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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따가웠지만, 양파 손질 뚝딱"…탈고립 청년이 건넨 도시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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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주

고립·은둔 청년 54만 명. 청년들이 점점 고독해지고 있다. 마음의 문을 닫은 이들은 우울과 무기력에 잠식되고, 4명 중 3명은 죽음을 떠올린 적이 있다고 말한다. CBS노컷뉴스가 고독사 위험 그늘에 놓인 고립·은둔 청년들을 만났다. 청년들은 왜 스스로를 방 안에 가뒀을까. 고립의 원인부터 정책의 한계, 회복의 가능성까지를 9편에 걸쳐 조명한다.

[고독 死각지대, 고립청년⑦]

고립을 이겨낸 청년들이 만든 도시락 80~90여개는 노숙인들과 그룹홈에서 보호받는 청소년들에게 전달된다. 양민희 기자고립을 이겨낸 청년들이 만든 도시락 80~90여개는 노숙인들과 그룹홈에서 보호받는 청소년들에게 전달된다. 양민희 기자
▶ 글 싣는 순서
①빚 노트, 소주병 덩그러니…고독하게 떠난 청년 소연씨의 '흔적'
②[르포]쓰레기 속 웅크린 청년들…닫힌 방 안에 외로움이 쌓인다
③빈 주머니에 다시 방문 닫는다…'고립·은둔 중년' 될까 걱정만
④'우울 감옥' 사는 청년 "고립으로 찐 살 20kg, 내 마음은 쓰레기장"
⑤"저는 30대 고립청년입니다. 그런데 직장을 다니는…"
⑥"죽거나 노숙자가 될 뻔 했는데"…'은둔 스펙'으로 탈고립한 청년
⑦"눈 따가웠지만, 양파 손질 뚝딱"…탈고립 청년이 건넨 도시락
(계속)

#한 청년이 있었어요. 한두 달 일하다 쉬다를 1년, 고립에 고립을 반복한 친구였죠. 어느 날 이 청년이 '이제 나가야지, 뭐라도 해야겠어!' 다짐하고 현관 손잡이를 딱 잡는 순간 공황 증상이 왔다고 해요. 집 안에서 외로움과 고립감, 정서적 우울감, 자살 생각 등이 누적돼 사회불안이 생겨버린 거예요. 밖으로 나간다고 생각하니까 죽을 것 같은 공포가 있었대요. ('푸른고래리커버리센터' 김옥란 센터장 인터뷰 중에서)
 
고립·은둔 청년 10명 중 8명 이상은 현재 상태를 벗어나길 원하고 있다. 고립·은둔 청년을 대상으로 진행한 첫 전국 단위 조사에 응답한 청년의 67.2%는 실제 탈 고립·은둔을 시도했다고 보고 된다.
 
CBS노컷뉴스는 서울시 성북구 보문동에 위치한 '푸른고래리커버리센터(이하 '센터')'를 방문해 다양한 이유로 고립 상태에 놓인 청년들을 직접 만나보고 이들이 사회로 연결되는 과정을 살펴봤다.
 
이곳에서 만난 '탈고립' 청년 이상철(29세·가명)씨는 사춘기 시절 어머니가 부재중이었고 아버지가 요양 병원에 입원하면서 고립 생활이 일상이 됐다고 한다. 그는 과거 6~7년 동안 고립과 은둔 생활을 전전하다가 코로나19 시기와 겹쳐 무거운 나날들을 견뎌냈다.
 
그러던 중 센터와 인연이 닿아 지난 2020년 그룹홈에 입소하면서 서서히 고독의 그림자를 벗어나기 시작했다. 센터 공동생활 코치로 활동하던 상철 씨는 최근 IBK기업은행과 함께 진행된 '나눔도시락' 사업의 실무를 총괄하며 또 다른 청년들을 도왔다.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 시행된 나눔도시락 사업은 총 16명의 참여자로 구성되어 있으며 조를 나눠 도시락 조리와 배달을 담당한다. 도시락은 하루 평균 80~90여개 정도 만들어져 노숙인들과 그룹홈에서 보호받는 청소년들에게 전달된다.
 
