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자 A씨가 지난 1월 복직했지만, 사무실의 책상과 의자는 비어있었다. 독자 제공건국대학교의 산학협력단(협력단)에서 직장 내 괴롭힘을 당한 뒤 부당해고까지 겪은 피해자가 법정 싸움 끝에 복직에 성공했지만, 원직 복직은커녕 제대로 된 대체 업무조차 주어지지 않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업무를 부여하지 않은 채 노동자를 방치하는 행위는 근로기준법상 직장 내 괴롭힘에 해당할 소지가 있어, 학교 측이 해고 복직자에 대해 2차 가해를 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게다가 복직 과정에서 피해자에 대한 협력단의 보복 고소가 있었다는 의혹도 제기된다.
3일 CBS 노컷뉴스의 취재를 종합하면, 부당해고 판결을 받고 복직한 건국대 협력단 산업기술연구원 A씨는 원직 복직 대신 텅 빈 사무실에 방치되고 허드렛일을 부여받는 등 사측의 업무 배제와 고소에 시달리다 결국 고용노동부에 직장 내 괴롭힘을 신고하고 정신적 피해를 호소하며 산재 재요양을 신청한 것으로 파악됐다.
"텅 빈 사무실과 면벽수행"…가혹한 복직 현실

A씨는 올해 1월 2일 자로 복직했으나 마주해야 했던 복직의 현실은 철저한 고립이었다.
A씨는 복직 후 5일 동안 별다른 업무 없이 대기해야 했다. 이후 1월 7일 해고 전 근무지로 복귀했지만 업무 수행에 필요한 기기와 서류가 전면 반출돼 모두 비워진 상태였다.
행정 업무에 필수인 컴퓨터조차 주어지지 않았고, 빈 책상과 의자만 놓여 있었다. 그 동안 관리했던 서류함도 대부분 비워져 있었다. A씨는 정신적 충격을 받았고, 사측은 A씨가 정상적인 업무 수행이 어렵다고 판단했다며 3월까지 약 2개월간 대기발령을 냈다. 복직 후 불과 일주일 만의 조치였다.
대기발령된 사이 협력단은 이메일을 통해 "본래 부서로는 배치가 불가능하다는 결론을 내렸다"면서 A씨가 진행하던 업무와 유사한 업무를 부여하고, 새로운 업무에 잘 적응할 수 있도록 필요한 지원을 검토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3월에는 본래 소속이었던 산업기술연구소 대신 협력단 경영지원팀으로 배치됐지만 현재까지 약 두 달 동안 A씨가 부여받은 업무는 관행대로 처리되던 직인 날인 몇 번, 한 달에 한 번 꼴인 방향제 구매 등 심부름 수준의 허드렛일이 전부였다. 행정시스템에 접속할 권한조차 주어지지 않은 채 A씨는 공식적인 업무 없이 하루 종일 모니터만 바라보는 사실상 '면벽수행'을 이어가야 했다.
전문가들은 업무를 부여하지 않거나 행정시스템 접근 권한조차 부여하지 않는 행태는 대표적인 직장 내 괴롭힘에 해당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올해 4월 노동부가 개정한 '2026년 직장 내 괴롭힘 신고사건 처리지침'에 따르면, 업무에 필요한 주요 비품을 제공하지 않거나 사내 인트라넷 차단 등으로 원활한 업무 수행을 방해하는 행위는 괴롭힘으로 인정될 수 있다. 또한 업무를 부여하지 않는 '업무 미부여' 역시 대표적인 괴롭힘 예시에 포함된다.
'하라' 노동법률사무소 권남표 노무사는 "아무 잘못도 하지 않았는데 3년 간의 소송 끝에 복직한 사업장이 폐허같은 공실이고, 인트라넷 접근도 차단된 업무 배제는 일반적으로 감내하기 어려운 인격권 침해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다만, 교내 인권센터는 일련의 복직 후 과정에 대해 직장 내 괴롭힘을 인정하지 않았다. 건국대 인권센터는 지난달 18일 결정서를 통해 복직 직후 업무 미부여 및 장시간 대기, 형사 고소 등에 대해 "근로기준법에서 정한 직장 내 괴롭힘 행위를 한 점이 인정되지 않는다"며 신고 사실을 기각했다.
건국대는 사실상의 업무배제 상황에 대해 "복직 결정 직후 사무공간, 전산장비, 계정, 업무 환경 등을 모두 완비하고 검토하는 데에는 현실적으로 일정한 준비 시간이 필요했다"며 "일부 미비한 부분은 복직을 방해하기 위한 목적이 아니라 실제 행정 절차상 준비 과정에서 발생한 사항"이라고 해명했다.
또 복직 일주일 만에 대기발령을 내린 데 대해선 "면담 과정에서 해당 근로자가 상당한 수준의 고통을 토로하는 등 혹시 있을지도 모를 사건사고에 대한 우려가 큰 상황이었다"며 "해당 조치는 징계가 아니었으며, 대기발령 기간 동안에도 급여는 100% 정상 지급됐다"고 밝혔다.
2년 넘는 법정 투쟁 끝 승소했지만…번복된 상고 포기
복직해 찾아간 사무실 서류함도 비워져 있는 모습. 독자 제공A씨가 현재 겪고 있는 문제는 직장 내 괴롭힘과 그에 이은 부당해고의 연장선상에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사건의 발단은 지난 2021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A씨는 2021년 10월부터 건국대 산업기술연구원에서 연구 간접비 관리 및 청구, 비용 결제, 법인카드 처리 등 전반적인 연구행정 업무를 담당해 왔다. 하지만 2023년 9월 새로 부임한 당시 산업기술연구원장의 폭언과 부당한 업무지시 등 직장 내 괴롭힘을 겪다 그해 10월 31일 계약만료를 통보받고 해고당했다.
