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지선 씨는 CBS노컷뉴스 취재진을 만나 삶과 죽음의 기로에서 방황했던 고립 경험을 들려주었다. 양민희 기자·AI 생성 이미지▶ 글 싣는 순서 |
①빚 노트, 소주병 덩그러니…고독하게 떠난 청년 소연씨의 '흔적' ②[르포]쓰레기 속 웅크린 청년들…닫힌 방 안에 외로움이 쌓인다 ③빈 주머니에 다시 방문 닫는다…'고립·은둔 중년' 될까 걱정만 ④'우울 감옥' 사는 청년 "고립으로 찐 살 20kg, 내 마음은 쓰레기장" (계속) |
"우리나라는 인생 경로가 정해져 있잖아요. 명문대를 나와 대기업에 들어가고, 좋은 배우자를 만나 가정을 이루는 것. 거기서 벗어나면 망한 인생이 될까 봐 두려웠고, 그래서 더 발버둥치며 살아온 것 같아요."
서울의 한 카페에서 임지선(33·가명)씨를 만났다. 현재 휴직 기간을 가지고 있다는 지선씨. 여느 직장인과 다를 것 없는 평범한 모습이었지만, 그는
한때 삶과 죽음의 기로에서 방황한 고립 청년이었다. 넉넉하지 않은 가정 환경에서도 지선씨는 과도한 입시경쟁 속 서울 상위권 대학에 들어갔다. 좁은 취업 문을 뚫고 대기업에도 입사했다. 누구나 부러워하는 직장이었다. 그는 멈추지 않았다.
끊임없는 경쟁과 성취 중심의 구조에 밀려나지 않기 위해 이를 악물었다.
인생은 도장 깨기의 연속이었다. 사회가 정해 놓은 틀 안에 벗어나지 않기 위해 자신을 채찍질했다. 하지만,
'완벽하게 살아야 한다'는 강박은 그를 깊은 우울 속으로 끌고 갔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시기와 맞물린 2021년. 연고가 없던 지방으로 인사 발령이 난 지선 씨는 그곳에 머문 1년여간
주변과 차단된, 사회적 거리를 둔 고립 상태가 됐고 우울감은 증폭됐다.
박재영 청년재단 이음사업팀장은 청년들이
고립·은둔 방식을 택한 이유는 이 시대를 살아가는 청년의 수만큼 다양하다고 분석한다. 사례를 들여다볼수록 각기 다른 이야기지만, 이를 관통하는 맥락은
일종의 사회적인 '압박'이 있다고 전했다.
"청년들은 인생의 주요 과업으로 불리는 이행기를 보내게 되는데요. 대학, 군대, 취업, 주거나 생활의 독립, 결혼, 육아 등 이런 것들에서 뒤처졌을 때 눈치를 보고, 루저 취급 등 압박을 받는 것 같아요. 다름을 인정하지 않는 분위기 때문에 주저앉고 밖으로 나오기가 힘들어지는 거죠."
결국 '탈락', '실패'에 대한 공포가 고립으로 이어진다는 분석이다.
우울감에 '젖은 수건' 같아…청년들 정신 건강은 '빨간불'
고립 상태였던 지선씨는 코로나19 시기에 우울증 약이 8알로 늘어났다. 임지선씨 제공 "회사에서 정상인인 척 연기를 하고 집에 오면 '젖은 수건'처럼 늘어져 있었어요. 몸을 일으킬 힘조차 없어서 아무것도 하지 못하죠. 퇴근하고 음식 배달부터 시켜요. 누워서 먹고 남은 음식들을 침대든 책상에 올려 두면 그대로 썩어 악취가 퍼져요. 방은 감정 상태와 비슷해요. 제 마음이 쓰레기장인걸요."
지방에 홀로 남겨진 지선 씨는 그 시기에 분노 조절, 공황장애, 신경안정제 등을 처방 받으면서 약이 8알까지 늘어갔다고 털어놓았다. 자판기처럼 약만 내주는 병원을 믿을 수 없었다. 하지만 수면제를 먹지 않으면 잠들지 못했고 쿵쾅거리는 심장에 숨을 쉬기 어려웠다.
고립 상태에서 우울감, 약에 의존. 그는 살이 20kg나 불어났다. 살이 찌고 사람을 만나는 게 두려워지면서 밖으로 나가지 않은 시간이 길어졌다.
직장 밖 유일한 도피처였던 집은 점점 쓰레기로 가득 찬 동굴로 변해갔다.
