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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더위에 거길 또?" 성북구청 공무원들 시름 커지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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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로 20회 맞은 성북구 새마을가족 한마음 수련대회
매년 강원도 삼척에서 열려…주민센터별 3~5명 참석
"부당한 업무" 내부 반발…구청 "안전 관리 등 목적"
구청 "인원 최소화, 내년부터 장소 변경 논의 중"

연합뉴스연합뉴스
이른 무더위가 찾아왔던 7월 성북구청 공무원들 사이에서 '삼척'은 날씨만큼이나 뜨거운 소재였다.

지난 8일 성북구청 내부망의 한 게시판에는 "살려주세요"라는 제목의 글이 올라왔다. 작성자는 "이번에도 어김없이 끌려가게 됐다. 정말 너무하다"라고 토로했다. "삼척 싫어요"라는 글도 올라왔다. 작성자는 "땡볕에서 주민들 수중 들고, 짐 날라주고, 술 마셔주고. 이게 지금 정당한 '근로'인가"라고 푸념했다.

논란이 된 행사는 오는 25~26일 예정된 '성북구 새마을가족 한마음 수련대회'다. 서울에서 약 280㎞나 떨어진 강원도 삼척에서 열리는 이 행사에 성북구청 공무원들이 올해도 동원되는 계획에 구청 직원들의 불만이 높아지고 있다.

"매년 여름 무슨 고생인지"

지난해 강원도 삼척에서 열린 2024 성북구새마을가족 하계수련회 일정이 진행되는 모습. 독자 제공지난해 강원도 삼척에서 열린 2024 성북구새마을가족 하계수련회 일정이 진행되는 모습. 독자 제공
성북구 새마을회가 주관하는 이 행사는 강원도 삼척 맹방에 위치한 성북구 수련원에서 열린다. 2003년부터 거의 매년 열리는 연례 행사로 올해 20회를 맞는다.

구민들이 모여 친목을 다지는 뜻깊은 시간이지만, 구청 공무원들에게는 피하고 싶은 시간이기도 하다. 첫 행사부터 안전 관리·민관 협력 명목으로 공무원들이 동행했는데, 이후로도 매번 사실상 억지로 동원된다는 뒷말이 나오는 것이다.

무더운 여름, 주말을 반납한 채 삼척까지 동원되는 성북구청 공무원들은 구민들이 놀고 즐기는 동안 온갖 궂은 일을 도맡아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한 구청 직원은 수련원에서 새마을지도자가 사용할 텐트들을 치고, 술이나 회 등 음식을 사 오는 일을 했다고 말했다. 그는 "(수련원) 내부에는 (음식이나 술을) 팔지 않아 새마을지도자들이 챙겨오는데 그걸로 부족한 경우가 허다하다"며 "(지도자들이) 더 먹겠다고, 술이 떨어졌다고 하면 우리 직원들은 술을 안 먹었으니 시내로 심부름을 갈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또 다른 구청 직원은 내부망 게시판에 "매년 여름마다 무슨 고생인지 모르겠다"며 "냉방 시설은 전무하고, 하루 종일 시중들고, 노래자랑 빙자한 주정 대회 고성방가 다 들어주고, 말도 안 되는 민박에 5~6명씩 구겨져서 자고…"라고 했다.

다른 직원이 "가기 싫으면 가기 싫다고 얘기하라"고 하자 또 다른 직원은 "어떻게 얘기해요…우리 사장님이 저녁이랑 그 다음날 아침에 동별 텐트 돌면서, 동장은 있는지, 주민들은 얼마나 왔는지 다 출석체크하는데"라고 적었다. 그러면서 "들고 가야할 짐도 많고 챙겨야 할 주민도 많을텐데 어떻게 한 두 명만 데려가겠나. 최대 4명이 다 가야지…"라고 덧붙였다.

구청은 올해 행사 참석인원을 약 500명으로 추산했다. 주요 내빈 50여명에 성북구 새마을지도자 350명, 구청 관계자 약 100명을 더한 것이다.

