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와 직접적 관련 없는 사진. 연합뉴스# "한, 두 명 대출해 주면 이번 달은 제게 할당된 대출 마감이에요. 고객 상담을 받아봐야 대출을 해줄 여력이 없어요. "이달 초 서울 영등포구의 한 A은행의 창구 직원은 업무 마감 후 서류 작업을 마무리하던 늦은 저녁 전화 한 통을 받았다. 발신자는 은행 본점. 내일부터 영업점의 주택담보 대출 한도를 10억으로 줄이라는 '통보'가 내려왔다. 이미 대출 총량이 상반기 대비 절반 가까이 줄어든 상황에서 그 이하로 쪼그라들게 된 것. 직원들에 할당된 금액을 생각해보면 월 초에 1~2명만 대출해주면 한도가 넘는다.
은행권이 하반기 들어 가계대출 총량 관리 고삐를 더욱 세게 쥐면서 좁아진 대출 문턱을 넘기 위한 차주들의 '은행 오픈런'이 이어지고 있다.
금융당국은 올해 금융권의 연간 가계대출 증가율 목표치를 전년(1.7%)보다 낮은 1.5%로 설정했다. 증시 호황에 빚투(빚내서 투자)가 급증하면서 가계대출 관리에 비상이 걸렸기 때문이다.
실제 5대 은행의 지난 6일 기준 가계대출 잔액은 650조3766억원으로 올해 들어 5조4005억원 증가했다. 이미 연간 증가액 목표치인 4조3300억원을 1조원 넘게 초과한 상태다.
KB국민은행이 지난달 10일부터 주담대 한도를 6억원에서 3억원으로 축소했다. 다른 은행들도 대출 모집인을 통한 신규 접수를 중단했다.
약정서까지 썼다가 대출 안 나와 계약 포기하기도
총량 규제로 대출 공급이 제한되면서 피해는 실소유자들이 고스란히 받고 있다.
인터넷은행인 카카오뱅크의 주담대 접수가 시작되는 매일 오전 6시에는 '오픈런'을 하려는 수요자들이 몰리면서 10분도 안 돼 하루 한도가 소진되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온라인에서 대출을 실패한 차주들은 은행 지점을 돌며 대출 상담을 받고는 있지만, 이마저도 이달 초에 한도가 차버린 상황이 대부분이다.
B은행 관계자는 "지점별 대출 한도가 이미 소진돼 우리도 더 이상 대출을 받을 수 없다"며 "대출을 받기 위해 오픈런을 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분위기를 전했다.
마음에 드는 매물이 있어도 대출이 어렵다 보니 매매 계약을 아예 포기하는 경우도 발생하고 있다.
서울 마포구의 한 부동산 중개인은 CBS노컷뉴스와의 통화에서
"토지거래허가 신청을 해 놓고 약정서까지 썼는데 결국 대출이 안 나와서 무산된 사례가 종종 나오고 있다"고 했다.
이 중개인은 "전에는 대출을 받을 수 있는 방법이 10가지였다면, 지금은 한 두 가지로 줄었다"며 "대출상담사들은 대출을 연결해 주면 수수료를 받는 조건이다 보니 무리하게 대출을 연결시켜주는 경우가 있는데, 최종적으로 대출이 나오지 않아서 곤란해진 경우도 있다"고 전했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당국에서 은행 가계대출 한도 관리를 풀어주지 않는 한 대출 받기 까다로워진 상황이 쉽게 바뀌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류영주 기자"대출 오픈런, 은행 대출이 선착순 배급소냐"
야당에서도 당국의 대출규제에 대한 비판이 쏟아졌다. 박성훈 국민의힘 수석대변인은 12일 논평에서 "대출받는 사람의 소득과 상환 능력, 신용도가 아니라 '오전 6시 땡 치자마자 얼마나 손가락을 빨리 움직였는가'가 대출 여부를 결정하는 기괴한 세상이 열렸다"고 지적했다.
박 대변인은 "인터넷은행 주택담보대출은 접수 개시 10분 만에 한도가 바닥나고, 신용점수 950점이 넘는 고신용자마저 잔금을 구하지 못해 발을 구르고 있다"며 "자본주의 금융 시장을 북한의 '선착순 배급소'로 전락시킨 주범은 다름 아닌 이재명 정부의 행정 편의적인 가계대출 총량규제"라고 꼬집었다.
이어 "아무런 죄가 없는 정상적인 금융소비자와 무주택 서민들이 이재명 정부의 거칠고 몰상식한 정책 비용을 오롯이 떠안고 있다"며 "이재명 대통령과 금융당국은 땜질식 예외 처방과 행정편의주의적 총량규제를 전면 재검토하라"고 말했다.
한편 정부는 강도 높은 가계대출 규제로 실소유자 대출까지 막힌다는 비난이 쇄도하자 뒤늦게 예외 방안을 강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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