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일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 및 국회의원 재·보궐선거 투표용지 부족으로 투표 시간이 오후 10시까지 연장됐던 서울 송파구 잠실7동 제2투표소 앞에서 '부정선거' 등 손팻말을 든 시민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 글 싣는 순서 |
①탄핵 찬성 집회 가던 소년은 왜 '극우 인플루언서'가 되었나 (계속) |
"야, 저기 교복 입은 친구 누구야? 대단한데."
지방선거 당일이었던 지난 6월 3일 밤 11시, 투표용지 부족 사태가 빚어졌던 잠실 7동 제2투표소를 둘러싼 시위대 틈바구니로 교복 차림의 소년이 들어섰다. 고양시 일산 서구에서부터 대중교통을 타고 달려온 중학생 김서준(가명·15)씨였다. 차가운 아스팔트 바닥에서 "부정선거 척결" 구호를 외치며 밤을 꼴딱 새운 서준씨는 다음 날 아침 시간에 맞춰 다시 등굣길에 올랐다. 밤샘 시위 사실을 안 학교 친구들은 "대단하다"고 입을 모았다.
서준씨는 주말도 잠실 시위에 상납했다. 시위의 주축인 2030 청년 틈바구니에서 앳된 얼굴의 그를 발견한 시민들은 격려를 건넸다. 현장에서 선관위 직원의 움직임을 감시하고 나눠주는 음식을 먹을 때, 서준씨는 자유대한민국의 참정권이 침해되었다는 참담함과 동시에 역사의 현장에 서 있다는 묘한 고양감을 느꼈다.
투표용지 부족 사태가 촉발한 잠실 집회는 당초 선관위의 '부실선거'를 지적하며 개혁과 재선거를 요구하는 시민들의 움직임으로 시작됐다. 그러나 지난 8일을 기점으로 극우세력이 주장하는 '부정선거'와 '스탑 더 스틸(stop the steal)'구호가 전면에 등장했다.
동시에 시위 참여자들은 서로에게 '대진연(대학생진보연합)이냐', '중국인이냐', '좌파냐' 등을 물으며 사상을 검증하기 시작했다. 여자핸드볼 청소년 국가대표 선수들의 소지품을 무단 수색하거나, 경찰을 향해 '중국인 가짜 경찰'이라고 허위 주장을 펼치며 모욕하는 일도 발생했다. 이들은 대한체육회 등 관계자의 출입을 막고, 출입문 잠금장치를 훼손하는 등 체육관 봉쇄를 이어가고 있다.
잠실 집회가 '극우 집회'로 재정의 되는 가운데, 취재진이 만난 서준씨는 이를 구호를 되찾은 것으로 해석했다. "이미 부정선거에 대한 증거들이 많았고, 이번 사태를 통해 드러난 것 뿐"이라는 확신이다.
중학생 서준씨는 어떤 경로로 태극기를 든 '애국소년'이 되었을까. 청소년인권 단체를 만든 동갑내기 '광장소년' 성령씨의 이야기와 함께 계엄 정국이 청소년 세대의 가치관을 어떻게 뒤흔들었는지 들여다봤다. 두 소년이 서로에게 궁금한 점도 물었다.
계엄의 겨울 그 이후…정치인플루언서 된 애국소년
2024년 12월 14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서 시민들이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 재표결 상황을 생중계로 지켜보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류영주 기자 서준씨가 부정선거 음모론에 빠지게 된 계기는 '12·3 내란'이었다. 비상계엄은 수많은 청소년이 정치가 나의 삶에 직접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것을 체감하며 정치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계기가 됐다. 문제는 방법과 방향이었다. 청소년들은 기성매체와 기성세대의
설명에 귀기울이는 대신 소셜미디어(SNS)를 택했다.
"어머니는 정의당 지지자예요. 계엄 직후에는 함께 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 찬성 집회도 나갔어요. 당시에는 계엄이 어쨌든 잘못된 것이고 탄핵 당해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연단에 오른 민주당 인사들을 보니 마음이 불편했어요. 민주당을 좋아하지 않았거든요. 돌아오는 길 인터넷을 통해 공부한 후 입장이 바뀌었죠. 민주당이 국회를 장악했고, 부정선거가 의심됐고, 계엄령을 선포할 만큼 대한민국의 체제가 위험한 상황이었구나."
합의된 정의는 없지만 전문가들은 극단적 극우를 전통적 보수·우파와 구분되는, 사회적 보편 가치를 부정하고 이를 훼손하는 데까지 이른 집단으로 본다. 계엄을 옹호하기 위해 민주주의 질서를 부정하거나 부정선거를 주장하며 헌정질서를 부인하는 등 사회가 합의한 선을 넘은 행동을 왜곡된 극우 세계관에 심취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극우 단체들은 기존의 정치 체제를 부정하고 극단적 주장을 하기 위해 '애국'의 옷을 입기도 한다. 특히 내란 직후 창립된 '자유대학'은 계엄을 옹호하기 위해 "개헌 철폐 독재 타도(계엄권 남용 차단 등을 골자로 하는 개헌 논의 당시)", "젊은 날의 의무는 부패에 맞서는 것"과 같은 표현들을 사용한다. 과거 운동권 언어를 모방해 서부지법 난동 사태와 같은 폭력 행위를 저항으로 포장하고, 청년들의 문제 의식을 자극하는 것이다.
