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14일 두 번째 정규앨범 '건강한 사회의 일원'을 발매한 싱어송라이터 해파. 해파 제공불안장애가 심해 병원을 다니던 시절이었다. 갔던 두 번째 병원의 의사 선생님이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나를 빨리 고치고 수리해서 다시 (컨베이어) 벨트에 올려놔서, 사회의 알맞은 곳에 끼워 넣는 것'을 자기 사명으로 여기는 것 같았다. "제가 어떻게 느끼는지는 생각 안 하고 (우울하다고 하면) 빨리 아르바이트를 늘려보라고 하더라고요. 그걸 매주 들었죠. 일정한 수입을 벌고 잠을 잘 자고… 그게 어려워서 온 건데. (제가) 수치적인 아웃풋을 낼 수 있게 잘 기름칠해서 돌려보내야겠다고 생각했나 봐요."
그때 머리에 박힌 문구가 있다. '건강한 사회의 일원'. 평소 '프렌즈'(FRIENDS) '오피스'(the office) 같은 코미디 시리즈 보기를 즐기다 보니, 거기서 으레 등장하는 엉뚱한 가사의 '뮤지컬 신'이 함께 떠올랐다. 맘속에 품었던 '건강한 사회의 일원'이라는 단어를 꺼내, 이런 제목의 시리즈물이 있다면 그 사운드 트랙(삽입곡)을 만들면 어떨까 하는 생각으로 시작했다.
대여섯 곡짜리 EP(미니앨범)를 만들자는 게 첫 구상이었으나, 프로듀서 조월을 만나며 사이즈가 커졌다. 정규앨범으로 키웠다. '아, 이거는 EP로 하기엔 좀 아깝다!' 싶었다. "(조월님이) '8곡 이상으로 해서 명반 만들자!' 해서 '예, 알겠습니다!' 했죠. (웃음)" 2022년 2월 발매한 '죽은 척하기' 이후 약 3년 10개월 만에 새 정규앨범 '건강한 사회의 일원'을 만들게 된 계기다.
CBS노컷뉴스는 이달 초 서울 양천구 CBS노컷뉴스 사옥에서 싱어송라이터 해파를 만나 정규 2집 '건강한 사회의 일원' 제작기를 들었다. 첫 번째 편에서는 더블 타이틀곡 중 하나인 '건강한 사회의 일원' 이야기가 중심이 된다.
어쩐지 엇박자같이 시작하는 '건강한 사회의 일원'은 처음부터 "목표는 건강한 사회의 일원으로 당신을 기능하게 하는 것입니다"라고 곡의 기획 의도를 밝힌다. '자신을 미워하지 않고 / 세상을 두려워하지 않고 // 사람을 무서워하지 않고 / 규칙을 어려워하지 않고 / 일인분의 삶을 살아내는 / 변화에 적응할 줄 아는' 사람이 되자고 권한다.
6월 초의 어느 날, 서울 양천구 CBS노컷뉴스 사옥에서 싱어송라이터 해파를 만났다. 해파 제공"제가 못하는 것들을 하나하나 쓴 거예요. 제가 하나같이 못 하는 것들이거든요. 1인분의 삶을 못 살고 있다는 그 수치심과 죄책감에서 나온 앨범이나 다름없기 때문에 약간 제가 못하는 것들을 다 집어넣어서 '건강하게 살아보세요~ 사회의 일원이 되세요~ 괜찮아요 할 수 있어요~' 하는, 약간 디스토피아적인 노래를 만들어 보고 싶었어요. 저는 왠지, 어떤 기저(바닥이 되는 부분)인지 모르겠지만 그런 노래를 만들면서 약간 죄책감과 수치심이 풀리는 느낌, 위안이 되는 경험이었어요."
가사로 쓴 내용을 지금은 조금 더 잘하게 됐는지 물었다. 해파는 "나를 좀 덜 미워하게 됐고 세상을 덜 두려워하게 된 건 있는 것 같다"라면서도 "그래도 그게 그… 보통의 '선'이 있다면 그 위냐 하면 절대 아니고 작년(의 저)보다는 나아지지 않았나"라고 전제했다. 이어 "아주 조금씩이지만, 제가 작년이나 1집 만들었을 때를 되돌아보면 그때에 비해서는 꽤나 내가 골짜기를 넘어왔다는 생각"이라고 덧붙였다.
