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시간 랭킹 뉴스

"통장 빌려주면 1천만원" 제안에 캄보디아행…50대 남성의 증언

노컷뉴스 이 시각 추천뉴스

닫기

- +

이 시각 추천뉴스를 확인하세요

'통장 빌려주면 거액 준다' 말 믿고 캄보디아 향한 50대
도착하자 여권 압수…거래 막히자 새 계좌 발급 강요
빚 떠넘기며 발 묶는 '현지 범죄 구조'
"생활고 처한 이들 노린 모집책 국내 곳곳에 있어" 증언도

16일(현지시간) 캄보디아 프놈펜 인근 범죄단지인 태자단지 내부에 생활 흔적이 남아있다. 연합뉴스16일(현지시간) 캄보디아 프놈펜 인근 범죄단지인 태자단지 내부에 생활 흔적이 남아있다. 연합뉴스
"통장만 빌려주면 1200만 원을 받을 수 있다는 말에 넘어가 캄보디아행 비행기에 올랐습니다. 운 좋게 그곳에서 빠져나왔지만 아직도 거기엔 젊은 한국인들이 많이 있습니다."
 
17일 부산 해운대경찰서에 따르면 한 남성이 지난 15일 경찰서를 방문해 캄보디아 현지 범죄 조직에게 자기 명의의 통장을 빌려줬다고 자수했다.
 
이 남성은 50대 A씨로, 며칠만 통장을 빌려주면 거액의 수고비를 준다는 제안에 속아 캄보디아로 향했다. 생활고를 벗어날 수 있다는 희망도 잠시, 그가 도착한 곳은 벗어날 수 없는 범죄 소굴이었다.

사건의 발단은 7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A씨는 자신을 사업가로 소개한 인물로부터 '사업 자금을 보낼 통장이 필요한데 개인 사정으로 한국에 입국할 수 없다'며 '통장을 빌려주면 1200만 원을 지급하겠다'는 텔레그램 메시지를 받았다.
 
이 인물은 통장 입·출금이 가능한지 여부 등 간단한 확인을 거친 후 경비로 쓰라며 곧바로 A씨에게 90만 원 상당을 지급했다. 신용불량자였던 A씨는 이같은 제안이 의심스러우면서도 현지로 가면 더 큰돈을 받을 수 있다는 생각에 캄보디아로 향했다.
 
프놈펜 공항에 도착한 A씨를 맞이한 건 텔레그램으로 연락을 주고받던 한국인과 조선족, 캄보디아인 등 3명이었다. 이들은 그를 차량에 태워 시아누크빌의 한 건물로 데려갔고 여권과 통장 등을 압수했다. 이후 A씨는 이른바 '웬치'로 불리는 범죄단지로 끌려갔다.
 
A씨의 계좌에는 하루 만에 범죄자금 3500만 원이 입금됐다가 2300만 원이 빠져나갔다. 하지만 반복된 이상거래로 지급이 정지되면서 나머지 금액이 인출되지 않자 조직원들은 '며칠 지나면 거래 정지가 풀린다'며 A씨의 발을 묶었다.
 
이들 조직은 은행과 직접 영상통화를 시켜주기도 했지만 이후에도 거래 정지가 풀리지 않자 '새 통장을 발급해 오면 돈을 주겠다'며 그를 다시 한국으로 돌려보냈다. A씨는 이후에도 지난달까지 두 차례 더 캄보디아를 찾았지만 약속했던 수고비는 받지 못했다.

A씨는 자신이 머물렀던 '웬치'가 비교적 덜 잔혹한 곳이었다고 전했다. 그는 "총책이 누구나에 따라 분위기가 엄청 다르다"며 "운 좋게 신고 있던 신발 사진으로만 출입을 확인하는 곳에 머물렀다. 더 심한 곳은 출입 자체가 불가능하다"라고 말했다.
 
이어 "사실 몸에 문신이 많고 덩치도 커서 비교적 좀 강한 인상이긴 하다. 수고비를 왜 안 주냐며 세게 나가자 겨우 보내줬다"며 "보통 사람이라면 못 나왔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캄보디아 시아누크빌에 있는 범죄 단지로 추정되는 건물 모습. 연합뉴스캄보디아 시아누크빌에 있는 범죄 단지로 추정되는 건물 모습. 연합뉴스
현지 조직의 수법은 치밀했다. 이들은 추적을 피하고자 계좌를 쉽게 개설할 수 있는 인터넷 은행 통장과 유심이 없는 휴대전화 등을 주로 사용했다.
 
자금세탁 과정에서는 입출금이 정지되거나 자금이 엉뚱한 곳으로 새어 나가면 통장 명의자 빚으로 전가했다. 또 카지노를 권유해 빚을 만들기도 했다.
 
그는 "돈 사고가 나면 모조리 통장 명의자인 '장주'의 빚이 된다. 건물 대부분이 1층은 카지노, 2층은 사업장 구조라 조직원들이 카지노를 해보라며 권유해 빚을 만들기도 한다"며 "이를 갚지 못하면 때리고 일을 시킨다. 반항하는 사람에게는 강제로 마약을 투약해 이 사실을 캄보디아 당국에 알리겠다며 협박한다"라고 말했다.
 
A씨는 국내 곳곳에서 '장집'이라고 불리는 대포통장 모집책들이 활동 중이라고 전했다. 이들은 생활고에 처한 사람들에게 통장을 빌려달라며 접근한다. 또 50~100만 원 상당을 선지급하며 신뢰를 쌓은 후 현지로 오면 더 큰 돈을 줄 수 있다며 유혹한다는 게 A씨의 설명이다.
 
범죄 조직에서 빠져나온 A씨는 범죄에 가담한 사실에 죄책감을 느껴 결국 경찰에 자수했다. 그는 "관련 보도가 계속 나오면서 범죄에 가담했다는 죄책감이 컸다. 거기 가 있는 젊은 한국인들이 아직 많은데 안전하게 구조되길 바란다"며 "범죄 단지 위치나 구조 등에 대해 알고 있으니 경찰 수사에 혹시 도움이 될까 해 자수했다"라고 말했다.
 
한편 경찰은 A씨를 사기방조와 전자금융거래법 위반 등 혐의로 입건해 구체적인 범행 경위 등을 조사하고 있다.



0

0

실시간 랭킹 뉴스

오늘의 기자

※CBS노컷뉴스는 여러분의 제보로 함께 세상을 바꿉니다. 각종 비리와 부당대우, 사건사고와 미담 등 모든 얘깃거리를 알려주세요.

상단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