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검색
  • 댓글 0

실시간 랭킹 뉴스

대통령 귀에 '이상한 소리'가 된 전북의 절규

노컷뉴스 이 시각 추천뉴스

노컷뉴스를 선호 하는 출처로 추가

이 시각 추천뉴스를 확인하세요

[밸런스 칼럼 - 突直口]

전북 CBS 이균형 대표전북 CBS 이균형 대표이재명 대통령이 결국 정색을 했다. 최근 업무보고 자리에서 전북 지역을 중심으로 들불처럼 번지는 '전북 소외론'을 두고 "책임 있는 사람들이 이상한 소리를 하고 있다"며 "실현 불가능한 이야기로 사람들을 섭섭하게 만드는 무책임한 선동"이라고 했다. 정부가 광주·전남에 800조 규모의 반도체 메가클러스터 조성을 위해 대규모 전력, 용수, 교통망 등 국가 인프라 지원을 발표한 것과 전북에는 현대차 9조 원 투자라는 무려 90배 차이를 대조하면서 '소외 여론'이 터져 나오자 이를 겨냥한 작심 발언이다.
 
대통령의 논리는 명쾌하다. "기업 투자는 경제 논리에 따른 결단이지, 섭섭하다고 하나 더 얹어주는 배급이 아니다"는 것이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이 냉철한 시장의 논리 앞에서 전북도민들의 가슴은 또다시 멍이 들고, 해묵은 질문이 다시 고개를 드는 것이 현실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앞으로도 계속 이렇게 살아야 하나?"
 
정색을 하고서 던진 대통령의 말에 전북도민들의 얼굴이 사색이 된 이유이다.

선거판의 열기가 뜨겁던 시절, 전북도민의 뼛속 깊은 설움을 누구보다 정확히 짚어내며 '사이다 처방'을 내렸던 이가 바로 이재명 대통령 후보였다. 수도권 대 지방, 영남 대 호남, 그리고 호남 내에서도 광주·전남에 밀려 뒷전으로 치여온 '3중 차별'의 사슬. 도민들은 앙금처럼 쌓인 지난한 아픔을 정확한 언어로 대변해 주는 그에게 환호했고, 그가 숱하게 외쳤던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잡는 진정한 국가 균형발전"이라는 헌법적 약속을 믿고 전폭적인 지지를 쏟아냈다.
 
그러나 권력의 정점에 선 지금, 그 뜨거웠던 공감의 언어는 어디로 증발했는가! 전북의 정당한 상실감을 향해 "이상한 소리", "무책임한 선동"이라며 쏘아붙이는 대통령의 변신을 바라보는 도민들의 심정은 허탈함을 넘어 참담함에 가깝다. 선거 때 '3중 소외에 눈물 흘리는 전북'을 믿고 전북도민들은 전폭적인 지지를 보냈다. 그런데 정작 국정의 운전대를 잡고 대규모 인프라와 국가 자본을 배분해야 할 시점이 오자 차가운 시장 성적표를 내밀며 면박을 주는 모양새는 참담함으로 이어지기에 충분하다. 
 
특히 이같이 켜켜이 쌓인 차별과 소외의 그늘 밑에는 그동안 번번이 외면받으면서도 끝끝내 붙잡고 있는 전북도민들의, 민주당을 향한 지독하고도 안쓰러운 짝사랑이 자리해 있다. 지금 여당의 당 대표를 필두로 다수의 전북 출신 인물들이 내각의 요직에 포진해 있음에도 전북의 살림살이와 인프라는 여전히 '산천의구(山川依舊)'다. 산과 들만이 예전 그대로 멈춰 서 있을 뿐만 아니라 발전의 온기조차 번번이 전북의 경계선 앞에서 멈춰섰다.
 
징검다리가 되어줄 거라 믿었던 지역 출신 정치인들은 중앙 권력의 눈치를 보느라 목소리를 잃었고, 압도적 지지를 보내준 민주당은 대규모 자본 배분 앞에서 전북을 다시 뒷전으로 밀어냈다. 이처럼 이용당하고 외면받으면서도 '그래도 우리 편'이라며 표를 몰아주었던 도민들의 지독한 짝사랑은 결국 또다시 "기업 투자는 배급이 아니다"라는 냉소로 돌아왔다.
 