사람들이 손 내밀어주는 경험도 했다. 해파는 "'아, (세상이) 그렇게 무서운 곳은 아닐지도?' 싶었다. 음악가라는 정체성이 없었다. 어, 약간… 아직도 '무슨 일 하세요?' 하면 (답하기) 좀 부끄럽고… '저 음악하는데요'라고 하기 부끄러웠는데, 최근에서야 '그래도 나도 음악하는 음악가구나, 커뮤니티의 일원이구나' 하는 자각을 갖게 됐다. 내적으로 발전했다. 나를 좀 덜 업신여기게 됐다"라고 돌아봤다.
'내가 받아들여진다'라는 감각은, '건강한 사회의 일원' 합창단을 구할 때 느꼈다. 처음 생각한 건 세 명이었다. "저도 외향적인 사람이 아니라서 정말 7~8명의 합창단을 부를 순 없고, 그래도 3명은 모을 수 있지 않을까 했는데 전날 한 분이 못 오시겠다고 했어요. 두 명은 (합창이) 좀 아닌데? 해서 전날 밤 급히 수소문했죠. 제게 선뜻 시간이 된다는 분이 두 분, 그래서 4명이 된 거예요. 정말 합창단, 이 정도면 합창단! 네 명이 노래를 불러줬고 너무 좋았어요."
"제가 막 엄청 친하지 않다고 생각했던 뮤지션들"이 선뜻 '저 시간 돼요! '저 할게요!'라고 도와준 것 자체가 해파는 '받아들여지는 기분'이었다. "제가 막 페이(돈)를 주는 것도 아니고 '나중에 앨범을 보내드립니다' 이런 정도였거든요. 홍보랑 PR 이런 게 너무 머리 아프고 죽을 것 같다고 징징댔더니 '제가 보도자료 쓰는 거 도와줄까요?' 한 분도 있어요. 와!! 미친 거 아니야? 내가 손을 뻗지도 않았는데 내밀어주고, 뻗으면 닿아지고, 그런 것이구나… 그런 따뜻한 경험이, 확실히 있었어요."
'건강한 사회의 일원' 악보를 보는 해파의 모습. 해파 제공'건강한 사회의 일원'에서 제일 마음에 드는 부분도 바로 이 '합창'이다. "시간이 촉박해서 그냥 내 목소리 열 개로 해서 할까도 했다"라며 웃은 해파는 "그래도 합창하는 게 좋지 않을까 하고 급박하게 사람을 모았는데, 확실히 '이걸 하길 잘했다' 생각이 들었다"라고 밝혔다.
아쉬운 점은 없을까. "사실 저는 '아, 나왔다!' 하면 치워놓고 '됐어, 나 그거에 대해서는 (더 이상) 생각하지 않는 편이다"라고 운을 뗀 해파는 "(노래) 박자가 착시 박자다. 당기는 박으로 만들어졌다. 연주자들도 많이 헷갈려했다. 서로 다르게 본달까? 원(原)이 다른 거다. '아니, 이거 당기는 거예요'라고 말해도, 처음 원이 다르면 절대 그렇게 안 느껴진다. 약간 연주자들 사이에 이슈여서 조금 더 착시가 없는 거로 했어야 하나 싶었다"라고 설명했다.
브라스(쇠붙이로 만든 관악기)가 곡 특징을 살리는 요소로 쓰였다. 이는 프로듀서 조월의 제안이었다. "이건 그냥 제 예금으로 만드는 앨범"이라 "사람도 잘 몰랐고, 상상력의 크기도 되게 작아"서 "브라스를 리얼 악기로 쓰는 건 전혀 상상도 못 한 일"이었다는 해파는 그러나 조월의 제안에 "오, 네! 좋을 것 같아요"라고 바로 수용했다.
브라스 소리는 이 곡이 가진 "교조적인 역할"에 "확실히 힘을 실어줬다." 해파는 "마지막 빵빠레 소리가 군가처럼 웅장한 느낌이다. '아, 나 진짜 이 사회의 일원이 되고 싶다' 하고 고취시키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아, 이건 다른 얘긴데 면접 보러 가면서 이걸 듣고 합격했다는 분이 있어서 '아, 이렇게 마케팅해야 하나?' 생각했다"라고 웃은 해파는 "저는 비꼬는 의도로 썼더라도 '나, 정말 건강한 사회의 일원이 되어야지!' 하고 듣는 분들도 있다는 게 재미있었다"라고 전했다.