도시락 칸을 채우기 위해 각자 맡은 역할이 있다. 음식 재료를 손질하고 있는 청년들의 모습. 양민희 기자도시락 칸을 채우기 위해 각자 맡은 역할이 있다. 음식 재료를 손질하고 있는 청년들의 모습. 양민희 기자
상철씨와 함께 도시락 만들기 프로그램에 참여했던 30대 여성인 A씨는 센터로 온 이후 규칙적인 생활 및  고정적으로 할 일이 있어 이전과는 다른 생기를 되찾았다고 전했다.
 
"양파 손질하는 기술이 늘었어요. 예전에는 눈이 많이 따가웠는데 이제는 속도도 붙고 노하우가 생겨요. 종종 도시락 배달에도 참여하는데요. 어려운 이웃 분들에게 제가 직접 만든 도시락을 드리며 교감하는 게 좋아요. 누가 드시는지 알기 때문에 책임감도 생기고 더욱 정성스럽게 음식을 만들게 돼요."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9년의 공백기를 보낸 30대 남성 B씨도 '고립 동굴'에서 '빛'을 찾아 나섰다며 한층 밝은 모습으로 인터뷰에 응했다.
 
"9년 만에 이렇게 다시 몸을 움직여봐요. 마지막으로 했던 일이 안전 보안 업무였는데, 너무 힘들어서 그만두기를 반복하다 공백기가 길어졌어요. 사람 상대하는 것에 어려움을 느껴서 농사 지으면서 살아볼까 생각도 했고요. 취업 성공 패키지도 살펴보고 했는데 별 도움은 안됐어요. 그동안 '언젠가는 직업이 생기겠지'라는 안일한 마음으로 살아왔지만 직접 도시락을 만들어 보니 희망도 생기고 부모님한테도 조금은 당당할 수 있을 것 같아서 기뻐요."
 
고립·은둔 청년이 그린 자신의 자화상. 양민희 기자고립·은둔 청년이 그린 자신의 자화상. 양민희 기자
김옥란 센터장은 사회로 나가길 원하는 청년들이 처음엔 두려움을 안고 센터에 찾아오지만, '일 경험'과 더불어 야구, 달리기, 글쓰기, 전시회 등 다양한 프로그램에 참여하면서 차츰 자신의 삶을 해석하게 되고 사람들을 대하는 자연스러움 등을 배우게 된다고 말한다.
 
"고립된 청년들이 처음엔 소극적으로 행동을 하다가 하나씩 극복이 되면 무언가 '하고 싶다'를 발견하게 되면서 회복의 과정을 거쳐요. 현재 도시락을 만드는 이들이 그런 친구들이죠. 처음에는 회피형으로 왔다가 극복할 지점이 있는지 발견하고, 이겨내고 버틴 청년들이 일 경험을 해요. 하지만, 훈련 과정 중 누군가 붙잡아주지 않으면 재고립으로 돌아갈 수 있어요."
 

고립 청년들 끌어주고, 밀어주고…민간 이어 정부도 나섰다

 
"천천히 가는 것도 괜찮아요." 인천 청년미래센터 안내도. 양민희 기자"천천히 가는 것도 괜찮아요." 인천 청년미래센터 안내도. 양민희 기자
지난해 8월 보건복지부는 가족돌봄청년, 고립·은둔청년에게 전담 서비스를 제공하는 '청년미래센터'를 인천, 울산, 충북, 전북 등 4개 광역시·도에 개소했다.
 
정부는 힘들 때 기댈 사람이 없거나 집에서 나오기 어려운 고립·은둔 청년들을 위해 초기 상담을 진행하고, 지원이 필요한 것으로 판단되면 프로그램 참여 의지, 고립 수준 등을 고려해 맞춤형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있다.
 
그 중 '일 경험' 프로그램인 '미래컴퍼니'는 고립 청년들이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오전 10시부터 오후 4시 동안 규칙적인 생활을 하며 사회와의 연결을 회복하기 위한 목표로 진행되고 있다.
 
