등록이었습니다. 경계선 지능인 등 비장애인들과 취업 경쟁에서 성과를 내지 못하던 A씨는 장애인으로 등록될 경우 새로운 기회가 열릴 수 있다고 기대했기 때문입니다. 실제 A씨는 법정에서 "단기 아르바이트를 해보았을 뿐 직업을 제대로 가진 적은 없고, 혼자 거주하며 부모님이 보내주신 반찬 등으로 식사를 한다"며 "비장애인들과 경쟁을 하는 것은 이미 제가 살아오면서 생애주기별로 충분히 (어렵다고) 느꼈고 장애 등록이 되지 않으면 스스로 먹고살 수 있는 경제활동을 할 수 없다고 느끼기 때문"이라고 진술했습니다.
 
A씨는 지능지수 결과를 받아 든 얼마 뒤 구청에 장애인 등록 신규 신청을 했습니다. 구청은 장애정도 심사 구비서류(장애정도 심사용 진단서)를 제출하지 않았다며 보완 요청을 했습니다. A씨가 이에 응하지 않자 신청을 반려하는 처분을 내렸습니다. 사실 지능지수 72 결과가 나온 A씨는 의료기관에서 '장애정도 심사용 진단서'를 발급받을 수 없었기에 구청의 보완 요청에 응할 수 없었습니다. A씨 측은 구청의 반려 처분은 지능지수가 70이하여야 한다는 법령을 토대로 이뤄진 만큼 경계선 지능인도 장애인으로 인정받을 수 있어야 한다며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하지만 법원은 A씨의 손을 들어주지 않았습니다. 2023년 11월 서울행정법원은 A씨가 낸 반려처분취소청구의소송을 기각했습니다. 법원은 사회보장수급권에 대한 행정부의 광범위한 재량을 이유로 들었습니다.

▶ A씨 반려처분 취소청구소송 1심 판결문 中
"'정신발육이 항구적으로 지체되어 지적 능력의 발달이 불충분하거나 불완전하고 자신의 일을 처리하는 것과 사회생활에 적응하는 것이 상당히 곤란한 사람'에 해당하는지 판정하는 방법을 지능지수 70 이하인 경우로 구체화한 것을 두고 명백하게 현저히 잘못된 입법재량의 행사라거나 그 재량의 일탈·남용에 해당한다고 할 수는 없다"

다만 지적장애 기준이 누군가의 사회보장수급권에 영향을 줄 수 있으며 그 대상을 어떻게 정할지는 사회·경제적 상황 등 다양한 요소를 고려해 달라질 수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현재의 경계선 지능인이 향후에는 장애인으로 인정받을 수도 있다는 의미입니다.

▶ A씨 반려처분 취소청구소송 1심 판결문 中
"지적장애에 관한 기준은 종국적으로 사회보장수급권의 인정 여부와 범위에 관한 규정이므로, 위 기준을 정하는 위임명령인 시행규칙은 헌법과 법령이 정한 범위 내에서는 광범위한 입법 형성의 자유가 인정된다. 어떤 종류의 지적 장애를 어느 범위까지 사회보장권의 수급대상으로 할 것인지는 그 당시의 사회적, 경제적 배경과 공동체의 인식 등 다양한 요소를 고려하여 결정되어야 한다"
 

항소심 "장애인 해당 않고 증거 없다"…장애인 여부 다양한 검사로 결정해야


항소심에서는 6번의 변론기일, 당사자본인신문, 보건복지부에 대한 사실조회신청, 대리인단의 PT 등을 통해 치열한 변론 및 심리절차가 진행됐습니다. 하지만 1심 선고 이후 1년 6개월여 만에 나온 항소심 재판부의 판단도 1심과 같았습니다. 법원은 A씨에 대한 당사자 신문 결과와 보건복지부 장관에 대한 사실조회회신결과 등을 종합할 때 복지법 제2조에서 정한 장애인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렵고, 이를 인정할 증거도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 A씨 반려처분 취소청구소송 2심 판결문 中
"원고는 직업은 없으나 혼자 불편함 없이 거주하고 있고 구직활동이나 여가생활 등을 하는 데에 특별한 어려움이 없어 보인다. 즉, 원고가 스스로 만족할 수 있는 수준의 직업을 가지거나 사회활동을 하기에는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보이나, 이를 넘어서 '장애'라고 인정될 정도로 일상생활이나 사회생활에 상당한 제약을 받고 있다고는 보기 어렵고, 달리 이를 인정할 증거가 없다"
 
법원은 지적장애인 여부를 결정하기 위해서는 지능지수뿐만 아니라 다양한 검사 지표를 함께 고려해 판단해야 한다고 봤습니다. 또 경계선 지능인들에 대한 지원을 강화하는 해외 사례가 있고 경계선 지능인을 지원하기 위한 법률안이 발의된 상태 등을 고려할 때 이들을 보호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필요하다고 판단했습니다.

▶ A씨 반려처분 취소청구소송 2심 판결문 中
"지능지수가 71~85 사이의 경계선 지능인들을 대상으로 장애등록을 할 수 있도록 하거나 등록하지 않더라도 필요한 사회서비스를 제공하고, 장애 정도를 판단하기 위하여 지능지수 외에 다양한 검사 및 자료를 도입하고 있는 해외 사례들이 있는 점, 우리나라의 경우에도 경계선 지능인들을 지원하기 위한 여러 법률안들이 국회에 발의되어 있는 상태이고, 보건복지부에서 경계선지능의 아동과 청소년을 대상으로 교육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으며, 지방자치단체 차원에서 경계선 지능인들을 지원하고 있기도 한 점 등을 고려해 보면, 향후 입법론적으로 경계선 지능인들을 보호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마련하는 것이 필요해 보인다"
 
A씨는 항소심 선고 이후 당혹스러워하면서도 재판정을 찾은 가족들과 변호인들을 먼저 위로했습니다. 그러면서도 A씨는 "더 이상 뭘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말했습니다. A씨는 상고해 대법원 판단을 받을 예정이지만 변호인들은 A씨가 장애인에 해당하는지에 대한 실체 판단을 받을 수 있을지 의문을 갖고 있습니다.

경기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임한결 변호사는 "A씨는 경계선 지능으로 인해 30대 후반이 될 때까지 적절한 직업을 구할 수 없었고, 간단한 아르바이트도 한 달 이상 지속하기 어려웠다"며 "겉으로 보기에는 의사소통도 원활하지만 평균 이상의 지적 능력이 요구되는 일을 해내기 어렵고 특히, 손으로 하는 단순작업은 매우 더디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경제적 독립을 하지 못한 A씨는 가족의 지원 없이는 홀로 살아갈 수 없는 형편"이라며 "A씨가 장애인 신분으로 취업을 도전한다면 지금보다는 훨씬 더 기회가 많을 수 있고 독립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A씨와 같이 '장애인도, 비장애인도 아닌' 경계에 선 이들. 이제는 그 경계를 기준으로 삼을 것이 아니라, 그 경계 너머의 삶을 함께 바라볼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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