이번 앨범에는 '건강한 사회의 일원'으로 시작해 '자백' '아주 즐거운 나의 집' '흉내내기' '꿈에서' '씨앗' '고치는 마음' '코미디 탐험대' '크고 거슬리는' '안전지대' 10곡이 실렸다. 해파는 "저는 노래는 그래도 4분에 가까워야 한다는 생각이 있는데 (앨범에) 3분이 안 되는 노래도 있다. 그래서 약간 좀 찔리기도 했다. 막 모든 걸 쏟아부어서 열심히 했는데 이게 채 3분이 안 되네? 하는 것"이라며 웃었다.
앨범 제목이자 더블 타이틀곡인 '건강한 사회의 일원'은, 제일 먼저 쓴 곡은 아니다. 해파는 "그전에 가지고 있던 곡이 더 많은데 '건강한 사회의 일원'이라는 서사로 묶은 것"이라고 말했다. 물론 이 노래가 '1번'이라는 "합의가 다 있었다." 다른 곡은 의논하면서 순서를 정했다. '아, 이 앨범을 끝까지 듣게 하려면 어떻게 하면 좋을까?' 하고 고민하며 짰다.
해파가 정규앨범을 낸 것은 2022년 6월 '죽은 척하기' 이후 3년 10개월 만이다. 타이틀곡은 '건강한 사회의 일원'과 '아주 즐거운 나의 집' 두 곡이다. 해파 제공"'안전지대'는 그냥 넣고 싶었어요! (웃음) 제가 '죽은 척하기' 앨범이랑 이 앨범이 나오는 사이에 한 14년 정도 같이 살던 고양이가 (하늘나라로) 갔거든요. 그 고양이를 생각하면서 만든 곡인데 심정적으로 넣고 싶다는 마음이 있었어요. (새 앨범을 팬들이) 오래 기다렸으니 CD에만 싣는 히든 트랙같이 넣으면 어떨까 했죠. '아주 즐거운 나의 집'을 세 번째로 넣고, 뭔가 제일 하고 싶었던 '크고 거슬리는'을 마지막에 넣고. 그사이 있는 곡은 잔잔하거나 약간 발랄한 곡이에요. 어떤 노래로 환기해야 할까. '흉내내기'로 할까, '고치는 마음'으로 할까. 계속 '뒤에 뭐가 이어지는 게 좋지?' 하며 잘 이어지는 걸 골라가지고 트랙 순서를 정했던 거 같아요."
뮤직비디오는 더블 타이틀곡인 '아주 즐거운 나의 집'만 찍었다. 사진, 뮤직비디오 감독 등 비주얼 부분을 총괄한 비주얼 디렉터가 지금의 감독을 연결해 줬다. 해파는 "지금까지 만들었던 걸 봤을 때 좀 엉뚱하고 웃긴 걸 많이 만드는 분들인 거 같더라, 저도 재미있을 거 같아서 같이하기로 했다"라고 밝혔다.
제일 좋아하는 장면은 마네킹이 춤추는 장면이다. 해파는 "마네킹이 TV도 보고 커피도 마시고 사람들의 흔한 일상생활과 괴리되지 않은 걸 하다가 춤을 춘다. 마네킹이라 움직임이 기괴해서 처음 봤을 때 웃음이 터졌다. 그 괴기함을 못 참고 '이제 보여줘야겠어!' 하는 게 제일 맘에 들더라. 뮤비 촬영장 한번 구경하러 간 적이 있는데 마네킹을 만져보니까 진짜 뻣뻣했다. 30프레임씩 사진 찍어서 이어붙인 거다. 이 움직임을 하는데 얼마나 힘이 들었을까. 감동적인 춤사위다"라고 웃었다.
"여유가 생기면 '건강한 사회의 일원'도 영상을 만들어보고 싶다"라고 한 해파. 그는 "예산상의 한계로 한 편 정도만 제작할 수 있겠더라. 타이틀곡이 두 곡인데 조월님이 '아주 즐거운 나의 집'을 하면 좋겠다고 하셨다. 1번('건강한 사회의 일원')은 착하게 들리는 노래니까 (뮤직비디오는) 좀 더 매콤한 노래로 해야지, 해서"라고 답했다.
혹시 생각해 둔 내용이 있을까. 곧바로 "있어요!"라는 답이 돌아왔다. 해파는 "제가 친구들이랑 운동회를 하는데, '건강한 사회의 일원'에 맞춰서 단체로 운동장에 모여서 체조하는 것만 찍어도 재밌겠다 싶었다"라고 전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