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8일 전주시 서신동 주민센터에서 고유가지원금을 신청한 주민이 선불카드를 받고 있다. 기사와 직접적인 관계 없음. 심동훈 기자고유가 피해지원금 신청에 있어 시각장애인을 위한 점자 표기가 없는 선불카드가 지급되거나 발달장애인을 위한 쉬운 안내 등이 없어 장애인들의 불편이 빚어지는 가운데, 국가인권위원회(이하 인권위)는 현행 지원금 신청 제도에 "차별의 여지가 있다"고 밝혔다.
유리테이프 붙여 구분하라고?…장애인 '정보 접근권' 침해하는 차별일수도
앞서 고유가 피해지원금 신청을 두고 주민센터에서 발급하는 선불카드에 점자 표기가 되어있지 않거나, 카드를 구분할 수 있는 표식이 없어 시각장애인들이 불편을 겪고 있다는 문제가 제기됐다.
1일 국가인권위원회 안은자 장애차별조사1과장은 CBS노컷뉴스와의 인터뷰에서 "현행 장애인차별금지법에 따르면 시각장애인에겐 그 특성을 고려한 방식으로 행정 서비스가 제공돼야 한다"며 "선불카드에 점자 표기가 없는 것은 차별이라고 볼 수 있는 여지가 있다"고 밝혔다.
시각장애인 유승렬(54)씨가 CBS노컷뉴스와 인터뷰하는 모습. 카드번호 유출을 막기 위해 모자이크 한 신용카드와 고유가지원금 카드. 김대한 기자
사용과 잔액 확인에 있어 발생하는 어려움을 두고선. 장애인의 정보 접근에 있어 비장애인과 차별하면 안 된다고 명시하고 있는 현행 장애인 차별금지법(이하 장차법) 제20조를 언급했다.
안 과장은 "선불카드에 남은 잔액이 얼마인지를 알아야 예산 규모에 맞는 사용이 가능한데, 그 구분이 어려우면 마땅한 정보 접근에서의 차별로 볼 수 있다"며 점자 표기가 없는 카드는 비장애인보다 장애인의 정보 접근권을 침해하는 것이기에 차별의 여지가 있다"고 말했다.
10만 원과 50만 원이 충전된 카드를 구분하지 않고 발급한 것을 두고 일부 주민센터에서 "유리 테이프를 붙여 구분하라"는 말을 한 것을 두고서는 "시각장애인은 테이프가 붙어있는 카드가 얼마짜리 카드인지를 늘 신경 쓰고 다녀야 한다"며 "보기만 하면 쉽게 구분할 수 있는 비장애인에 비해 시각장애인에게 추가적인 부담을 지우는 것은 차별이라고 볼 수 있다"고 덧붙였다.
조력자 없이 신청 엄두도 못내는 발달장애인…인권위 판단 사례는
A은행이 모바일 메신저로 보낸 고유가 피해지원금 신청 안내. 발달장애인들은 안내만 보고서는 고유가 피해지원금이 무엇인지, 어떻게 어디로 가서 신청해야 하는지 알 수 없다. 심동훈 기자
점자 표기가 없는 선불카드와 더불어, 인지기능이 낮은 발달장애인들을 위한 쉬운 안내가 없어 보호자나 조력자가 없이는 원활히 지원금을 신청할 수 없는 구조 또한 인권위의 판단 경향에 따르면 차별에 해당할 수 있다는 의견도 나왔다.
앞서 인권위는 지난 2024년 지적장애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은행 대출을 거부당한 사례를 두고 발달장애인이 이해할 수 없는 어려운 용어로 이뤄져 작성이 어려운 대출 서식을 제공하지 않는 것은 차별에 해당한다며, 금융위원장에게 발달장애인의 특성을 고려해 대출 등 금융상품을 알기 쉽게 설명하는 안내서 발간을 권고하는 취지의 결정을 내린 바 있다.
연합뉴스안은자 과장은 "장애인차별금지법은 다양한 사회·환경적 요인에 따라 다른 개인의 의사결정 능력을 고려해 정당한 편의 제공을 할 수 있게끔 하고 있다"며 "2024년의 사례를 참고하면 발달장애인의 경우엔 쉬운 안내를 하는 것이 편의에 해당하는데, 고유가 피해 지원금 신청 과정에서 (발달장애인이) 고려되지 않았다면 차별이라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대한민국의 많은 복지제도는 형식적인 측면에서 장애인을 제한하거나 배제하지 않지만, 실질적인 신청에 있어 차별이 발생하는 경우가 많다"며 "애초 정책 설계 당시에 장애인을 포함한 다양한 계층을 고려해야 하는데, 신청주의에 따라 제공되는 우리나라 복지 시스템상 어려운 점이 많은 것 같다"고 말했다.
신청 자체도 문제지만…장애인의 '자기 결정권' 보장 여부가 본질
고유가 피해지원금을 두고 시각·발달 장애인이 겪는 어려움은 현행 대한민국의 복지 정책 대다수가 장애인의 '자기 결정권'을 보장하지 않는 비장애인 중심의 복지제도라는 것을 여실히 드러낸다.
정윤화 전주대학교 작업치료학과 교수는 "현재의 지원금 신청 방식은 장애인에게 조력자나 보호자의 도움 없이 어려운 구조다"며 "누가 대신 신청해 주는 제도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발달장애인을 비롯한 장애 당사자의 자기 결정권이 함께 보장되어야 하는 문제다"고 지적했다.
장애인의 날인 지난 4월 20일 서울 종로구 광화문 서십자각 인근에서 연 결의대회에서 참가자들이 손팻말을 들고 있다. 기사와 직접적인 관계 없음. 연합뉴스그는 발달장애인 당사자의 자기결정권을 보장하는 지원금 신청 방식으로 조용한 대기 공간과 명확한 동선 안내, 충분한 설명 시간 제공, 신청 단계별 안내 등을 언급하며 "장애인 친화적인 행정이란 장애인을 '대신 결정해 줘야 하는 대상'으로 보며 '특별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시각에서 벗어나는 것이다"고 말했다.
김영웅 한국장애인식개선교육원 원장 또한 "국민 중 장애 인구와 유형은 주무관청이 모두 파악하고 있어 지원금 제도 시행 시 발달장애인이나 시각장애인처럼 점자 정보나 쉬운 용어집 등 자료의 지원이 필요한 경우 선별해서 제공할 수 있다"며 "해당 내용을 준수해 제도를 시행하는 것을 담당 공무원들의 인사고과에 반영하는 방식으로 개선이 이뤄진다면 복지 사각지대에 놓이는 장애인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