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만화가협회 제공만화가 10명 중 9명은 자신의 작품이 인공지능(AI) 학습에 쓰이는 것을 거부할 방법을 알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만화가협회는 지난 1일 서울 중구 CKL기업지원센터에서 'AI 학습과 창작자 권리 보호를 위한 공청회'를 열었다고 3일 밝혔다.
이번 공청회는 창작자 단체가 주도해 AI 학습 데이터 활용과 저작권 보호 문제를 다룬 첫 공청회다. 협회는 창작자 동의 없는 AI 학습의 법적 쟁점과 현행 저작권법의 한계를 살피고, AI 학습 과정에서 창작자의 동의권·거부권·보상권을 어떻게 보장할지 논의했다.
협회가 지난 5월 회원을 대상으로 진행한 'AI 학습 활용 관련 작가 의향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 164명 가운데 67.7%는 현재 조건에서는 AI 학습 활용에 동의할 수 없다고 답했다. 90.2%는 자신의 작품에 대한 AI 학습을 거부할 방법을 모른다고 했다.
다만 공식적인 '옵트인' 시스템이 마련될 경우 참여할 의향이 있다는 응답은 81.1%였다. 옵트인은 사전에 동의한 경우에만 데이터를 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 방식이다. 협회는 이 결과가 창작자들이 AI 기술 자체를 무조건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작품 활용 여부를 스스로 결정할 권리와 정당한 보상 체계를 요구하고 있음을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이날 발제에 나선 서유경 법률사무소 아티스 변호사는 "AI 학습 데이터 거래가 이미 현실에서 이뤄지고 있는 만큼 논의의 초점을 적법성 공방에서 계약과 정산 체계 마련으로 옮겨야 한다"고 밝혔다. 그는 "이용 허락 범위를 기록하는 '권리장부'와 대가의 흐름을 기록하는 '가치장부'를 함께 구축하고, 웹툰 분야부터 옵트인 데이터 거래 시범 사업을 시작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김성주 법무법인 덕수 변호사는 게티이미지와 디즈니 등 해외 저작권 소송 사례를 소개하며 창작자 단체 차원의 대응 필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AI 기업과 권리자 사이의 합의가 이뤄지더라도 개별 창작자에게 보상이 제대로 돌아가지 않을 수 있다"며 "창작자 단체 차원의 대응이 없으면 개별 창작자 몫이 누락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성대훈 한국영상대학교 교수는 저작물 식별체계인 UCI 등록 절차에 AI 학습 동의 여부를 표시하는 방식을 제안했다. 이를 통해 창작자의 사전 동의 구조를 기술적으로 구현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그는 "원화에 대한 비가시성 워터마크 등 기술적 보호조치와 신탁단체 지정을 통한 정산 체계가 함께 필요하다"고 했다.
종합토론에서는 저작권 신탁단체 지정, AI 학습 데이터 거래 표준계약서, 권리 정보 유통 플랫폼, UCI 기반 동의 절차 정비 등이 주요 쟁점으로 다뤄졌다.
문화체육관광부는 AI 학습 데이터 거래 표준계약서를 연내 마련하고, 권리 정보 유통 플랫폼을 웹툰·웹소설 분야까지 단계적으로 확대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현장에서는 대기업과의 계약에서 AI 학습 동의 조항이 사실상 유명무실하게 운용되고 있다는 창작자들의 문제 제기도 나왔다. 온라인으로 참여한 회원들도 채팅을 통해 AI 학습 활용과 보상 체계에 대한 의견을 냈다.
협회는 이번 공청회를 계기로 창작자들의 현장 의견을 공식 기록하고, 정부·기업과의 정책 협의를 이어갈 계획이다. 향후 옵트인 기반 AI 학습 시스템과 창작자 보상형 라이선스 모델 논의도 확대하기로 했다.
권혁주 한국만화가협회장은 "만화가 10명 중 9명이 AI 학습을 거부할 방법조차 모르고 있다는 것은 정부의 AI 정책이 산업 진흥에만 치우쳐 창작자 권리 보호를 형식적으로만 다루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이어 "인지도 제고와 접근성 있는 절차 마련이 선행되지 않는 이상 옵트아웃 제도는 실질적 보호 기능을 하지 못한다"며 "창작자가 AI 활용 조건을 스스로 정할 수 있을 때까지 오늘 나온 요구가 선언에 그치지 않고 법과 제도로 이어지도록 요구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영문기사 보기 (View English Artic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