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사진 왼쪽)과 잔니 인판티노 FIFA 회장. 연합뉴스정치화된 2026 북중미 월드컵을 둘러싼 비판이 대회 내내 이어지고 있다.
정치적 논란이 스포츠의 핵심 가치인 중립성을 훼손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논란의 중심에는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행정부가 자리하고 있다.
대회 개막 전 국제축구연맹(FIFA)이 내놓은 약속은 현실과 거리가 멀어졌다는 평가다. FIFA 잔니 인판티노 회장은 개막을 보름 가량 앞두고 "이번 대회는 역대 가장 크고, 가장 포용적이며, 가장 위대한 월드컵이 될 것"이라고 호언장담한 바 있다.
그러나 사상 처음 48개국 체제로 열린 월드컵은 대회 내내 '포용' 대신 '저항'이 자리잡았다.
FIFA는 정관을 통해 축구 행정에 대한 제3자의 정치적 간섭을 엄격히 금지하고 있다. 정관 규정은 무용지물이었다. 제대로 이행되지 않았다. 다수의 사례에서 중립성 위반 정황이 목격됐다.
쐐기골을 터트린 뒤 트럼프 대통령 춤을 흉내 내는 세리머니를 펼친 루카쿠 등 벨기에 선수들. 연합뉴스
가장 단적으로 드러난 사례는 미국 국가대표 공격수 폴라린 발로건(AS모나코)의 징계 유예 처분이다.
발로건은 32강전에서 레드카드를 받았다. 원칙대로라면 벨기에와의 16강전에 나설 수 없었다. 원칙은 깨졌다. FIFA는 16강전을 하루 앞두고 출전 정지 징계를 1년 유예하기로 결정했다. 이 과정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인판티노 회장에게 직접 판정 재고를 요청한 사실이 알려졌다. 직후 정치적 외압 의혹이 제기됐다.
개최국 미국의 엄격한 출입국 통제와 이에 대한 FIFA의 소극적인 대응도 저항을 불러일으켰다. 미국에서 조별리그 일정을 소화한 이란 대표팀은 특별 대우(?)를 받았다. 미국과 전쟁 중인 이란은 필수 인원만 비자를 발급받는 등 까다로운 출입국 통제를 받았다.
특히 '경기 24시간 이내 입국 및 종료 직후 멕시코 복귀'라는 이동 제한 조치가 적용됐다. 이례적 조치였다. 이란 측의 거센 항의가 있었다. 직후 조별리그 최종전에 한해 경기 이틀 전 입국이 허용됐다. 이란은 대회 내내 정상적인 경기 준비와 운영에 어려움을 겪었다.
'소말리아 출신 1호 월드컵 심판'으로 관심 모았던 오마르 아르탄. 연합뉴스심판 입국 거부건도 논란거리였다. '소말리아 출신 1호 월드컵 심판'으로 관심을 모았던 오마르 아르탄은 개막을 앞두고 마이애미 국제공항에서 입국을 거부당했다.
미국 관세국경보호청(CBP)은 '테러 조직 관련자와의 연관성이 의심된다'는 이유로 입국을 불허한 뒤 귀국편 항공기에 그를 태워 돌려보냈다. 소말리아는 트럼프 행정부가 광범위한 이민 단속의 하나로 도입한 여행 금지령 대상국 가운데 하나다.
논란이 일자 인판티노 회장은 대회 개막 기자회견에서 "유감이지만, FIFA가 정부나 경찰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세상의 왕'이 아니라는 점을 이해해달라"고 말했다.
'세상의 왕'은 트럼프였을까. 인판티노는 축구와 무관한 트럼프 대통령의 정치 행사에 얼굴을 비친 것으로도 비난을 산 바 있다. 지난해에는 신설한 'FIFA 평화상'을 트럼프 대통령에게 수여하면서 정치적 중립성 논란이 다시 불거졌다.
FIFA에 대한 불신은 진행 중이다. 8일 열린 16강전에서 아르헨티나에 2-3으로 역전패한 이집트 감독은 "이번 대회는 명백히 조작됐다"는 의미심장한 말을 남기고 경기장을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