지난 21일부터는 주민센터에서 민생회복 소비쿠폰 지급 업무까지 더해진 탓에 공무원들의 시름은 더 깊어졌다. 일이 산처럼 밀려오는데, 주말도 반납하고 삼척까지 이동해 온갖 일을 해야 한다는 생각에 직원들의 불만이 커지는 모양새다.
 

공무원 업무? 안전관리 지원?


적잖은 구청 공무원들은 부당한 업무 지시라며 반발한다. 지방공무원 복무에 관한 예규에 벗어난다는 얘기다.

한 성북구청 관계자는 "지방공무원 복무에 관한 예규의 출장조치 가능 여부를 보면, '민간기관 주최 행사에 초청되어 참석하는 경우 해당 공무원의 업무와 관련이 있고, 소속기관의 대표 자격으로 참석하는 경우에는 출장조치 가능'이라는 내용이 있다"며 "하지만 행사 일정에는 주민센터 직원들이 대표성을 띠거나 관련된 업무를 하는 것이 없다"고 말했다.
 
2025 성북구 새마을가족 한마음 수련대회의 주요일정. 독자 제공2025 성북구 새마을가족 한마음 수련대회의 주요일정. 독자 제공
실제로 '2025년 성북구 새마을가족 한마음 수련대회 지원계획'을 보면 △수련대회 개회식 △동별 노래자랑 및 레크리에이션 △인근 해변 산책 및 해수욕 △경품추첨 등이 주요 일정이다.
 
아울러 이들은 행사 장소가 삼척이란 점도 문제 삼고 있다. 이동 시간만 편도로 3시간이 넘는다. 서울 내 일부 자치구들은 구 내 체육관 등에서 행사를 진행한다고 한다.
 
반면 성북구청 입장은 다르다. 새마을운동조직 육성법 3조에 따라 해당 행사를 지원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또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에 따라 안전관리 지원을 위해 공무원들이 근무할 수 있다고 반박한다.

성북구청 측은 "서울시 성북구 지방공무원 여비 지급 규칙과 지방공무원 복무규정에 따라 1박 2일 지원 근무자는 출장여비와 시간외수당, 대체휴무 중 원하는 방식을 선택해 보상을 받는다. 금요일 당일 지원 근무자는 출장여비 또는 시간외 수당 중 선택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장소가 삼척인 이유에 대해서는 "성북구 삼척수련원은 성북구가 소유하여 운영하는 시설로 새마을회 단체원들이 무료로 사용 가능하다. 숙박 비용 절감을 통해 다른 내실 있는 프로그램을 추가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삼척시는 성북구의 자매결연 도시로 삼척시 특산물 구매 및 대표 관광지 방문 등을 통해 우호 관계 형성 및 지역경제 활성화에도 기여한다"고 덧붙였다.

다만 성북구청 측은 직원들의 불만을 고려해 동장 외 1명만 참석, 다른 인원은 자율 지원하는 방식으로 최소한의 인원만 차출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명단이 제출된 주민센터 직원은 76명인데, 본인의 의사와는 반하게 참석하는 경우가 있는지도 검토하고 있다고 한다.
 
구청은 행사 장소를 내년부터는 근교나 실내가 될 수 있도록 새마을회에 제안하고 논의 중이라고 밝혔다. 또 한때 직원들 사이에서 참가비 4만원을 내야 한다는 소문이 퍼졌던 것에 대해서는 "주민센터 등 지원 근무에 참여하는 공무원에게는 받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구청은 CBS노컷뉴스 취재가 시작된 이후 오는 25일로 예정됐던 '2025 성북구새마을가족 한마음 수련대회'를 9월로 연기한다고 알려왔다. 또 이 행사에는 주민센터 직원들은 참여하지 않을 계획이라며 "향후 수련회 방식과 구 참여 방안 대폭 개선을 논의할 것"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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