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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품으로 시작해 작가로 끝난 팀"…K팝 아이돌의 '표준' H.O.T.[파고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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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주

30년 전 오늘, 그룹 에이치오티(H.O.T.)가 데뷔했습니다. '십 대들의 우상'이라는 뜻을 지닌 이들은 데뷔 당시 멤버 전원이 십 대였고, 동시대·세대가 가진 문제의식을 노래로 풀어냈습니다. 많은 메가 히트곡으로 사랑받아 수많은 대상을 휩쓸었고, 현재까지도 'K팝 아이돌'의 원형이자 표준을 만든 모델로 꼽힙니다. CBS노컷뉴스가 H.O.T.의 30주년 기획을 준비했습니다. 첫 번째 편으로는 H.O.T.라는 팀에 관해 살펴봅니다.

[기획] H.O.T. 30주년 ① - H.O.T.라는 팀

2000년 발매한 정규 5집 '아웃사이드 캐슬' 활동 당시 모습. SM엔터테인먼트 제공2000년 발매한 정규 5집 '아웃사이드 캐슬' 활동 당시 모습. SM엔터테인먼트 제공
한 해에 KBS-MBC-SBS 방송 3사 대상 석권, 아이돌 그룹 최초로 골든디스크어워즈 대상 수상, 한국 가수 최초로 서울 잠실 주경기장 단독 콘서트, 세계적인 팝 스타 마이클 잭슨(Michael Jackson) 내한 자선 공연 당시 엔딩 무대 출연, 단일 음반 판매량 100만 장 돌파, 방송사 자체 컴백 스페셜 방송, 단독 콘서트 당일 조퇴 금지령 및 지하철 연장 운행 시행, 한국 가수 최초로 중국 정부의 정식 비준을 받은 앨범 발매, 중국 현지 매체에서 '한류'(韓流)라는 표현을 처음 쓴 계기가 된 단독 콘서트 개최…

1996년은 한국 대중가요계에 변화가 몰아친 시기다. '신세대'가 제시하는 '새로운 음악'의 대표주자로 '문화 대통령'이라는 칭호까지 거머쥐며 신드롬을 일으킨 서태지와 아이돌이 그해 1월 창작의 고통을 호소하며 은퇴했고, 같은 해 9월 K팝 아이돌의 시초로 평가받은 그룹 에이치오티(H.O.T.)가 나타났다.

가수 겸 방송인으로 인기를 끌다가 제작자로 변신한 이수만 전 SM엔터테인먼트 총괄 프로듀서(현 블루밍그레이스 A2O엔터테인먼트 키 프로듀서)가 SM기획을 설립하고 데뷔시킨 아이돌 보이그룹이 바로 H.O.T.였다. 전원 십 대였던 문희준·장우혁·토니안·강타·이재원은 H.O.T.라는 이름 아래 뭉쳐 활약했고, K팝 아이돌 역사의 한 획을 그었다.

재능과 가능성을 갖춘 십 대 청소년을 모아 연습 기간을 거쳐, 뚜렷한 방향성이 있는 아이돌 그룹으로 데뷔시키는 것부터 또래를 비롯한 같은 세대의 공감을 얻을 만한 메시지를 담은 음악, 앨범과 곡마다 시각적으로도 확연히 다른 콘셉트, 멤버별로 나눈 역할과 캐릭터, 응원법 문화, 탄탄한 팬덤을 기반으로 한 다양한 상품화와 해외 진출… 이제는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될 만한 아이돌 그룹의 특징 대부분은 이미 H.O.T. 때 선보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물론 H.O.T.가 이러한 '기획형 아이돌'의 유일한 모델은 아니다. H.O.T.는 후속곡 '캔디'(Candy)의 대흥행으로 단숨에 인기를 끌었고, 매 앨범 여러 히트곡을 내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며 '시장의 흥행성'을 몸소 입증한 그룹이었다. 30년이 지난 지금도 H.O.T.가 'K팝 아이돌의 시초'나 '한국 최초의 아이돌'로 평가받는 이유다.

왼쪽부터 강타, 문희준, 이재원, 장우혁, 토니안. 사진은 지난 2011년 3월 이재원 전역 당시 모습왼쪽부터 강타, 문희준, 이재원, 장우혁, 토니안. 사진은 지난 2011년 3월 이재원 전역 당시 모습
정민재 음악평론가는 "K팝 보이그룹의 표준"이라며 "음악·퍼포먼스·멤버 구성·역할 분담·캐릭터·비주얼·콘셉트 등 사실상 모든 면에서 우리 정서에 맞는 보이그룹의 표준을 세웠다. 여전히 그 영향이 존재할 정도"라고 평가했다.

황선업 음악평론가도 "회사 주도로 기획된 다인원 구성, 각 멤버의 캐릭터를 기반으로 한 명확한 포지셔닝, 주 타깃인 십 대의 고민과 정서를 대변하는 노랫말과 스타일링, 음악을 넘어 예능 등 다양한 영역으로 활동 반경을 넓히는 방식까지…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한국형 아이돌'의 기본적인 문법과 시스템을 사실상 정립한 그룹"이라고 정의했다.