서준씨가 자신이 운영하는 SNS 계정을 휴대폰 화면에 띄우고 있다. 강지윤 기자"시위를 나갔을 때 손가락 욕을 하거나 소리를 지르는 분들도 계셨지만, 제 행동을 보고 단 한 명이라도 생각이 바뀐다면 그 자체로 의미 있다고 생각해요. 수익이 나는 것도 아닌데 콘텐츠를 만드는 것도 마찬가지요. 더 많은 사람들이 진실을 알았으면 좋겠어서요."
계엄이 타당했다고 믿는 서준씨는 최근까지도 '자유대학'과 '자유민주주의청년'들이 주최한 여러 집회에 참여했다. 인스타그램을 중심으로 정치 콘텐츠도 만든다. 팔로워가 4700여명인 그의 계정에는 '박정희·전두환 업적 모음', '좌파들의 이중성' 등과 같은 게시글이 올라오며, 좋아요가 1.3만여개씩 눌리기도 한다.
서준씨의 일상에는 그의 신념에 제동을 걸거나, 다른 각도의 질문을 던져줄 사람이 없다. 주변 친구들은 정치에 관심이 없음에도 노무현 전 대통령을 희화화하는 노래를 부를 정도로 '극우화된 콘텐츠'에 이미 익숙하다. 이용자가 특정 온라인 커뮤니티나 게임 등에 능동적으로 접근해야 했던 과거와 달리, SNS를 통한 알고리즘 기반의 수동적 노출은 극우 콘텐츠를 더욱 멀리까지 퍼나르고 있다. 극우 현상이 청소년, 심지어 초등학생까지 연령대가 앞당겨지고 있고, 20~30대 여성까지 확대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일부 학생들은 계엄 이후 극우적 사고를 내면화하고 언어로 표출하기도 했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의 '학교와 교실 안 극우화된 혐오 표현, 교사 대응 설문조사'에 따르면 교사 10명 가운데 7명이 "윤 전 대통령의 2024년 12·3 내란 뒤 극우화된 혐오 표현을 하는 학생들이 늘었다"라고 판단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조사에서 '학교와 교실에서 극우화된 혐오 표현을 하는 학생을 목격한 적이 있느냐'란 물음에 '자주 있다'라고 답한 교사는 80.2%였다.
'1020 극우가 온다'의 저자인 정민철 더불어민주당 정책위 부의장은 서준씨의 사례를 두고 "탄핵 찬성 집회에 참여했던 학생마저도 부정선거라는 콘텐츠를 접하고 완전히 변모해 '콘텐츠 생산자'까지 된 것 아니냐"며 "'인스타그램'에 올라오는 콘텐츠들이 1020의 '정치의 흐름'을 만들고 있다"고 말했다.
정민철 부의장은 이어 "대부분의 청년이 인스타에 올라오는 카드뉴스로 정치와 사회를 접하고 있는데 플랫폼 내 정치 콘텐츠가 양적으로도 내용적으로도 극우에 치우쳐 있다"며 "아무리 좋은 정책이어도 SNS상에서 악마화되는 순간 끝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광장소년 "좌파 티낸다고 '배급견'이냐 놀림 받기도"
대전 청소년 모임 '한밭' 만든 성령씨. 강지윤 기자"친구들이 시비를 걸기도 해요. 장난삼아 '너 배급견이지' 놀리기도 하고요."
광장의 다른 편에 선 소년도 있다. 대전에 사는 성령씨(활동명·15)는 계엄을 계기로 또래들과 함께 청소년인권 단체인 '한밭'을 결성했다. 그는 윤 전 대통령 탄핵 찬성 집회를 하는 동안 "내 신념과 가치들이 더 이상 훼손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고 내가 행동하지 않으면 바뀌지 않을 것 같아" 활동을 시작했다고 했다.
성령씨는 요즘의 교실이 '좌파' 티를 내면 놀림을 받는 분위기라고 말한다.
"들으라는 듯 '난 윤 대통령 정말 존경한다'는 친구들도 있고요. 박정희, 이승만 전 대통령이나 전두환씨를 존경한다고 말하는 친구들도 있어요. 지금 SNS 상에서는 '좌파' 티를 내면 놀림을 받거나 비웃음을 당하는 경우가 많거든요. 그런 문화를 학교가 그대로 따라가는 것이죠. 장난인 걸 알아서 웃고 넘어가거나 사회학적으로 분석해 반박하거나 해요."
