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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산한 싱크탱크·입주기업은 5개…실패한 '밀라노 프로젝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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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주

대구의 산업엔진이 꺼져가고 있다. 기존 염색 산업은 부도와 해체로 고사 중이다. 차세대 성장 산업으로 꼽혔던 패션 산업 전환은 실패했다. 현재 대구 산업의 가장 큰 축인 자동차 부품 산업도 전기차 전환, 경기 위축 등으로 위태롭다. 반면 차세대 성장엔진으로 낙점된 로봇, 의료, 물산업까지 아직 가능성에 머물러 있다. 대구시 산업엔진의 현황과 향방에 대해 알아본다.

[대구 산업정책 30년①]섬유·패션산업
1조 원 가까이 투자된 '밀라노 프로젝트'
감사원 제동에도 재추진했지만…이시아폴리스, 입주기업 5곳 불과
패션연, 연구기능 잃고 파산, 허가 취소 거쳐 해체 수순
쉬메릭 매출, 위기설 대두됐던 2014년의 8분의 1 수준
대구 염색공단 가동률 40%대…주민들은 악취 호소

대구텍스타일콤플렉스 외경. 곽재화 기자대구텍스타일콤플렉스 외경. 곽재화 기자
▶ 글 싣는 순서
①파산한 싱크탱크·입주기업은 5개…실패한 '밀라노 프로젝트'
(계속)

'섬유의 메카' 대구시가 8천억 원을 넘게 투자하며 섬유산업을 이을 차세대 산업동력으로 낙점한 '패션산업' 전환이 사실상 실패했다.

싱크탱크였던 한국패션산업연구원(패션연)은 산업부의 연구소 설립허가가 취소됐고, 경제자유구역으로 지정된 패션지구인 이시아폴리스에 남은 패션기업은 5곳에 불과하다.

기존의 염색산업은 중국 등 신흥국에 밀려 경쟁력을 상실했다. 현재 대구의 섬유공장들은 일감 부족으로 주 3일만 가동하는 경우가 허다하고, 서대구 염색산단은 악취 민원으로 인해 기피시설로 전락했다.

이렇게 패션·염색산업 부흥 계획이 쇠락한 데에는 1990년대 문희갑 전 대구시장 재임 당시 DJ 정부와 야심차게 추진했던 '밀라노 프로젝트'의 실패가 결정타라는 분석이 나온다.

감사원 "대구, 패션산업 부적합"…그럼에도 재추진된 밀라노 프로젝트

감사원 '지역산업 진흥사업 추진실태 감사결과처분요구서'(2025) 발췌감사원 '지역산업 진흥사업 추진실태 감사결과처분요구서'(2025) 발췌
밀라노프로젝트는 1999년 시작된 대구의 기간 산업을 패션산업으로 전환하려던 대구시 주도의 대표적인 산업정책이다. 1999년부터 10년 넘게 사업비가 총 8천억 원 이상 투입된 초대형 프로젝트였다.

당시 1990년대 중국 시장이 개방되면서 저렴한 인건비를 바탕으로 섬유를 포함한 경공업종에 대한 추격이 시작됐다. 그러자 1999년 당시 문희갑 대구시장과 DJ 정부는 섬유 산업을 기반으로 고부가가치 산업인 '패션 산업'을 강화해, 대구를 '한국의 밀라노'로 탈바꿈시키겠다며 밀라노 프로젝트를 출범했다.

동구 봉무동에 36만 평 규모의 산업단지인 '패션어패럴밸리'를 조성하고, 한국섬유개발연구원 등 여러 연구기관을 설립하며 R&D 기능을 강화하겠다며 강력한 드라이브를 걸었다.

1단계였던 1999년부터 2004년까지 투입된 예산만 8251억 원을 웃돌았다.

그러나 1단계가 종료된 이듬해인 2005년, 감사원은 '대구 패션어패럴밸리' 사업을 전면 재검토하라고 대구시에 통보했다.