기업이 시장 논리에 따라 이미 인프라가 갖춰진 지역을 선호하는 것은 당연하고 "기업은 사활을 걸고 투자지역을 결정한다"는 대통령의 말은 이론의 여지없이 옳다. 그렇다면 대통령이 그렇게 강조했던 국가균형발전이라는 단어는 어디에서 찾아야 할까? 무조건적인 '1/N 나누기'를 요구하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면 해법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낙후되어 여건을 갖추지 못한 지역에도 기업이 찾아올 수 밖에 없도록 전력, 용수, 도로망, 규제 완화라는 레드카펫을 깔아주는 것 아닐까? 그것이 국가의 책무다. 시장을 존중한다는 이유로 국가가 손을 놓은 순간, 수도권과 비수도권의 격차는 영원히 고착될 수 밖에 없다. 광주·전남의 800조 투자 역시 전력과 용수망을 국가가 보증했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이처럼 거대 자본과 준비된 지역에는 국책 사업을 몰아주면서, 기반 시설이 부족해 소외된 지역에는 "투자를 유치하지 못한 너희의 역량 부족"이라며 책임을 전가하고 있는 건 아닌지 곱씹어 보기 바란다. 
 
소외받는 이들의 눈물을 닦아주고 정책적 배려를 통해 격차를 좁혀가는 것이 정치다. 이를 두고 "일부 정치인들이 실현 불가능한 이야기로 사람들을 섭섭하게 만드는 선동"이라 낙인찍는다면 과연 우리 사회에서 정치는 왜 필요하며, 또 앞으로 어느 정치인이 소외된 지역의 목소리를 용기 내어 대변할 수 있겠는가.
 
이 대통령은 "공직자의 제일 덕목은 책임을 지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진짜 책임 있는 태도는 "어쩔 수 없다"며 차가운 시장의 성적표를 내미는 것이 아니다. "어떻게 해서든 소외된 지역의 인프라를 끌어올려 대기업이 제 발로 찾아오게 만들겠다"는 집요한 의지와 대안을 보여주는 것이 국가 지도자의 진정한 책임 행정이다. 
 
과거 이 대통령은 "세금 많이 낸 게 무슨 죄냐"며 세금 납부자들의 권리를 적극 옹호한 바 있다. 그렇다면 이제는 소외된 변방에서 하루하루 버텨내는 이들의 절규에도 답해야 한다. 대기업의 선택을 받지 못한 지역에서 태어난 것, 그리고 낙후된 환경에서 버텨내는 것 역시 전북 도민들의 무슨 죄가 아니다. 정부가 예전 정권들처럼 시장주의 논리 뒤에 숨어 지방의 소외를 방관하고 민심의 비명을 '선동'으로 몰아붙이는 방식을 고수한다면, 이 나라에서 '국가 균형 발전'이라는 구호는 지금껏 그랬듯이 쓰여지기만 할 뿐, 결코 읽혀지지 않을 것이다. 
 
기업은 시장의 논리로 움직인다. 그러나 국가는 시장의 논리가 닿지 않는 곳까지 길을 내는 존재다. 기업이 오지 않는다고 지방을 탓하는 것은 책임을 다한 정부가 아니다. 기업이 선택할 수 있도록 여건을 만드는 것. 그것이 국가 균형발전이며 정부의 존재 이유다. 
 
아울러 전북도민 역시 깨달아야 한다. 어떤 멸시와 차가운 면박이 돌아와도 무조건 표를 몰아주는 정치적 독점 구조를 끊어내지 않는다면, 돌아오는 것은 언제나 그렇듯 '산천의구'한 처지뿐이다. '얼어죽어도 민주당'을 외치는 한, 정치적 경쟁 구도를 만들어 표의 무서움을 보여주지 않는 한, 권력은 결코 전북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지 않을 것이다. 
 
현대 경영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피터 드러커의 말과 함께 글을 맺는다.
 
"새로운 것을 원한다면 옛것을 버려야 한다.(If you want somethin new, you have to stop doing somethin old)"
영문기사 보기 (View English Article)

0

0

실시간 랭킹 뉴스

오늘의 기자

※CBS노컷뉴스는 여러분의 제보로 함께 세상을 바꿉니다. 각종 비리와 부당대우, 사건사고와 미담 등 모든 얘깃거리를 알려주세요.

상단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