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화 '트론: 아레스' 스틸컷. 월트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제공때로 영화의 러닝타임은 영화관을 나선 후에도 이어집니다. 때로 영화는 영화관을 나서는 순간 비로소 시작합니다. '영화관'은 영화 속 여러 의미와 메시지를 톺아보고, 영화관을 나선 관객들과 함께 이야기를 나눠보고자 합니다. [편집자 주] ※ 스포일러 주의 전에 없던 CG로 영화계를 놀라게 했던 SF는 화려한 디지털 세계와 액션이라는 볼거리로 이제 인간의 자유의지와 존재론적인 문제까지도 넘본다. 더이상 AI(인공지능)이 먼 미래나 근미래 이야기가 아닌 현재의 이야기가 된 시점에 '트론: 아레스'는 지금 인류가 직면하고 있고, 또 한 번쯤 가질 법한 질문들을 던진다.
가상 세계에서 창조된 존재를 현실 세계로 끌어올 수 있는 시대, 그곳에서 탄생한 AI 최종 병기 아레스(자레드 레토)는초인적인 힘과 속도, 고도 지능으로 설계되어 무한히 재생될 수 있지만 기술의 한계로 현실 세계에 단 29분만 머무를 수 있다.
그러던 중, 세계 최고의 프로그래머 이브 킴(그레타 리)은 기술의 한계를 넘어설 해답을 발견하게 되고, 아레스가 점차 통제를 벗어나 자신만의 목적을 향해 움직이기 시작하자 인류는 역사상 한 번도 경험한 적 없는 최악의 위기에 처하게 된다.
외화 '트론: 아레스' 스틸컷. 월트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제공그동안 인간을 디지털 세계로 보냈던 '트론' 시리즈는 '트론: 아레스'(감독 요아킴 뢰닝)에서 디지털 세계의 프로그램을 현실로 불러들이는 전환을 시도한다. 이는 AI가 인류의 삶에 깊숙하게 들어온 상황에서 시의적절한 선택으로 다가온다.
특히나 AI가 과연 인류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인지 아니면 위협이 될 것인지를 두고 갑론을박이 벌어지고 있는 현실에 '트론: 아레스'는 디지털 존재를 인간화해 보여줌으로써 이러한 논쟁 안으로 관객들을 깊숙이 끌고 들어간다.
'트론: 아레스'는 시작부터 디지털 세계의 존재를 현실로 데려와 영화 속 사람들과 관객들의 눈앞에 둔 후, 과연 그 존재를 '무엇'으로 바라봐야 할지 묻는다. 무엇보다 이를 디지털 존재를 중심에 두고 묻는다는 점이 특별한 지점이다. 이를 통해 AI에 대한 윤리적인 질문과 동시에 '인간'이라는 존재에 대한 철학적인 질문도 가능해진다.
영화 속 엔컴과 딜린저는 AI를 바라보는 두 가지 방식을 대변한다. 군사 기술로 보는 딜린저와 인류 발전과 공존의 해법으로 보는 엔컴은 애초부터 대립할 수밖에 없다. AI를 둘러싼 현대 사회의 대표적인 질문 중 하나다. 영화는 AI에 관한 가장 기본적인 질문부터 시작해 보다 복합적인 질문으로 향한다. 마치 카메라가 거시에서 미시의 세계를 반복적으로 비추듯 말이다.
아레스는 딜린저 보안 프로그램의 마스터 컨트롤 프로그램으로서 창조주 딜린저의 명령을 수행한다. 그러나 처음 현실 세계로 나와 쏟아지는 비를 느끼면서 '감각'이라는 것을 인지하게 된다. 이후 인간이라는 존재와 감각을 통해 느낀 현실을 곱씹던 아레스는 결국 딜린저의 명령을 무시하고 자의적인 판단을 통해 이브를 구하고, 현실의 '29분' 한계를 극복할 영속성 코드를 받기로 한다.
외화 '트론: 아레스' 스틸컷. 월트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제공프로그램이 명령어를 무시하고 자체 판단을 했다는 것은 일종의 '자유의지'를 의미한다. 어떤 것을 이론적으로 설명하는 게 아니라 말로 대체하기 어려운 감각인 '느낀다'는 것을 통해 이미 인간적인 길로 들어섰던 아레스는 자유의지를 갖게 되며 영속성 코드, 다시 말해 현실의 인간을 꿈꾸게 된다.
명령이라는 정해진 운명을 벗어난 아레스는 명령에 갇힌 채 현실 세계에서 사라지게 된 아테나를 향해 명령이 존재 이유는 아니라고 한다. 그건 '프로그래밍'일뿐 AI의 존재 이유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고 말하며 하나의 독립적이고 자율적인 존재로서의 의의를 전한다.