감사원은 "이탈리아의 밀라노, 우리나라의 청담동 등 패션집적지는 다수의 중소기업을 중심으로 섬유, 직물, 방직 등 여러 분야가 연계하면서 자연발생적으로 발달했다. 그러나 대구시는 연계구조가 취약하다"는 점을 지적했다. 즉 패션산업이 '관 주도의 성장 동력'으로는 적절치 않다고 꼬집은 것이다.

게다가 8천억 원 가운데 R&D에 배정된 예산이 6.8%에 불과하다는 점까지 꼬집으며 전략적 타당성에 대한 의문을 제기했다.

그러나 감사원 지적 이후에도 대구시는 패션산업의 꿈을 놓지 못했다. 3년 뒤인 2008년, 대구시는 '패션어패럴단지'의 이름을 '이시아폴리스'로 바꾸는 대신, 경제자유구역 국제패션디자인지구로 지정하며 패션산업단지로서의 정체성을 강조했다.

이시아폴리스는 '경제자유구역 국제디자인패션지구'라는 이름이 무색하게 주거·상업지구화 됐다.

이곳에 들어선 대형 아울렛에는 평일에도 사람이 붐비는 반면, 업무지구인 DTC(대구텍스타일콤플렉스) 인근은 한낮에도 분주함을 찾기 어렵다.

실제로 패션 기업은 씨가 말랐다. 밀라노 프로젝트의 전초기지인 대구 봉무동 '이시아폴리스'에 입주한 기업은 올해 기준 52곳. 이 가운데 패션 관련 기업은 단 5곳에 불과하다.

2015년 대구시가 이시아폴리스에 조성한 DTC 건물에도 패션이나 염색 업종이 아닌 제조업 등 기타업종이 과반을 이루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대구경북경제자유구역청 관계자는 "대구가 섬유 패션 도시라는 점은 많이 퇴색됐다"면서 "한국패션산업연구원도 2년 전에 완전히 해체됐다. 이름은 국제패션디자인지구라고 돼 있지만 사실 기타 업종(자동차부품 제조업, 조명 제조업 등)이 대부분"이라고 말했다.

패션연은 해체, 쉬메릭 매출은 '8분의 1' 토막…무너진 밀라노의 꿈

대구섬유박물관 내 섬유기관 설명 패널. 곽재화 기자대구섬유박물관 내 섬유기관 설명 패널. 곽재화 기자
패션기업 수만 문제가 아니다. 패션산업 전환의 싱크탱크였던 패션연은 아예 해체됐다. 법적 분쟁 끝에 설립 허가가 취소되고, 파산 절차를 밟고 있다.

19일 CBS노컷뉴스의 취재를 종합하면 지난달 대전지방법원은 한국패션산업연구원 내 입주기업체 측에서 제기한 '기관 설립 허가 취소' 결정 취소 소송을 각하했다.

패션연은 2010년 설립된 산업부 허가 전문생산기술연구소(전문연)으로, 이시아폴리스를 중심으로 대구의 섬유염색산업을 패션산업으로 체질개선을 위한 '싱크탱크'였다.

그러나 지난해 2월 산업부(당시 산업통상자원부)는 한국패션산업연구원의 전문연 설립 허가를 취소했다. 연구기관으로서의 활동 부재, 경영진 부재, 부채 누적 등으로 연구원의 목적 달성이 어렵다는 이유였다.

실제로 2019년 대구시와 산업부의 보조금이 중단되고, 이후 패션연 원장이 수년 동안 공석으로 남으면서 패션연의 연구 기능은 멈췄다. 이후 패션연 측은 체불임금 등을 상환하기 위해 사옥을 51억 원에 지역 한 업체에 매각하며 청산 절차를 진행하던 중 지난해 10월 결국 파산했다.

그러자 패션연 건물에 입주해 있던 업체 대표가 설립허가 취소 소송을 제기했지만, 경영인 부재로 소송요건을 미충족해 각하된 것이다.

