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영주 기자중동 정세 불안으로 국제유가가 다시 오름세를 보이는 가운데 정부가 국내 석유제품 최고가격을 앞으로 4주간 더 동결하기로 했다. 국제적으로 경유 공급난이 내년까지 이어질 수 있다는 경고가 나오고 있지만, 국내 석유류 물가가 두 자릿수 상승세를 이어가는 상황이라 민생 부담을 우선 고려한 결정이다.
산업통상부는 오는 17일 0시부터 4주간 적용되는 제11차 석유 최고가격을 기존 10차 수준으로 동결한다고 16일 밝혔다. 이에 따라 리터당 최고가격은 휘발유 1784원, 경유 1773원, 등유 1380원으로 유지된다.
최고가격제는 정유사가 공급하는 석유제품 가격에 상한을 두는 제도다. 소비자가 주유소에서 지불하는 판매가격을 직접 고정하는 방식은 아니지만, 공급 단계의 가격을 제한해 국내 기름값 상승 압력을 낮추는 효과가 있다.
최근 국제 석유시장은 다시 불안해지고 있다. 중동 지역의 군사적 긴장이 이어지는 가운데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하는 선박에 대한 이란의 공격과 예멘 후티 반군의 사우디아라비아 공항·석유시설 공격 등이 공급 차질 우려를 키우면서다.
산업부에 따르면 브렌트유는 10월 둘째 주 평균 배럴당 102달러에서 지난 15일 105.9달러로 올랐다. 같은 기간 서부텍사스산원유(WTI)도 90.1달러에서 98달러로 상승했다. 두바이유 역시 15일 기준 107달러로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석유제품 수급 전망도 녹록지 않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지난 14일 발표한 10월 석유시장 보고서에서 경유 공급 부족이 내년까지 이어질 것으로 전망했다. 중동과 러시아의 공급 차질로 재고가 줄어든 상황에서 겨울철 수요가 다가오고 있어, 정유시설 가동이 회복되더라도 소진된 재고를 다시 채우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다는 분석이다.
그럼에도 정부가 최고가격을 올리지 않은 가장 큰 이유는 민생 물가 부담이다. 9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2.9%로 둔화했지만 석유류 물가는 지난해 같은 달보다 14.8% 뛰었다. 최고가격제가 시행 중인 상황에서도 가계의 에너지 비용 부담이 큰 만큼 상한까지 올릴 경우 소비자 부담이 더 커질 수 있다는 판단이다.
최근 국제유가가 반등하고는 있지만, 직전 최고가격 결정 당시와 비교하면 원유와 석유제품 가격이 일제히 오른 상황은 아니라는 점도 동결 판단에 영향을 미쳤다.
브렌트유는 지난 15일 105.9달러로 제10차 최고가격을 결정했던 9월 셋째 주 평균 105.8달러와 비슷한 수준이다. 두바이유는 같은 기간 124.9달러에서 107달러로 오히려 낮아졌다.
국제 석유제품 가격도 지난달보다 내려왔다. 국제 휘발유 가격은 9월 셋째 주 배럴당 143달러에서 지난 15일 133달러로, 경유는 193달러에서 170달러로 각각 하락했다. 최근 원유 가격의 단기 반등만으로 국내 최고가격을 인상할 상황은 아니라는 게 정부 판단이다.
국내 공급 물량도 충분히 확보돼 있다는 게 정부 설명이다. 산업부는 10~11월 원유 도입 물량을 지난해 평균 대비 100% 이상 확보해 현재 원유 수급에는 문제가 없다고 밝혔다.
정부는 최고가격제가 고유가에 따른 소비 절감 유인을 떨어뜨릴 수 있다는 우려에 대해서도 실제 판매량은 전반적으로 감소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9월 휘발유 주유소 판매량은 전년 동월보다 3.0% 늘었지만, 정부는 지난해보다 짧아진 추석 연휴에 이동 수요가 집중되고 고속도로 주유소 특별할인이 시행된 영향으로 보고 있다. 실제 10월 첫째·둘째 주 휘발유 판매량은 전년 동기보다 5.5% 줄었다.
9월 경유 판매량은 9.0% 감소했고, 휘발유와 경유를 합친 전체 판매량도 3.7% 줄었다. 최고가격제가 시행된 3월 둘째 주부터 10월 둘째 주까지 누적 판매량도 휘발유는 1.7%, 경유는 7.6% 각각 감소했다. 일부 시기의 휘발유 판매 증가만으로 최고가격제가 소비 증가를 부추겼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취지다.
국내 소비 감소에 따라 정유업계는 석유제품 수출제한을 완화해 달라고 정부에 요청하고 있다. 정부도 국내 수급에 차질이 없는 범위에서 업계와 소통하며 수출 물량 관리 방안을 검토할 계획이다.
다만 최고가격 동결이 길어질수록 정유사 손실 보전을 위한 재정 부담과 제도 종료 시점은 숙제로 남는다. 국제유가가 높은 수준을 유지한 채 가격 상한을 해제할 경우 국내 기름값이 한꺼번에 오를 수 있고, 반대로 제도를 계속 유지하면 정부의 손실 보전 부담이 커질 수 있기 때문이다.
산업부는 중동 정세의 긴장이 이어지는 만큼 당분간 최고가격제를 통해 민생 안정을 도모하되 국내외 유가와 수급 상황을 보면서 제도를 탄력적으로 운영해 나간다는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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