그는 극우 청소년들을 보며 "한 편은 다른 의미로 생각해 보자면 어쨌든 본인의 신념으로 행동한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지 않겠느냐"며 "다만 혐오와 폭력을 정당화하는 것은 절대 옳지 않다"고 말했다. 성령은 자신도 한때 '신남성연대'에 빠졌었다고 했다. 그러나 자신이 지향하는 가치에 대해 심사숙고 한 결과 세계관의 모순을 깨달았다. "그들이 나의 가치와 인권을 지켜주는지를 생각해 보니 아니더라고요. 단순히 누군가를 혐오하는 것이 나의 이익을 대변해 주는 것은 아니니까요."
그는 청소년 극우화의 원인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아직 너는 어리니까 모를 거야', '가만히 있어'라는 식의 사회적 분위기가 극우화로 터져 나왔다고 생각해요. 정치에 대해 고민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관심 자체를 못 가지게 막아버리니 언론이나 강의 등 증명된 루트가 아닌 SNS를 통해 극우적인 콘텐츠를 무분별하게 흡수하는 것이죠. 커뮤니티 글이나 사진 한 장을 올려놓고 사실 확인이 안된 정보를 써놓는 그런 수준의 글들이요."
"너는 지금 무슨 생각을 해?" 소년이 소년에게
계엄 이후 극우 인플루언서가 된 애국소년 서준씨와 청소년인권 운동을 하는 광장소년 성령씨. 일상에서는 정치를 주제로 이야기할 기회가 없는 끝과 끝에 선 소년들이 기자를 징검다리 삼아 질문을 던졌다. 소년들의 문답에는 서로의 세계에 대한 궁금증과 정치 참여의 고충들이 고스란히 담겨있었다.
▶광장소년이 애국소년에게
|
Q. 너를 중도, 중도 우파, 우파, 극우 중 어디라고 생각해? 네가 생각하는 보수의 가치는 뭐야? 사안에 따라 나도 진보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해. 그렇지만 내가 나를 보수라고 생각하는 것은 자유 민주주의를 지향하기 때문이거든. 대한민국의 근간이 자유민주주의잖아. 그것을 지키는 것이 보수라고 생각해. Q. 친구들과 정치 이야기를 할 때 어떤 주제로 이야기해? 친구들과 환율 문제, 코스피, 계엄의 정당성에 대해 종종 이야기하곤 해. 그렇지만 제대로 된 대화가 오간 경우는 없어. 일단 내 친구들은 배경지식이 없는 편이거든. 할 말을 하고 싶어서 인스타를 만들기도 했고, 소통에 대한 욕구는 이걸로 충족을 하고 있어. Q. 한국 사회의 불평등과 불공정 문제를 우파가 어떻게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해? 모두에게 공정한 기회가 돌아가야 한다는 것에 동의하고, 약자라고 차별 받는 일도 없어야 한다고 생각해. 그건 진보의 어젠다만이 아니고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모두가 동의하는 내용일거야. 방법론의 문제 같은데, 무차별적으로 약자를 돕는 대신 최소한의 정말 어려운 약자들에게 복지와 기회를 열어줘야 한다고 생각해. 또 능력이 필요한 곳에서 평등을 찾으면 안된다고 생각해. 기회의 균등을 위해 여성할당제 같은 것들은 사라져야 한다고 봐.
|
▶ 애국소년이 광장소년에게
|
Q. 너는 '극우'를 뭐라고 정의해? A. 혐오와 폭력을 정당화하고 일상화하고 음모론을 퍼뜨리는 극단적인 사상을 따르는 집단이라고 생각해. 물론 한 나라의 시민이니 시민으로 마땅히 존중받아야 하지만, 극우 집단의 정치 사상이 존중받을 수 있는지는 의문이야. Q. 이승만, 박정희 전 대통령이 없었다면 지금 대한민국은 어떨 거라고 생각해? A. 역사에 만약은 없다고 생각해. 그렇지만 답을 하자면 그들이 없어도 우리나라는 잘 성장했을 거라고 봐. 여기까지 오는 과정이 이승만, 박정희 전 대통령이 있었기 때문이 아니라 여러 시민, 노동자들이 다함께 나라를 발전시키고 성장시켜왔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거든. 대한민국의 경제 성장에 있어서 이승만과 박정희가 주요 역할을 했냐고 묻는다면 어느정도 역할을 한 것은 맞지만, 과연 그게 주요한 것이냐고 묻는다면 아니라고 말하고 싶어. Q. 집회를 하며 겪은 고충같은 게 있어? A. 물론 있지. 행동수칙이 세워지기 전엔 청소년을 '기특하다'고 말한다거나, '미래 세대'라는 말로 동등한 시민으로 보지 않는 경우가 있어서 불쾌하기도 했어. 성폭력 논란이 있는 인물이라든지 2차 가해를 한 단체들과 함께하는 것에 대해 문제의식을 갖기도 했었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