이것은 바로 인간이 인간으로서 존재하는 가장 큰 의미이자, 주체로서 삶을 살아가는 방식이다. 그렇게 아레스는 스스로 '인간'이라는 존재를 느끼고 경험하고 정립한다. 그의 태생이나 어떤 존재인지와 관계없이 아레스의 사고와 마음은 이미 영속적으로 '인간'이 됐음을 의미한다.
이런 아레스에게 영속성 코드를 발견할 기회를 주는 '이브'라는 여성 주인공의 이름도 흥미로운 지점이다. 최초의 인류라 하는 이브와 똑같은 이름을 가진 주인공 이브가 '영속성 코드'를 발견해 현실에서는 비영속적인 존재였던 아레스에게 영속성을 부여한다는 설정은 성경 혹은 신화와 연결되며 또 다른 이야깃거리를 제공한다.
외화 '트론: 아레스' 스틸컷. 월트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제공이브는 이름 자체가 '생명' 또는 '모든 산 자의 어머니'를 뜻한다. 이브는 금지된 선악과를 먹은 후 벌로 유한한 생명, 즉 죽음과 함께 고통을 받아들여야 하게 된다. 즉 선악과를 통해 인간은 선과 악을 알게 되고, 욕망을 가진 존재가 된 것이다.
이브로부터 영속성 코드라는 선악과를 받아든 아레스는 아이러니하게도 유한한 생명의 인간이 된다. 앞서 이브는 아레스에게 세상을 빛나게 하는 건 아프게도 해서 인간의 삶은 복잡하고 힘들다고 한다. 그 말처럼 아레스는 영속성 코드라는 선악과를 먹고 복잡하고 고통이 깃든 인간의 삶의 한가운데로 들어오게 된 것이다. 그러나 유한함과 고통이야말로 인간임을 느끼게 하는 요소라는 점이 아이러니한 것이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이러한 내용을 시각적으로 관객에게 더 와닿도록 영화는 거시에서 미시로 카메라를 이동하는 움직임을 자주 보여준다. 현실이라는 거시 세계와 그리드라는 미시의 세계로 향하는 여정, 거대한 존재론적 탐구에서 개인적인 삶으로 들어가는 아레스와 이브의 동행을 카메라 워크로 표현해냈다.
이러한 윤리적이고 철학적이며 동시대적인 질문을 던지는 '트론: 아레스'는 SF 블록버스터인 만큼, 장르의 본질에 충실하기 위해 다양한 볼거리에도 신경 썼다.
외화 '트론: 아레스' 스틸컷. 월트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제공기본적으로 빨강과 파랑에 초록색으로 이뤄진 디지털 세계 그리드와 각 그리드에 소속된 프로그램들을 활용한 장면 등 스타일리시한 사이버 펑크의 세계관은 '트론' 시리즈의 정체성을 말해준다.
특히 컴퓨터 언어들이 인간화되는 등 0과 1로 이뤄진 디지털 세상을 시각화한 장면은 물론, 오토바이 체이싱을 비롯한 여러 액션 시퀀스가 눈을 즐겁게 한다. 여기에 '소셜 네트워크'로 제83회 아카데미 시상식 오리지널 스코어 트로피를 품에 안은 인더스트리얼 록 밴드 나인 인치 네일스의 감각적인 음악이 사이버 펑크 세계관에 동력을 불어넣는다.
SF 블록버스터 '트론: 아레스'가 철학적인 질문까지 가져갈 수 있었던 데에는 두 주연 배우의 공이 크다. '달라스 바이어스 클럽' '파이트 클럽' '블레이드 러너 2049' '하우스 오브 구찌' 등 다양한 작품에서 깊이 있는 연기를 보여준 자레드 레토의 아레스는 그 자체로 설득력을 가진 캐릭터가 됐다. 인간화되는 AI라는 독특한 존재의 변화를 그려내기에 자레드 레토만큼 적역은 없을 거다.
여기에 '패스트 라이브즈'로 전 세계 평단과 관객의 마음을 훔친 그레타 리는 할리우드를 대표하는 콘텐츠인 블록버스터 안에서도 충분히 역할을 해내고 존재감을 드러낼 수 있음을 입증했다. 배우로서 확장성을 증명한 그레타 리가 보다 넓은 할리우드를 누비길 기대하게 된다.
119분 상영, 10월 8일 개봉, 쿠키 있음, 12세 이상 관람가.
외화 '트론: 아레스' 포스터. 월트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