김도헌 음악평론가는 "서태지와 아이들의 급작스러운 은퇴 이후 십 대 문화의 공백을 빠르게 채운 그룹으로 세대의 대변자로 거듭났으며, K팝 그룹의 표준과 팬덤 문화를 창조하며 K팝 산업의 가능성을 개척한 팀"이라고 소개했다. 임희윤 음악평론가는 "자의든 아니든 K팝의 시초였고, 그것이 가장 H.O.T.를 잘 수식하는 말"이라고 부연했다.

박희아 음악평론가는 "한국 대중에게 처음 아이돌이라는 개념을 심은 그룹"이라며 "서태지와 아이들이 한국 아이돌의 시초라면, H.O.T.는 한국에서 아이돌이라는 개념을 정립한 팀이다. 또한 SM엔터테인먼트에서 만들어진 한국식 아이돌 그룹 육성 시스템을 최초로 도입한 사례이기도 하다. 지금처럼 체계적으로 시스템화되기 이전의 극초기 모델"이라고 바라봤다.

이규탁 한국조지메이슨대학교 국제학과 교수 겸 글로벌 K-컬처 센터장은 "한국 최초의 아이돌 그룹으로, 향후 등장하는 모든 K팝 아이돌 그룹의 전형을 제시한 그룹"이라고 밝혔다.

H.O.T.는 2018년 MBC '무한도전'을 통해 재결합 공연을 펼쳤다. MBC 제공H.O.T.는 2018년 MBC '무한도전'을 통해 재결합 공연을 펼쳤다. MBC 제공
그는 "H.O.T. 이전에도 90년대 초반 서태지와 아이들이나 듀스, 80년대에는 소방차 등 큰 인기를 얻었던 남성 그룹들이 있었지만 이들은 데뷔 이전 음악인이나 댄스팀 등으로 활동하던 경력이 있었다. 그러나 H.O.T.는 프로로서 아무런 경력이 없던 일반인이 연습생 신분으로 기획사에 들어가, 기획사의 트레이닝 프로그램과 관리 과정을 거쳐 가수로 만들어졌다는 점에서 현재 '아이돌'의 정의에 걸맞은 최초의 그룹"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5인의 멤버가 메인 보컬과 서브 보컬, 춤 담당, 랩 담당, 막내, 대중형 멤버와 '덕후 몰이형' 멤버, 예능감 출중한 멤버, 언변 뛰어난 멤버 등 각자의 역할이 분명하고 조화를 이루며 다양한 취향을 가진 사람들에게 어필할 수 있도록 구성되었다는 점에서, 1세대는 물론 지금의 4세대/5세대까지 이어지는 케이팝 아이돌 그룹 구성 방식의 모범을 제시했다"라고 말했다.

성상민 대중문화평론가는 "H.O.T.는 처음 본격적으로 한국에서 아이돌 사업 시스템의 기틀을 구축한 토대이며, 더 나아가서는 한국 대중음악에 있어서 '십 대'라는 존재를 본격적으로 부각하게 만든 그룹"이라고 짚었다.

1990년대에 이미 H.O.T.와 비슷한 형태와 활동 방향을 보여주는 아이돌 그룹이 등장했음에도, H.O.T.가 'K팝 아이돌의 시초 혹은 표준'으로 불리는 이유도 구체적으로 설명했다. 성 평론가는 "H.O.T.는 가수 본인이 원래 지닌 매력, 강한 흡입력을 지닌 노래로 승부하는 요소 이상으로 꾸준히 그룹 활동 일거수일투족에 몰입하게 만들고, 평범한 개인을 점차 끈끈한 팬덤에 유입시켜 이를 수익으로 변환하는 아이돌 산업 시스템 속에 탄생해 성공했다는 점에서 '초기적 형태'의 한국 아이돌과 다른 궤를 지니고 있다"라고 분석했다.

이어 "마치 '개미지옥'이라는 말이 어울릴 정도로 지속적인 미디어 노출, 체계적인 팬클럽 운영을 통한 결속감 강화를 만드는 것은 물론 활동 휴식기에도 꾸준한 활동 거리를 만들었다. 음반 외에도 편지지, 필통 같은 팬시용품 등 머천다이징에도 적극적으로 관여하면서 수익을 체계적으로 관리하고, 일상에서 H.O.T.를 쉽게 지나칠 수 없도록 한 것도 빼놓을 수 없다"라고 소개했다.