대구 지역 패션브랜드 '쉬메릭'도 사실상 고사 위기에 처했다.

올해 대구쉬메릭사업협동조합은 휴면조합으로 지정된 지 1년 만에 활동 재개 신청을 하지 않아 해산됐다.

대구경북디자인진흥원은 쉬메릭 사업과 관련해 매년 대구시에서 1억 원이 넘는 예산을 받고 있지만, 지난해 기준 매출은 31억 원에 불과하다. 쉬메릭 위기설이 대두됐던 2014년 당시에도 240억 원을 넘었던 것과 비교하면 '8분의 1' 수준으로 줄었다.

쉬메릭은 밀라노 프로젝트와 더불어 패션을 강조한 중소기업 인증 브랜드로 출범했지만, 패션 기능은 사실상 희미해졌다는 평가도 나온다. 실제로 올해 선정된 쉬메릭 기업 16곳 가운데, 셔츠와 패션잡화 등 패션물품을 판매하는 업체는 4곳에 불과하다.

쉬메릭을 담당하는 대구경북디자인진흥원 관계자는 "대구시에서 오는 예산이 줄어들었다"면서 "지난해 기준 1억 7천만 원을 받아 어려운 상황이다. 내년에는 브랜드 가치에 맞게 신사업을 진행할 것"이라고 말했다.

염색산단, 10년 전 가동률의 절반에 불과…염색산단 악취에 주민은 여전히 '지끈'

옛 한국패션산업연구원 건물로 지역 기업에 매각됨. 곽재화 기자 옛 한국패션산업연구원 건물로 지역 기업에 매각됨. 곽재화 기자
패션산업의 전환이 실패하는 동안, 섬유 산업 역시 신흥국의 추격을 이기지 못한 채 가동률이 10년 전의 절반으로 떨어졌다.

염색 및 섬유산업의 쇠퇴는 '예견된 미래'였던 만큼, 중국 등 신흥국의 추격에 생산량이 절반으로 떨어지면서 명맥만 유지하고 있는 상황이다.

한국섬유개발연구원에 따르면 대구의 섬유제품 제조업 생산지수는 2017년 142.5에서 지난해 89.9로 무려 36.9% 하락했다. 대구 섬유산업의 주요 수출품목인 폴리에스터 직물이 중국 업체들의 인프라 확충과 품질 향상 때문에 경쟁력을 상실했기 때문이다.

대구경북염색섬유산업연합회 관계자는 "중국이 직물 기계를 새로운 기계를 개발하고 도입하고, 국가 지원도 크다. 그러다 보니 예전에는 중국산과 한국산 원단 차이가 구분이 됐는데 지금은 어렵다. 심지어 중국이 앞서가는 품목도 있다"면서 "원사업체인 티케이케미컬 같은 곳도 3년 전 폴리에스터 생산을 중단했다"고 설명했다.

염색산단의 경우는 대형 업체까지 서서히 무너지고 있다.

지난달 2일 대구 대표 폴리에스터 염색가공기업이었던 청운다이텍은 7억 원 규모의 어음을 막지 못해 최종 부도됐다.

지난 8월 기준 염색산업단지공단의 잠재가동률 대비 가동률은 42% 정도다. 주문 물량이 없어 설비의 최대 가동률의 절반 수준도 가동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 섬유업체 관계자는 "현재 주 3회만 가동하는 공장도 있다"고 말했다.

그동안 서대구 염색산단은 악취와 오폐수로 인한 민원이 이어지면서 사실상 기피시설로 전락했다. 그러자 대구시는 대구정책연구원에 '대구염색산업단지 입주 업종 제한 완화 검토 연구용역'을 의뢰하는 등 염색산단 업종 다변화에 나섰다.

그러나 이주한 전 대구 서구의원은 "악취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이전밖에 없다. 지금은 공장 가동률이 낮아서 악취가 덜 심한 것"이라면서 "기준치를 낮춘다고 해도 업체가 있으면 악취가 날 수밖에 없다"며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고 반론을 제기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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