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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천만원 뿌리친 납북어부의 절규…"국가 '국민보호 의무' 인정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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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안보 전문가 "당시 해군, 납북 저지·구축 능력 갖춰"
"위자료 액수 불만 아니야…국가의 구조실패 책임 확인 위한 것"

2023년 5월 춘천지법에서 열린 납북귀환어부 재심 사건 무죄 선고 이후 피해자들과 유족들이 환호하고 있는 모습. 구본호 기자2023년 5월 춘천지법에서 열린 납북귀환어부 재심 사건 무죄 선고 이후 피해자들과 유족들이 환호하고 있는 모습. 구본호 기자
1971년 북한에 납북됐다가 귀환 후 고문과 사찰을 겪은 납북 귀환 어부가 법원의 배상금 결정을 거부했다. 돈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국가의 '국민보호 의무'를 법원이 확인해달라는 이유에서다.

위자료는 늘었지만…원고 '납북 어부'는 화해 거부

8일 CBS노컷뉴스 취재를 종합하면, 서울고법 춘천재판부 제2민사부는 지난 3일 김춘삼씨가 대한민국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항소심에서 국가가 김씨에게 4260만원을 지급하라는 내용의 화해권고결정을 내렸다.

재판부는 김씨가 납북 귀환 당시 만 15세의 미성년자였고, 79일간 불법 구금됐으며 장기간 사찰을 받은 점 등을 고려해 위자료를 7천만원으로 산정했다. 형사보상금을 공제한 뒤 상속분 등을 반영한 화해권고금액이 4260만원이다. 이는 1심에서 인정된 2260만원보다 약 2천만원 늘어난 액수다.
 
하지만 김씨 측은 지난 6일 화해권고결정에 대한 이의신청서를 제출했다. 법원의 화해권고결정을 받아들이면 확정판결이 되지만, 이의를 제기하면 항소심 재판이 계속된다.

김씨는 1971년 만 15세의 나이로 어선 '제2승해호'에 승선했다가 동해상에서 북한에 납북됐다. 약 1년만에 귀환했지만, 곧바로 수사기관에 의해 장기간 불법 구금돼 조사를 받았고 간첩 혐의로 처벌됐다. 이후 수십 년 동안 정보기관과 경찰의 감시·사찰도 이어졌다.

김씨는 재심을 통해 무죄를 확정받은 뒤 국가가 납북을 막지 못한 책임과 귀환 이후 이어진 불법구금, 고문, 사찰 등 국가폭력 전반에 대한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배상금이 아니라 국가 책임을 확인받기 위한 소송"

동해안납북귀환어부 피해자시민모임, 공익법률센터 파이팅챈스는 춘천지법 앞에서 납북귀환어부 사건 재심 지연에 대한 규탄 기자회견을 개최했다. 연합뉴스동해안납북귀환어부 피해자시민모임, 공익법률센터 파이팅챈스는 춘천지법 앞에서 납북귀환어부 사건 재심 지연에 대한 규탄 기자회견을 개최했다. 연합뉴스
김씨 측은 이의신청서에서 "이 사건은 단지 원고 개인의 과거 피해 회복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납북귀환어부에 대한 국가의 보호의무 위반 여부에 관한 사법적 판단이 다수 피해자들에게 중요한 선례가 된다"고 밝혔다.
 
이어 "항소심까지 법적 다툼을 계속한 이유는 위자료 증액이 아니라 납북 과정에서 국가가 국민 보호의무를 다하지 못했다는 점을 법원의 판결로 명확히 확인받기 위해서"라고 강조했다.
 
실제 이번 항소심의 최대 쟁점도 여기에 있다.
 
앞서 1심은 국가가 귀환한 김씨를 영장 없이 불법 구금하고 고문·가혹행위를 한 뒤 장기간 사찰한 데 대해 국가배상 책임을 인정했다. 그러나 납북 자체에 대해서는 당시 국가가 해군과 해경 등을 동원해 어선을 보호하려 했고, 해상 국방력의 한계 등을 고려하면 국가의 보호의무 위반으로 보기 어렵다며 책임을 인정하지 않았다.
 
항소심에서는 김씨 측이 새로운 근거를 제시했다. 재판부가 군사·안보 전문가인 문장렬 전 국방대학교 교수를 전문심리위원으로 지정해 의견을 받은 것이다. 문 전 교수는 "1971년 당시 한국 해군은 북한의 어선 납북을 저지하거나 구출할 능력을 갖추고 있었고, 한미연합 전력을 고려하면 북한보다 충분한 우위를 확보하고 있었다"며 국가의 구조 실패 책임이 인정될 수 있다는 취지의 의견을 냈다.

특히 문 전 교수는 "당시 무전 통신이 제대로 이뤄졌다면 인근 함정이 즉각 대응하거나 가장 가까운 항구에서 출동해 피랍 어선을 구출할 수 있었을 것으로 판단한다"고 강조했다.

전문심리위원도 국가 책임 의견…"엄중한 판단 필요"

김씨를 대리하는 법무법인 원곡의 최정규 변호사는 CBS노컷뉴스와의 통화에서 "납북귀환어부들이 오랜 기간 법적 투쟁을 이어오는 이유는 단순히 위자료 액수에 불만이 있어서가 아니라 사건의 출발점인 납북 과정에서 국가의 구조 실패 책임을 확인받기 위해서"라고 설명했다.
 
이어 "항소심 재판부도 고심 끝에 위자료를 상향한 화해권고결정을 내렸지만 가장 중요한 쟁점인 국가의 구조 실패 책임은 반영되지 못했다는 점이 아쉽다"며 "항소심에서는 군사·안보 전문가인 문장렬 전 국방대학교 교수가 전문심리위원으로 참여해 구조 실패의 책임이 전적으로 국가에 있었다는 의견을 제시한 만큼, 이에 대한 엄중한 판단이 내려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항소심이 국가의 '납북 방지 의무' 위반까지 인정할 경우, 김씨 사건뿐 아니라 현재 진행 중인 다른 납북귀환어부 국가배상 사건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국가의 부작위에 따른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하는 중요한 선례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김씨 등이 납북 당시 국가의 보호의무 위반을 인정받게 된다면, 단순한 손해배상을 넘어 피해자들의 명예회복이라는 상징적 의미도 갖게 될 것으로 평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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