혼자서는 고립의 고리를 끊어낼 방법이 보이지 않았다던 그가 죽음과 가까워졌던 어느 날. 결국
구급차가 지선 씨 집 앞에 도착한 이후에야 깊어진 우울을 세상에 꺼낼 수 있었다.고립 청년들이 방 안으로 파고든 이유에 대해 백종우 경희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다양한 이유가 있겠지만, 그중
상처를 피하려다 상처를 받은 청년들이 실제 우울을 호소하거나 불안 등 정신건강 문제를 호소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고 분석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 통계를 살펴보면
최근 20·30대 청년층의 우울증 환자 증가폭이 뚜렷하게 보였다. 우울증 환자는 2018년 약 75만3011명에서 2023년 약 104만6816명으로 39% 급증했다. 특히 우울증 환자 중 20·30대 환자 비중은 2023년 기준 36%로, 2018년 26% 대비 10% 포인트 증가했다.
청년기 정신 문제 상담 경험율 1위…인식·비용 부담도↑
AI 생성 이미지청년의 정신건강 도움 요청 과정과 의미에 대한 탐색 연구(보건사회연구원·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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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인식이 아직 있다 보니…우울증 같은 거를 정신병자라고 생각하니까. 사회생활을 다시 하거나, 취직할 때도 지장이 있는 거라고 생각했어요.(참여자A)
#최대 3만 원씩 해도 한 달이면 십몇 만 원이잖아요. 알바 해봤자 60만 원? 이렇게 밖에 못 버는데…(참여자B)
#'아, 내가 나약한가 보다'라는 생각이 강했죠. (중략) 그리고 상담을 받는다고 뭐가 괜찮아질까 하고 의심이 많았어요.(참여자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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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들의 정신 문제 상담 경험 또한 타 연령층 대비 가장 높게 나타났다. '2024 자살예방백서'에 따르면 2022년 연령대별 성인의 정신 문제 상담 경험률은 청년기 7.4%, 장년기 5.3%, 중년기 2.8%, 노년기 2.1%로 청년기가 가장 높았다.
하지만 일부 청년들은
진료 기록에 대한 불안감, 사회적 낙인 등을 이유로 정신과 진료 및 심리 상담을 기피하고 있다. 고립된 이들에겐 무기력이 잠식된 상황에서
'상담이 실질적 도움이 안 될 것 같다'는 인식도 팽배하다.
국민건강보험으로 정신과 진료는 일부 보장되지만, 심리상담은 비급여 항목이라서 쉽게 접근하기 어려운 점도 존재한다.
실제 상담 비용은 평균 회당 5만~10만 원 수준. 장기 치료가 필요한 경우 청년에게는 큰 부담일 수 있다.
정부는 이를 개선하기 위해 정신건강 검사를 일반 건강검진에 포함하는 방안을 발표했다. 올해부터 20~34세 청년들이 2년마다 건강검진을 받을 때 정신건강 상태도 함께 점검하게 된다. 또한
2027년까지 100만 명에게 심리상담 서비스를 제공하겠다는 계획도 내놨다.
해당 계획은 분명
의미 있는 목표이지만,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 해결해야 할 과제는 존재한다.
'정부의 100만명 심리 상담 정책'에 대해 정신분석학회는 "여론을 위한 홍보 정책에 불과하다"고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 이어 "전문가인 정신과 의사의 역할, 정신과 진료 효과를 개선할 고민과 노력이 포함돼있지 않다"면서 "막대한 비용도 들어갈 것"이라고 비판했다.
코로나19를 관통한 세대…끊어지지 않은 '단절 고리'

코로나19 이후 사회적 단절로 인한 악순환의 고리가 끊어지지 않아 청년들의 '고립'이 깊어졌다고 보는 시각도 있다.
이윤석 시립대학교 도시사회학과 교수는
코로나19 팬데믹 시기에 취업난, 경제·심리적 어려움으로 사회적 관계가 약해진
'고립 청년'들이 급증 추세를 보였다고 분석했다.
"특히
코로나19 이후 사회적 관계 층이 굉장히 약해진 부분이 있는데요. 이 시기에 청년들이 고립 상황으로 내몰리는 경우가 꽤 많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통계청 등에 따르면 코로나19 팬데믹 이전인 2019년에는 19~34세 고립 청년 비중이 3.1%에 그쳤지만, 2021년에는 5%대로 늘어났다. 이 수치를 인구총조사에 적용하면
고립 청년의 수는 2019년 약 34만 명에서 코로나19 시기를 관통한 2021년에는 약 54만 명으로 크게 늘어난 것으로 추정한다.
국회예산정책처는 지난해 12월 '고립·은둔 청년 지원사업 현황과 고려사항' 보고서를 통해 "코로나19 대유행을 거치며 대면 소통이 어려운 청년이 증가하면서 사회적 관계 안전망이 악화되고, 학업·취업 경쟁 등 위기 시 회복 탄력성이 떨어져 고립·은둔 청년이 증가하는 추세"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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