인천청년미래센터에는 청년들이 편하게 '쉼'을 누릴 수 있는 공간들이 곳곳에 배치돼 있었다. 양민희 기자인천청년미래센터에는 청년들이 편하게 '쉼'을 누릴 수 있는 공간들이 곳곳에 배치돼 있었다. 양민희 기자
인천청년미래센터 조윤정 고립·은둔 팀장은 탈고립을 위한 과정으로 규칙적인 생활을 통해 일상을 찾을 수 있는 회복 프로그램인 '미래컴퍼니'의 긍정적 효과에 대해 설명했다.
 
"고립·은둔 청년들은 집에만 있다 보니 낮과 밤이 바뀐 채 생활하는 이들이 많아요. 일상을 찾는 게 결코 쉬운 일은 아니죠. 매일 10시에 센터로 출근한 고립·은둔 청년들이 모여 월요일마다 계획을 잡고 필요한 프로그램들을 선택해서 회복하는 과정을 거쳐요. 나 혼자 하는 건 쉽지 않을 수 있지만, 옆에 비슷한 친구들과 서로 독려하고 격려하면서 참여하기 때문에 성과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고립·은둔 청년 그룹홈 '운영 중단'…실물 지원 필요성도

 고립·은둔 청년들을 위한 공동 생활 공간인 그룹홈. 푸른고래리커버리센터 제공 고립·은둔 청년들을 위한 공동 생활 공간인 그룹홈. 푸른고래리커버리센터 제공 
첫 단추는 끼웠지만, 이제 시작에 불과하다. 통계에 따르면 고립·은둔 청년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경제적 지원'으로 드러났지만, 정부의 대응책은 충분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앞선 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고립·은둔 청년이 가장 필요로 하는 도움은 경제적 지원(88.7%), 취업 및 일 경험(82.2%), 혼자 할 수 있는 활동 지원(81.7%) 등을 들었다.
 
인천청년미래센터에서는 중위소득 100% 이하인 인천 거주 13~34세 청년 중, 아픈 가족과 함께 살며 주된 돌봄을 맡고 있는 청년을 대상으로 연 200만원 한도 내 사용 가능한 지원금을 제공한다. 하지만, 고립·은둔 청년들에 대한 실물 지원은 사실상 없다.
 
조윤정 팀장은 "간혹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싶은데 차비가 없다고 하는 분도 있다"면서 "인천에는 1인 가구 청년들이 많은데, 월세를 내거나 매달 지출하는 금액을 벌지 못해 생활적인 어려움을 호소하는 경우를 많이 봤다. 고립·은둔 청년들에게 일정 수준의 실물 지원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전했다.
 
공공의 영역 외에도 민간과 협력을 구축하는 방안도 함께 마련되어야 한다. 하지만, 현실적인 어려움은 여전히 존재한다. 최근 푸른고래리커버리센터는 20년 넘게 고립·은둔 청년들을 위한 공동 생활 공간인 그룹홈을 운영해왔지만, '주거 공간 확보'와 '인건비 마련'의 한계를 넘지 못하고 올해부터 운영을 잠정 중단하기로 했다.
 
김옥란 센터장은 "공공에서는 자원을 쓰지만, 민간에서는 그런 것들이 연결이 안 되다 보니 일반 후원금으로는 사업에 대한 지속 가능성에 위협들이 많다"고 아쉬움을 토로했다.
 
김성아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은 청년 고독사의 어두운 그늘인 '고립 현상'이 개인을 넘어 사회 구조 속에서 형성된 복합적인 문제인 만큼 보다 종합적인 대안을 모색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고립의 문제가 굉장히 복합적인 요인에서 비롯된 현상이다 보니 국가나 지자체, 거기에 시민사회가 모두 함께하는 방안이 필요합니다. 복합적이고 종합적인 대책이 필요해요. 특히 지역 사회에서 청년을 중심으로 종합 패키지 정책 운용이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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