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동민 전 의원. 연합뉴스검찰이 '라임 사태' 핵심 인물인 김봉현 전 스타모빌리티 회장으로부터 불법 자금을 받은 혐의로 기소됐다가 1심 무죄 판결을 받은 기동민 전 의원 등에 대해 항소를 제기했다. 최근 이재명 대통령이 검찰의 기계적 항소 관행을 지적한 가운데 나온 검찰의 행보라 주목된다. 같은 혐의로 1심 무죄 판결을 받은 이수진 민주당 의원 등에 대해선 항소를 포기한 것과도 대비된다. 검찰의 선택적 항소 혹은 여전한 기계적 항소가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12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남부지검은 지난달 26일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 1심에서 무죄를 받은 민주당 기동민 전 의원과 김영춘 전 해양수산부 장관에 대해 항소장을 제출했다. 반면 민주당 이수진 의원과 국회의원 전 예비후보 김모씨에 대해선 항소를 하지 않기로 했다.
검찰은 "1심 법원의 판결 내용과 제반 증거 및 항소심에서 판결 변경 가능성 등을 면밀히 검토한 결과, 공여자들의 신빙성 있는 공여 진술 및 이에 부합하는 증거가 존재하는 기동민과 김영춘에 대해선 항소심의 판단을 받아볼 필요가 있다고 봐 항소를 제기하고, 나머지 2명의 피고인들에 대하여는 항소를 제기하지 않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앞서 기 전 의원은 제20대 총선 후보였던 2016년 2~4월 양재동 화물터미널 부지 관련 인허가 알선과 선거자금 등 명목으로 정치자금 1억원과 200만원 상당 양복을 수수한 혐의로 2023년 2월 불구속기소 됐다.
이 의원의 경우 2016년 2월 500만원, 김 전 장관은 같은 해 3월 500만원, 전 예비후보 김씨는 그해 2월 5천만원을 받은 혐의를 받았다.
류영주 기자
하지만 1심 재판부는 "검찰이 주요 증거로 제시한 김봉현의 진술과 수첩이 일관되지 않아 신빙성이 있다고 보기 어렵다. 피고인들이 김봉현으로부터 불법 선거자금을 수령해 정치자금으로 사용했다고 볼 자료도 없다"며 전원 무죄 판결을 내렸다.
또 "김봉현이 정치권 인맥을 과시하는 과정에서 피고인들에게 청탁한 것처럼 언급했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물론 1심 무죄가 나온 사건이 2심에서 유죄로 뒤집히는 사례도 있기에 검찰의 항소 자체를 비판하긴 어렵지만, 이번 항소를 두고는 여러 뒷말이 나온다. 1심 무죄를 받은 4명에 대해 재판부가 사실상 동일한 판단을 내렸다는 점에서 2명은 항소 포기, 2명은 항소로 판단한 기준이 명확하지 않다는 시각이다.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달 30일 용산 대통령실에서 열린 제44회 국무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이번 항소는 이재명 대통령이 최근 검찰의 기계적 항소를 비판한 가운데 이뤄진 것이어서 주목되기도 한다. 이 대통령은 지난달 30일 국무회의에서 "검사들이 되도 않는 것을 기소해서 무죄받고 나면 면책하려고 항소하고, 면책하려고 상고하면서 국민에게 고통을 준다. 왜 방치하느냐"며 "무죄를 한 번 더 확인하려고 95%는 항소심에 가서 생고생하고, 98%는 대법원에 가서 엄청나게 고통받는 것"이라고 질타했다.
검찰이 1심 판결까지 5년 7개월이 걸린 이 사건을 마냥 포기하긴 어려우면서도, 이러한 외부 기류를 의식한 결과가 결국 '선택적 항소'로 이어진 게 아니냐는 의심도 나온다.
부장검사 출신 한 변호사는 "하급 법원의 판결에 오류가 있을 수 있다는 점에서 검찰의 상소가 무조건 잘못됐다고 비판할 수는 없다"면서도 "수사와 재판만으로도 큰 고통을 받을 수 있다는 점에서 자동반사적이거나 선택적 상소라는 비판을 받을 여지는 없는지 자체 검열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항소를 했더라도 1심 재판부의 판단처럼 돈을 줬다는 인물들의 구체적 진술이 엇갈리고 객관적 증거가 없다는 점에서 검찰이 새로운 물증을 제시할 수 있을지도 미지수다.
1심 재판부는 기 전 의원에게 돈을 줬다는 김봉현 전 회장과 이강세 전 스타모빌리티 대표와 관련해 "(돈을) 교부했는지 여부, 교부 주체, 교부의 방식에 관해 진술이 일치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또 "이 사건 당시 김봉현의 피고인 기동민에 대한 공무원의 직무에 속한 사항의 알선에 관한 청탁 및 피고인 기동민의 승낙이 있었다고 보기 부족하고, 달리 이를 인정할 증거가 없다"고 했다.
아울러 "김봉현의 진술과 이 사건 수첩의 기재에 합리적 의심을 배제할 정도의 신빙성이 존재한다고 인정하기 어렵다"며 "달리 검사가 제출한 증거들만으로는 이 부분 공소사실이 합리적 의심의 여지가 없이 증명되었다고 보기 부족하고, 달리 이를 인정할 증거가 없다"고도 판단했다.
한편 기 전 의원은 전날 입장문을 통해 "무오류의 독선에 빠진 검찰이 선택적 항소로 또다시 사법부에 도전하고 있다"며 "이번 사건은 정치검찰의 전형적인 행태이자 검찰 스스로 모순을 드러낸 상징적 사건"이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억울한 마음에 잠을 이루지 못한 날들이 많았지만, 끝까지 진실로 맞서겠다. 반드시 이겨내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