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역 앞 버스정류장에서 한 외국인 관광객이 20인치 이상 캐리어를 들고 버스에 탑승하려다 제지당하고 있다. 정혜린 기자 | ▶ 글 싣는 순서 |
①"승차권 카드로 못 사요?" 부산 지하철서 난감한 외국인들 ②"큰 캐리어는 X"…부산 시내버스 앞 외국인들 '어리둥절' (계속) |
"전에는 같은 캐리어를 들고 탔던 적이 있어서, 버스에 캐리어 반입이 안 되는 줄은 몰랐습니다. 버스에 안내 표시가 있었지만, 타기 전까지는 알아채지 못했습니다."
러시아에서 온 관광객 알렉스 루트소바(24·여)씨는 부산역 앞 버스정류장에서 시내버스를 타려다가 제지당했다. 그녀가 버스에 탑승하려는 순간, 기사는 대형 캐리어를 가리키며 손으로 '엑스(X)'를 그렸다. 캐리어를 들고 버스에서 내린 그녀 얼굴에선 영문을 몰라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캐리어 규정 몰랐어요" 당황하는 외국인 관광객들
부산 시내버스는 20인치를 초과하는 대형 캐리어를 들고 탑승할 수 없다. 그러나 부산역 앞 버스정류장에는 이 규정을 모르는 외국인 관광객들이 캐리어와 함께 버스를 기다리는 모습이 심심찮게 보였다.
정류장 가장자리에 관련 안내문이 붙어 있었지만, 크기가 작고 눈에 잘 띄지 않아 관광객들은 이를 미처 발견하지 못하고 그냥 지나쳤다. 버스 출입문 쪽 창문에도 안내 스티커가 붙어 있지만, 버스에 탑승하기 전에는 눈치채지 못하는 경우가 대다수였다.
지난 2023년 부산시 시내버스 운송 약관 개정으로 가로·세로·폭 합이 110cm(캐리어 기준 20인치 크기), 무게 20kg을 초과하는 짐은 시내버스에 반입하지 못한다. 승객 안전과 편의를 위한 조치다. 그러나 최근 부산을 찾는 외국인 관광객이 급증하면서, 이 규정을 모른 채 '승차 거부'를 당했다고 호소하는 관광객도 덩달아 늘고 있다.
부산역 앞 버스정류장에 시내버스 탑승 안내문이 부착되어 있지만 정류장 규모에 비해 크기가 작고 눈에 잘 띄지 않는다. 정혜린 기자이에 부산시는 지난 4월부터 대형 캐리어를 반입할 수 있는 시내버스를 시범 운행하고 있다. 영도와 부산역, 서면을 잇는 85번 노선 버스 12대가 대상이다. 이 버스는 관광객이 30인치 대형 캐리어도 들고 탈 수 있다. 캐리어는 교통약자석 공간에 설치한 고정 장치에 고정해야 한다.
비록 시범 운행이지만, 이 버스도 여러 제약은 있다. 출퇴근 시간에는 대형 캐리어를 반입할 수 없고, 승객으로 붐비는 경우 운전기사 재량으로 반입을 제한할 수 있다. 또 교통약자석을 이용하는 방식이어서 휠체어 이용객 등이 탑승한 경우 캐리어를 고정할 수 없다. 시범 운행이 끝난 뒤 제도가 정착되거나 확대될지도 미지수다.
부산시 관계자는 "관련 민원을 고려해 반입 시범 사업을 시작했다. 현장 상황과 이용도 분석 등을 종합해서 앞으로 제도 확대 등을 검토할 예정"이라며 "관광 수요가 밀려드는 상황에서 시민 편의와 안전 측면도 고려해야 해 쉽게 결정할 수 없는 문제다. 가급적 편의성을 높일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해외 관광도시도 대책 고심…"안내 강화·연계 서비스 필요"
버스 승객 안전과 관광객 편의 사이에서 고심하는 건 부산만의 문제가 아니다. 비슷한 문제를 겪는 해외 주요 관광도시들은 저마다 실정에 맞는 방식으로 대책을 마련했다.
일본 대표 관광도시로 꼽히는 교토는 '빈손 관광' 정책을 펼치고 있다. 교토는 승객이 버스에 캐리어를 반입하는 행위를 전면 금지한다. 대신 당일 대중교통을 이용한 승객이 숙소까지 짐을 배송해주는 서비스를 이용하면 할인 혜택을 제공한다.
체코 프라하는 대형 캐리어를 들고 타는 승객에게 '수하물 전용 티켓'을 별도로 구매하게 한다. 캐리어로 인해 버스가 혼잡해지니, 그만큼 발생하는 사회적 비용을 관광객에게 부담하도록 한다는 취지다.
부산역 앞 버스정류장에서 외국인 관광객이 대형 캐리어를 소지한 채 버스를 기다리고 있다. 정혜린 기자전문가는 외국인이 알기 쉽도록 시내버스 캐리어 반입 규정에 대한 안내를 강화하고, 짐 배송 서비스를 '부산비짓패스'와 같은 관광 상품과 연계하는 방안 등 현실적인 대안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조언한다.
경성대 도시계획학과 신강원 교수는 "관광객 입장에서 버스를 타려다가 제지당하면 허탈한 감정이 든다. 캐리어 반입 금지 규정을 사전에 충분히 안내하는 체계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며 "부산역 등 주요 거점에서 짐을 배송해주는 서비스를 '비짓부산패스' 등과 연계해 할인해주는 것도 현실적인 방법이 될 수 있다. 무작정 제도를 확대하기보다는 안내 체계와 연계하는 정책을 먼저 마련해야 한다"고 제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