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뉴스네덜란드 정부가 핵심 기술 유출 우려로 중국 기업이 소유한 자국내 반도체 업체의 경영권을 장악하는 이례적인 조치를 취한 가운데 이로인해 차량용 반도체 공급에 차질이 빚어질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16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유럽자동차제조업협회(ACEA)는 자동차 제조업체들과 공급업체들이 지난주 넥스페리아로부터 반도체 공급을 더는 보장할 수 없다는 통보를 받았다고 전했다. ACEA는 이로 인해 자동차 생산에 상당한 차질이 발생할 수 있다고 밝혔다.
네덜란드 소재 기업 넥스페리아는 과거 필립스 반도체의 후신인 NXP 반도체에서 갈라져 나와 자동차와 전자제품에 들어가는 범용 반도체를 주로 생산하며, 지난 2019년 중국 기업 윙테크에 인수됐다.
네덜란드 정부는 최근 넥스페리아의 핵심 기술이 윙테크로 유출될 우려가 있다며 이 회사의 경영권을 장악하는 비상조치를 취했다. 이후 넥스페리아가 자동차 업체들에 반도체 공급 차질 가능성을 통보한 것.
미국의 주요 자동차 제조사를 대변하는 자동차혁신연합(AAI)도 반도체 공급 차질 우려를 제기하며 신속한 문제 해결을 촉구했다. GM, 도요타, 포드, 폭스바겐, 현대차 등이 AAI의 주요 회원사들이다.
존 보젤라 AAI 회장은 "자동차용 반도체 출하가 빠르게 재개되지 않으면 미국과 다른 많은 나라의 자동차 생산이 차질을 빚고 다른 산업에도 파급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익명을 요구한 일부 자동차업체들도 넥스페리아가 만드는 반도체가 꼭 필요한 미국 자동차 공장들이 이르면 다음달 자동차용 반도체 공급 부족의 영향권에 놓일 수 있다고 밝혔다.
로이터는 또, 독일 폭스바겐과 BMW의 유럽 내 생산은 아직 영향을 받지 않았지만 잠재적 공급 위험을 파악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전했다.
네덜란드 정부의 조치에 중국은 반발하고 나섰다. 린젠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지난 13일 정례브리핑에서 "관련 국가(네덜란드)는 응당 시장 원칙을 준수하고 경제·무역 문제를 정치화해선 안 된다"고 주장했다.
네덜란드가 차량용 반도체 공급 차질 우려, 그리고 중국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민간기업의 경영권 장악이라는 이례적 조치를 취한 것은 미국의 압력 때문으로 보인다.
14일 네덜란드 법원 판결로 공개된 회의록에 따르면 지난 6월 미국 상무부 산업안보국은 네덜란드 외무부와의 회의에서 "'수출규제명단' 예외 자격을 얻으려면 (넥스페리아) CEO가 교체돼야 하는 게 거의 확실하다"며 "해당 기업의 CEO가 여전히 동일한 중국인 소유주라는 사실 자체가 문제"라고 말했다.
미국 상무부는 지난해부터 넥스페리아의 모회사 윙테크를 수출규제 명단에 올려 규제하고 있다. 또, 지난달에는 모회사가 수출규제 명단에 오르면, 그 자회사도 자동적으로 규제 대상이 되는 규정을 마련했다.
따라서, 윙테크의 자회사인 넥스페리아가 미국의 수출규제 대상에서 빠지기 위해서는 CEO를 교체하는 등 중국 기업과의 관계를 단절시켜야 한다고 미국 측이 네덜란드 측에 압력을 가한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