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중의 포항대학교 초빙교수·전직 언론인 제공하늘은 높고 구름은 빠르다. 새벽 5시 30분 고속열차를 탔다. 수서역에 내려 병원에 도착하니 8시 10분이다. 서둘러 피검사를 한다. 오늘은 황달과 간 수치가 얼마일까? 10시 30분 췌담도 전문의 정병순 교수(가명)와 마주 앉았다.
매달 한 번 진료를 받는데 벌써 2년째다. 정교수는 '원발성 경화성 담도염'이라고 가 진단을 내렸다. 10년쯤 지나면 담도가 딱딱해져서 담즙 배출이 안되 죽게 되는 희귀질환이다. 치료제가 없다.
6개월이 지나자 진단명이 바뀐다. 혈액내과 협진을 받고 있는 교수가 '자가면역 질환'이라고 했다. 스테로이드를 먹으라는 대로 왕창 먹었다.
다시 반년이 흘렀다. 이번에는 간 전문의 송달호 교수(가명)가 mri, ct, 간조직 검사, 펫ct를 다시 해보자고 한다. 간의 빌리루빈 수치가 32까지 치솟아 있다. 0.1~1.2mg/dl이 기준인데, 32까지 올라갔다. 현대의학에서는 낮추는 방법이 없다.
"그럼 병원에서는 할 일 없네요. 미로에서 길을 찾다가 죽는 거네요."
이 희귀질환으로 결국 죽음의 날이 찾아오기를 기다리는 것이 내 인생 후반부의 쓸쓸한 의미가 되었다.
옛날옛적에 코피가 멈추지 않아 곧 죽게 된 여자가 있었다. 병원도 한의원도 가 보았지만 코피를 멎게 하지는 못했다. 어느 날 대구에서 꼬아 올린 흰머리에 비녀를 꽂은 할머니 한 분이 찾아오셨다.
여자를 한동안 살피더니 손을 여자의 머리에 올리고 기도를 했다. 주위로 시골교회 목사님과 교우들이 함께 서서 여자의 머리 위에 손을 얹었다. 기도가 끝난 그때 쉬지 않고 떨어지던 코피가 멈췄다.
무어라 말할 수 없는 능력과 신비가 현상계에 내려와 죽음 앞에 서 있는 한 여자를 살렸다. 모두가 이걸 기적이라고 했다. 그 여자가 나의 엄마였다.
아버지는 내가 태어나기 전, 옛날옛적에 늑막염이 찾아와 죽음을 기다리는 신세가 되었다. 읍내 구세군 병원에서 치료를 받았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점점 살이 빠지고 입맛도 사라져 뼈만 앙상하게 남았다.
"동네 사람들이 양지바른 담장에 앉아 햇볕을 쬐고 있는 나를 보면서 혀를 차는 거야. 아이고 건장하던 사람이 곧 죽게 됐네."
어느 날 어머니가 말하기를 "얘야! 기왕 죽을 거면 엄마 소원이나 들어 줘라!"
부흥회가 열리는데 엄마 따라 교회를 가자는 것이었다. 아버지는 마지막 엄마 소원을 들어주기 위해 그날 밤 부흥회에 참석했다. 이런 마음이 떠올라 방석 위에 엎드려 빌었다.
"저를 살려주십시오. 그러면 평생 당신을 위해 살겠습니다"
모두가 돌아간 예배당에 엎드려 눈물을 쏟았다. 갑자기 공중에서 불덩어리가 내려와 아버지의 늑막을 내리첬다. 너무 뜨겁고 고통스러워 정신을 잃었는데, 눈을 떠보니 동쪽 창으로 아침 햇살이 비추었다. 옛날 옛적이라 가능했던 걸까?
엉금엉금 기어서 집에 도착했는데 지금껏 사라졌던 입맛이 돌아와 "엄마 미음 좀 끓여 줘" 라고 했다.
그 후 점점 살이 붙고 입맛을 되찾았다. 지금껏 몰랐던 능력과 기적이 궁핍하고 죽음의 그림자 앞에서 떨고 있던 아버지와 엄마를 살려낸 것이다.
현상계에서 능력과 전지전능과 마주치게 되는 우리는 어떤 정답을 가질 수 없다. 옛날옛적에 쓸쓸한 죽음을 기다리며 방황했던 두 영혼처럼 죽음을 기다려야 하는 나도 언제부터인가 이렇게 질문한다.
"당신의 능력은 사랑인 가요?"
거기까지가 전부다. 전능한 당신이 현상계에 내려와 옛날옛적처럼 나를 전지하고 살려낼까?
나의 애절한 기도에 당신이 대답할 일은 없을 것이다.
옛날 옛적의 하늘은 높고 구름은 빨랐다. 지금도 달라진 것은 없다. 더 높아졌고 더 빨라졌다. 믿음과 의문 역시 각자의 몫이다.
열쇠를 쥔 자는 당신뿐. 나는 오직 바라고 바랄뿐.
조중의 포항대학교 초빙교수·전직 언론인 제공※ 외부 필진 기고는 CBS노컷뉴스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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