해고 시점을 기준으로 A씨의 계속 근로 기간은 2년을 초과했기 때문에, 기간제법에 따라 이미 기간의 정함이 없는 무기계약직 근로자로 전환된 상태였다.
노동위원회와 법원은 이를 근거로 계약 만료를 핑계 삼아 일방적으로 근로관계를 종료한 것은 정당한 이유가 없는 명백한 부당해고라고 일관되게 판단했다. 과거 A씨와 행정 처리 문제를 두고 언성이 높아진 전 원장의 과격한 표현과 모욕 등에 대해서는 교내 인권센터가 일부 괴롭힘을 인정하기도 했다.
이후 기나긴 법정 투쟁 끝에 서울고등법원에서도 승소하자, 지난해 12월 9일 협력단 측은 A씨에게 상고 포기 사실과 함께 복직 명령을 통보했다.
그러나 협력단은 복직 통보 이틀 뒤인 12월 11일 대법원에 기습적으로 상고장을 제출하며 돌연 입장을 번복했다. 갑작스러운 대법원 상고 속에서 서류상으로만 복직 명령이 이행된 셈이다. 끝내 올해 4월 대법원이 협력단의 상고를 기각하며 A씨의 최종 승소가 확정됐다. 대법원 승소에도 A씨의 복직 갈등은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공익신고 보복 고소 의혹…극도의 스트레스로 재요양 신청
건국대학교 산학협력단 홈페이지 캡처협력단이 형사 고소를 통해 피해자를 압박하려 한 정황도 있다. 협력단은 A씨가 퇴직 후 연구행정시스템에 무단 접속해 내부 정보를 열람하고 외부 진정에 사용했다며 업무방해와 정보통신망법 위반 등의 혐의로 지난해 11월 경찰에 고소했다.
A씨는 해당 고소가 2024년 국민권익위원회에 전 산업기술연구원장의 연구비 부당 사용 의혹 등을 공익신고한 것에 대한 보복성 조치라고 주장한다.
복직을 앞둔 지난해 12월에는 가해자 측 대학 소속 교수가 A씨에게 연락해 복직과 밀린 급여 제공, 그리고 협력단의 고소를 취하하겠다며 그 대신 "전 산업기술원장과 협력단, 산업기술연구소 관련 모든 진정, 민원, 고소 등을 취소하라"는 상호 취하 제안을 건네기도 했다. A씨 측은 이러한 정황이 공익신고에 대한 보복이자 피해자 압박을 위한 조치였다고 의심하고 있다.
올해 4월 협력단의 고소는 경찰에서 무혐의 판단이 나왔다. 하지만 복직 후 갑작스러운 경찰 조사를 받아야 했던 억울함과 극심한 불안은 복직을 준비하던 A씨의 건강을 급격히 악화시켰다.
A씨의 주치의는 의무기록과 소견서를 통해 회사 복직 이후 스트레스로 인해 우울 등 정서적 불안정성이 악화했다며 적극적인 치료가 필요하다고 진단했다.
전국대학노조도 나서 지난 3월 협력단장에게 "부당해고 판정 이후 복직 과정에서의 인사조치 문제", "직장 내 괴롭힘 피해자 보호조치 문제", "공익적 문제 제기 이후 발생한 불이익 조치"를 안건으로 내걸고 면담을 공식 요청하기도 했지만 사태는 나아지지 않았다.
결국 A씨는 지난 4월 노동부 서울동부지청에 직장 내 괴롭힘을 신고했고, 이어 5월 근로복지공단에 건강 악화를 이유로 산재 재요양 신청서를 접수한 상태다.
앞서 사측의 부당 해고와 가해자의 폭언 스트레스로 2023년 10월부터 요양결정을 받았던 피해자가, 복직 이후 이어진 가혹한 업무 배제와 고소 압박으로 질병이 재발해 또다시 구제를 요청하게 된 것이다.
연합뉴스건국대는 상고 포기 약속을 번복한 데 대해 "외부 전문 인력으로부터 타 학교법인의 유사 판례를 근거로 상고가 가능할 수도 있다는 번복 의견을 송달 받았다"며 "만일, 협력단이 해당 근로자에 대해 부당한 조치로서 상고를 진행했다면 밀린 임금 지급 및 복직 명령 등을 이행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해명했다.
또 "상고 여부는 협력단이 실질적인 지휘·감독의 주체가 아님에도 근로계약상 사용자로서 인정받은 것에 대한 최후의 판단을 받기 위한 절차적인 것이었을 뿐 특정 근로자에 대한 부당한 조치가 아님을 설명 드린다"고 했다.
보복고소 의혹에 대해서는 "관련 절차는 모두 법률 검토에 따라 진행되었으며, 협력단은 수사기관과 사법기관의 판단(무혐의)을 존중하고 있다"며 "이와 별도로 협력단은 해당 근로자가 겪고 있는 정신적 고통을 해소하기 위해 인사 면담, 유급휴가 부여 등을 실시하는 방법으로 갈등 해소를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대학의 한 교수가 상호 고소 취하 연락을 피해자에게 한 데에는 "연락을 한 해당 교수가 올해 초 퇴직했다"며 "현재 연락이 닿지 않는다"고 밝혔다. 그러면서도 "다만 양측에서 다수의 소송이 이루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소모적인 소송전을 계속하지 않고 양측간 합의나 협의를 추구하는 행위가 법률적으로 특이한 사례는 아닌 것으로 추정된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