인기 만화가 천계영과 협업해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된 H.O.T. '우리들의 맹세' 뮤직비디오. '우리들의 맹세' MV 캡처인기 만화가 천계영과 협업해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된 H.O.T. '우리들의 맹세' 뮤직비디오. '우리들의 맹세' MV 캡처
'사람'이 곧 '상품'인 연예계에서 H.O.T.는 일찍부터 그 'IP'(Intellectual Property, 지식재산권)의 가치를 전면에 부각해 다채로운 상품을 쏟아낸 그룹이기도 하다. 1집부터 H.O.T.의 초상이 들어간 공책을 팔았고, 인형 브랜드 미미와 협업해 캔디 무대의상을 입은 'H.O.T. 미미'를 선보였으며, 개인용 컴퓨터(PC)가 보급되던 시점인 1990년대 중후반에는 PC에서 재생할 수 있는 엔씨디(nCD)라는 멀티미디어 콘텐츠를 상품화했다.

아예 H.O.T.라는 브랜드를 적극적으로 활용한 협업 상품도 잇따라 출시됐다. 한불화장품은 H.O.T.와 브랜드 라이선스 계약을 맺고 'H.O.T. 위드 퍼퓸'이라는 십 대 전용 향수를 만들었다. LG생활건강은 H.O.T. 브랜드 사용 계약을 맺고 복숭아맛·사과맛·자몽맛의 저탄산음료 'H.O.T.'를 출시해 100억 원 넘는 매출을 올린 바 있다.

심지어 H.O.T.는 디엔에이(DNA)까지도 팔았다. 토니안은 지난 2016년 방송한 TV조선 '아이돌잔치'에 나와 "최초로 DNA를 판매했다"라며 DNA를 상품화하기 위해 정기적으로 머리카락을 뽑았다고 고백했다. 함께 출연한 지오디(god) 박준형은 H.O.T.의 DNA를 파는 걸 직접 본 적이 있다고 증언했다.

'언플러그드 보이' '오디션' 등 당시 십 대에게 특히 사랑받았던 순정만화 작품을 다수 탄생시킨 천계영과 협업해 캐릭터 상품을 만들어 팔았다. 3집 수록곡이자 팀의 자전적인 이야기를 그린 '우리들의 맹세'(The Promise Of H.O.T.)는 해당 캐릭터가 나오는 애니메이션 뮤직비디오로 제작돼 주목받았다.

처음부터 '십 대 지향 그룹'으로 데뷔한 것도 눈여겨볼 만하다. 성 평론가는 "H.O.T.는 그룹명부터 '십 대들의 승리'로 정했을 만큼 서태지와 아이들 이상으로 당대 십 대에게 강하게 소구하려는 행보를 여러모로 드러냈다"라고 밝혔다.

H.O.T.는 2001년 2월 마지막 단독 콘서트 이후 17년 만인 2018년 10월 재결합 단독 콘서트를 열었다. 장소는 똑같이 서울 송파구 잠실 주경기장으로, 5만 석이 매진됐다. 솔트이노베이션 제공 H.O.T.는 2001년 2월 마지막 단독 콘서트 이후 17년 만인 2018년 10월 재결합 단독 콘서트를 열었다. 장소는 똑같이 서울 송파구 잠실 주경기장으로, 5만 석이 매진됐다. 솔트이노베이션 제공 
성 평론가는 "1집 '전사의 후예'(폭력시대)나 2집 '늑대와 양'과 '위 아 더 퓨처'(We are the Future), 3집 '열맞춰!'(Line Up!) 등은 학교폭력, 학교와 사회의 억압, 학력 서열화 같은 요소 등 청소년이 문제를 느끼며 탈출하고 싶 어하는 여러 제약 요소에 대한 비판을 상당히 강하게 드러내는 노래였다"라고 운을 뗐다.

그러면서 "이처럼 노래 가사에서 십 대의 욕구와 갈망을 투사하는 동시에, 앞서 언급한 '우리들의 맹세'에 인기 만화가 천계영과 협업하고, 학용품, 팬시용품, 음료수 등 십 대들이 일상적으로 곁에 두고 소비하는 물품에 H.O.T.를 지속적으로 삽입하며 친근감을 주고, 다시 팬클럽 시스템을 통해 가족이나 학교 이상으로 소속감을 느낄 수 있는 거점까지 마련했다"라고 전했다.

성 평론가는 "노래부터 활동 전반에 이르기까지 십 대에게 지속적으로, 꾸준하게 다가왔던 가수는 그다지 많지 않았던 상황이었다. 한국 대중음악 중심이 중장년 위주에서 젊은 세대로 내려온 것을 고려해도 이십 대 아래로 내려가기 어려웠는데 H.O.T.는 본격적으로 십 대를 한국 대중음악 산업의 중심으로 소환하고, 십 대가 가지는 심리를 적확하게 포착하며 이들을 포섭한 최초의 시도였다"라고 진단했다.

최승인 음악평론가는 "1996년 데뷔 당시 이들에게 따라붙은 말은 '만들어진 그룹'이었고, 사실관계로만 보면 틀린 지적도 아니었다. 다만 이 팀은 말로 반박하지 않았다. 활동 기간 내내 그 말이 틀렸다는 걸 증명했을 뿐"이라며 "H.O.T.는 상품으로 시작해 작가로 끝난 팀"이라고 강조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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