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환 경감(경찰청 치안정보국), '사기 프로파일링' 저자. 이 경감 제공사기꾼들은 범행 대상을 속이기 위해 상황과 상대에 따라 서로 다른 수법과 행동 패턴을 보인다. 오늘은 두 번째 이야기로 '노쇼 사기(No Show)'를 다루고자 한다. 경찰청 자료에 의하면 '26년도 상반기(1월~5월) 피싱범죄 발생 건수 중 '노쇼 사기'가 큰 비중으로 늘어났다. 전체 발생건 수 16,892건 중 노쇼 사기가 3,226건이니 19.1%에 해당되는 수치이다. 정부가 보이스피싱에 집중 대응하면서 보이스피싱 피해는 줄어들고 있지만 소상공인, 자영업자를 타켓으로 하는 '노쇼 사기'는 늘어난 것이다. 이번에는 '노쇼 사기'는 인간 심리의 어떠한 약점을 공략하는 사기인지 분석해 보겠다.
유명 기업 행사 예약을 미끼로 한 노쇼 사기
어느 봄날 오후, 종로구 체부동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60대 중반의 박모 씨는 반가운 전화를 한 통 받았다. 상대방은 국내 대기업의 구매팀 직원이라고 자신을 소개하며 다음 주 임원 간담회를 위해 식당 예약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회의 후 임원 스무 분 정도가 참석하는 중요한 저녁 자리입니다. 거기 별도 룸이 있다고 하는데 조용한 룸으로 준비해 주실 수 있을까요?"
평소 기업 회식이나 단체 예약이 많지 않았던 박 씨는 흔쾌히 예약을 받아들였다. 상대방은 정중한 말투로 행사 일정과 메뉴를 꼼꼼히 상의했고, 박씨의 핸드폰 번호를 물어본 후 자신의 대기업 명함도 SNS로 전송해 주었다. 더구나 예약금도 필요하면 계좌 송금하겠다며 신뢰감을 주었다. 행사 당일이 가까워질수록 상대방은 수차례 전화를 걸어 메뉴를 확인하고 좌석 배치까지 세심하게 요청했다. 박 씨는 좋은 손님을 놓치고 싶지 않아 신선한 식재료를 미리 구입하고 아르바이트생 1명을 고용하며 직원 근무표까지 새로 조정했다.
그러던 행사 당일 오전 예약자는 박모씨의 휴대폰으로 전화를 하여 난처한 목소리로 부탁을 하나 했다. "사장님, 죄송한데 갑자기 부탁드릴 게 생겼네요. 저희 전무님이 준비하라는 와인이 있는데 그 와인을 10병만 주문해 주세요. 어차피 법인카드로 결재해야 하는데 시간도 없고 두 번 결재가 번거로우니 사장님이 구입해 주시면 오후에 행사비와 함께 한번에 모두 정산해 드리겠습니다."라고 하며 와인을 구매할 수 있는 대리점의 명함을 박씨의 휴대폰으로 전송하였다. 잠시 망설이던 박 씨는 상대방이 대기업 직원이라는 점, 본인의 명함을 보내 준 점. 며칠 동안 성실하게 예약을 진행해 온 점을 떠올렸다. 무엇보다 중요한 거래를 망치면 안 된다는 생각에 상대가 알려준 주류업체와 통화를 한 후 고가의 와인 10병 값 330만 원을 송금했다. 송금 이후 구매했다고 연락을 하니 예약자는 "정말 감사합니다. 오후에 뵙겠습니다."라고 인사했다.
그러나 약속한 시간은 지나도 손님은 나타나지 않았다. 박 씨는 통화했던 번호로 여러 차례 전화를 걸었지만 "고객이 전화를 받을 수 없습니다."라는 안내만 반복됐다. 행사도, 명함도, 주류업체도 모두 사기범이 만들어낸 허상이었다. 박 씨는 경찰서를 찾아가 신고를 하며 허탈한 표정으로 말했다. "예약 손님을 믿은 죄밖에 없는데, 제가 왜 이런 일을 당했는지 모르겠습니다. 모든게 완벽습니다." 그날 식당에는 준비해 둔 음식만 조용히 남아 있었다.
피해자의 심리
박 씨는 평소에도 예약 손님을 무엇보다 소중하게 생각하는 성실한 자영업자였다. 장사가 어려운 시기였기에 단체 예약은 한달 매출을 좌우하는 중요한 기회였다. 더구나 대기업 행사이다 보니 잘 접대하여 꾸준한 단골로 만들고 싶은 마음이 컸다. 처음부터 돈을 요구했다면 박씨는 의심했을 것이다. 그러나 사기범은 며칠 동안 정상적인 예약 절차를 진행하며 신뢰를 쌓았다. 메뉴를 상의하고, 행사 시간을 조율하고, 좌석 배치까지 이야기하는 과정에서 박 씨는 상대를 실제 고객으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사람은 상대방이 여러 차례 성실한 행동을 보이면 자연스럽게 그 사람을 믿게 된다. 박 씨 역시 "이 정도로 준비하는 사람이 설마 사기겠는가"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또한 박 씨는 손님에게 좋은 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는 책임감도 강했다. 시간이 없으니 행사에 사용할 와인을 구입해 달라는 부탁을 거절하면 행사가 취소될 수도 있다는 불안감이 들었다. 어렵게 성사된 예약을 놓치고 싶지 않았던 그는 결국 상대방의 부탁을 들어주기로 마음먹었다. 사기범은 바로 이러한 성실함과 책임감을 이용했다. 무엇보다 박 씨는 돈을 빌려준다는 생각이 아니라, 행사 준비를 돕는다는 생각으로 송금했다. 몇시간 뒷면 행사 대금과 함께 모두 돌려받을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 믿음이 결국 가장 큰 약점이 되었다.
