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환 앵커] 3년 전 20대 대선 때 일명 '소쿠리 투표' 사건 기억하십니까?
투표용지를 '소쿠리'에 보관해 선거관리위원회가 혁신위까지 꾸리며 사과했는데,
이번에는 투표용지가 투표소 밖으로 반출되는 사고가 났습니다.
자세한 내용 권영철 대기자와 알아보겠습니다. 권 기자 어서오세요! 먼저 3년 전 이른바 '소쿠리 투표' 사건에 대해 선관위가 반성하고 대안까지 내놓지 않았나요?
[권영철 대기자] 그렇습니다.
중앙선관위는 제20대 대통령선거 사전투표 때 발생한 이른바 '소쿠리 투표'의 원인을 분석하고 대책을 마련하기 위해 외부전문가를 포함하는 '선거관리 혁신위원회(2022년 3월 21일부터 4월 18일까지 활동)를 구성했습니다.
위원회에서는 "(코로나19) 격리자 등의 사전투표 참여 수요와 소요 시간을 제대로 예측하지 못하였고, 수도권 등에 격리자 등이 집중되어 있는 점에 대한 대비가 부족하였으며, 절차가 복잡하고 시간이 많이 걸리는 임시 기표소 투표방식을 사전투표에 사용한 점"을 원인으로 진단했습니다.
혁신위는 코로나 확진 격리자 등의 사전투표 절차에 관한 지침인 '특별관리대책'이 부실했음을 솔직하게 인정했습니다.
당시 중앙선관위는 코로나19 확진으로 격리된 유권자들이 기표한 투표용지를 직접 투표함에 넣지 못하게 하고, 참관인이 받아서 대신 투표함에 넣도록 했습니다. 그런데 일부 투표소에서 투표용지를 플라스틱 소쿠리, 종이 상자, 비닐 팩 등에 모았다가 투표함에 투입하도록 했던 것입니다.
'투표용지 외부 반출' 투표소 앞 '부정선거 감시단'. 연합뉴스
[앵커] 비밀투표의 원칙은 기표도 기표소에서 비밀로 해야하지만 투표함 투입도 비밀로 해야하지 않나요?
[대기자] 당연히 그래야 합니다. 그런데 선거인이 기표는 했지만 투표함에 투입하지 못했고, 투입되는 모습을 보지도 못했습니다. 그래서 논란이 됐고, 선관위 사무총장에 이어 중앙선거관리위원장이 책임지고 사퇴했던 겁니다.
[앵커] 3년 전 원인 진단이 '예측 잘못'과 '대비 부족'이었는데, 이번에도 예측 잘못과 운영 부실 아닌가요?
[대기자] 그렇습니다. 중앙선관위는 당시 진단을 했지만 이번에도 예측 잘못과 부실 운영의 잘못을 되풀이 했습니다.
중앙선관위는 채용비리와 부정선거 논란 등으로 엄청난 비난을 받았지요. 그래서 '환골탈태' 하겠다는 각오를 다지기도 했습니다.
노태악 중앙선관위원장의 지난해 신년사 한 대목 들어보시죠.
"지난 한 해 선거관리위원회는 뼈아픈 반성과 성찰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국민들로부터 쏟아진 비판과 질책, 결코 잊지 않겠습니다. 다시는 실망시키지 않겠다는 다짐을 하면서 환골탈태하는 헌법기관으로 거듭나기 위한 변화와 혁신의 필사적인 노력도 쏟았습니다."
[앵커] 결과적으로 '환골탈태'가 이루어지지 않았군요?
[대기자] 그런 셈입니다. 채용비리 때문에 국민적 비판을 받았고, 더구나 12·3 내란 사태의 원인이 부정선거 때문이라는 주장까지 나왔으니까 철저한 대책을 세우는 것이 필요했습니다.
그런데 서대문구 신촌동 사전투표소의 경우 선관위의 진단대로 장소가 매우 협소합니다. 신촌동 투표소의 경우 대학가 근처이기 때문에 관외 사전투표자가 많을 수 있는 곳인데 협소한 곳으로 장소를 정한 겁니다.