심리학적 해설
노쇼 사기는 사람의 욕심보다 신뢰를 악용하는 범죄이다.
첫째, 신뢰 형성(Building Trust)이다. 사기범은 처음부터 돈을 요구하지 않는다. 정상적인 예약 과정을 며칠 동안 이어가며 피해자의 경계심을 허문다. 반복되는 통화와 자연스러운 대화는 상대를 실제 고객으로 인식하게 만든다.
둘째, 점진적 몰입(Foot-in-the-door Effect)이다. 처음에는 예약만 하고, 다음에는 메뉴를 정하고, 이후에는 좌석을 확인한다. 이렇게 작은 요청들이 이어지면 마지막 부탁 역시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된다. 사람은 자신이 이미 투자한 시간과 노력이 많을수록 관계를 쉽게 끊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
셋째, 권위와 신뢰의 후광 효과(Halo Effect)이다. 사기범은 대기업, 공공기관, 군부대, 병원 등 사회적으로 신뢰받는 기관을 사칭한다. 기관의 이름이 주는 긍정적인 이미지가 개인에 대한 신뢰로 이어지는 심리를 이용하는 것이다.
넷째, 시간 압박(Time Pressure)이다. "오늘 안에 결제해야 합니다", "행사가 오늘이라 시간이 없습니다"라고 하는 긴급성은 피해자가 가족이나 직원과 상의할 시간을 빼앗는다. 사람은 시간이 부족할수록 충분한 검토보다 빠른 결정을 내리기 쉽다.
마지막으로 사기범은 상호성의 원리(Reciprocity)를 교묘하게 이용한다. 예약을 해주고 정중하게 대해준 상대를 돕는 것이 예의라고 느끼도록 만드는 것이다. 피해자는 손님을 도와주는 행동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사기범이 설계한 심리적 덫 안으로 스스로 들어가고 있는 셈이다.
노쇼 사기는 예약 자체가 목적이 아니다. 예약은 신뢰를 얻기 위한 도구일 뿐이며, 진짜 목적은 피해자가 의심 없이 돈을 대신 송금하도록 만드는 데 있다.
이승환 경감의 조언
최근 노쇼 사기는 식당뿐만 아니라 꽃집, 케이크 전문점, 도시락 업체, 숙박업소, 행사 대행업체, 고기 육가공업체 등 예약을 받는 거의 모든 업종을 대상으로 발생하고 있다. 사기범들은 대기업이나 공공기관, 군부대, 병원, 대학 등을 사칭해 신뢰를 얻은 뒤, 특정 업체의 물품을 대신 결제해 달라고 요구하는 수법을 반복하고 있다. 예약 손님이라 하더라도 사업과 무관한 물품을 대신 구매하거나 특정 계좌로 송금을 부탁한다면 반드시 사기를 의심해야 한다. 정상적인 거래에서는 고객이 자신의 거래처 물품 값을 대신 결제해 달라고 요구하는 일은 거의 없다.
조금이라도 이상하다면 전화를 끊고 해당 기업의 대표번호로 직접 연락해 예약 사실을 확인해야 한다. 확인할 때도 예약 당사자와 직접 통화를 해야한다. 대개의 경우 실제 근무하는 직원을 사칭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급하다는 말에 서두를 필요도, 손님을 잃을까 봐 혼자 고민할 필요도 없다. 주변인이나 가족과 상의하는 몇 분의 시간이 수백만 원의 피해를 막을 수 있다. 현장에서 수많은 노쇼 사기 사건을 접할 때 마다 느낀 점은, 피해자들이 욕심이 많아서 속는 것이 아니라 성실해서 속는 경우가 훨씬 많다는 사실이다. 손님을 믿고, 약속을 지키려는 책임감이 오히려 사기범에게 이용되는 것이다.
기억해 주시기 바란다. 정상적인 고객은 물건을 대신 결제해 달라고 하지 않는다. 예약은 예약일 뿐이며, 송금을 요구하는 순간부터는 거래가 아니라 사기를 의심해야 한다. 작은 확인 하나가 여러분의 소중한 생계와 재산을 지키는 가장 확실한 예방책이다.
※ 외부 필진 기고는 CBS노컷뉴스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