해당 투표소의 29일 하루 사전투표자수는 6023명으로 서대문구 전체에서 가장 높았습니다. 관외 투표자가 관내 투표자보다 배 가까이 많았다고 합니다. 물론 민주당 이재명 대선후보가 투표를 하면서 사전투표자가 급증했을 수는 있습니다.
제21대 대통령선거 사전투표 이틀째인 30일 서울 강남구 역삼1동주민센터에 마련된 사전투표소 앞에서 부정선거 감시단이라고 주장하는 단체가 부정선거 감시와 계수를 명분으로 투표 대기 유권자들을 촬영하고 있다. 박종민 기자운영도 부실했습니다. 중앙선관위 스스로 "기표 대기줄이 길어진 상황에서 투표용지 발급 속도를 조절하지 못한 관리상의 미흡함이 있었다"는 것과 "투표소 밖에 경찰 및 안내요원이 배치되어 있었으나, 극소수의 선거인이 대기줄에서 이탈하는 등 대기 중인 선거인에 대한 통제가 완벽하지 못했던 점"에 대해 인정했습니다.
선관위는 3년 전 혁신위에서 선거관리 부실의 원인을 진단하고, 투·개표 인력 조기 확보, 선거현장 지원 강화, 선거인 분산을 위한 혼잡 사전투표소 안내 앱 개발 검토 등 대책을 마련했지만 달라진 건 없었습니다.
민주당과 국민의힘에서는 선관위의 부실 관리를 한목소리로 질타하고 나선 만큼 외부로부터의 강력한 개혁 요구를 받게 될 걸로 보입니다.
[앵커] 투표용지가 투표소 밖으로 반출되는 건 불법인가요?
[대기자] 사전투표의 경우 공직선거법 제158조에서 규정하고 있습니다. 관외 사전투표자의 경우 투표용지와 회송용 봉투를 받아 기표소에 들어가 투표용지에 기표한 다음, 그 자리에서 기표내용이 다른 사람에게 보이지 않게 접어 이를 회송용 봉투에 넣어 봉함한 후 사전투표함에 넣습니다.
법 규정을 보면 투표소 밖으로 투표용지를 갖고 나갔기 때문에 불법의 소지가 있지만, 불법으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습니다. 선거인이 스스로 투표소 밖으로 나간 게 아니기 때문입니다.
제21대 대통령 선거 사전 투표 첫날인 29일 오후 서울 종로구 사직동 주민센터에 마련된 사전투표소에서 유권자들이 투표를 하기 위해 길게 줄을 서고 있다. 오후 5시 현재 전국 평균 투표율은 역대 최고 수준인 17.51%로 집계됐다. 류영주 기자
사전투표관리관이 대기줄이 길어지니까 외부에서 대기하도록 해서 밖으로 나간 겁니다. 물론 그 중 몇 명이 기다리다 인근 식당에서 식사를 하고 왔는데 본인 확인 절차 없이 투표를 했다고 합니다. 투표용지가 관리되지 않는 상태로 외부로 반출됐다는 건 대리투표의 우려가 있지 않겠습니까?
중앙선관위 관계자는 "투표용지를 투표소 밖으로 가지고 나가선 안 된다는 명확한 법 규정은 없다"는 입장입니다. 중앙선관위는 29일 "신촌동사 전투표소 마감 결과, 관외 사전투표자 투표용지 발급매수와 관외 사전투표함 내 회송용 봉투가 정확히 일치하였다"고 밝혔습니다.
선거법 244조 "투표용지·투표지·투표보조용구·전산조직 등 선거관리 및 단속사무와 관련한 시설·설비·장비·서류·인장 또는 선거인명부(거소·선상투표신고인명부를 포함한다)를 은닉·손괴·훼손 또는 탈취한 자는 1년 이상 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만원 이상 3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