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프

검색
  • 댓글 0

실시간 랭킹 뉴스

"시에 정지용, 문장에는 이태준"…한 문장가의 굴곡진 생애

노컷뉴스 이 시각 추천뉴스

노컷뉴스를 선호 하는 출처로 추가

이 시각 추천뉴스를 확인하세요

'깐수' 정수일, 간첩과 학자 사이…정수일의 삶

 당대 최고의 문장가로 꼽혔지만 월북 이후 오랫동안 이름조차 자유롭게 부르기 어려웠던 작가 이태준의 삶과 문학을 되짚은 '이태준 평전'이 출간됐다.

인물과 현대사에 집중해온 안재성은 이 책에서 이태준을 특정 이념의 상징으로 규정하기보다 식민지와 해방, 분단과 전쟁이라는 격랑 속에서 문학과 양심을 지키려 했던 한 지식인의 생애로 바라본다.

1904년 강원도 철원에서 태어난 이태준은 어린 나이에 부모를 잃고 가난과 방랑을 겪으면서도 학업과 문학에 대한 열정을 놓지 않았다. 휘문고보를 거쳐 일본에서 고학하며 습작을 이어갔고, 단편 '오몽녀'로 문단에 이름을 알렸다.

그의 문학에서 두드러지는 것은 우리말에 대한 집요한 애정이다. 외국어나 일본식 문장을 멀리하고 당대 사람들이 실제로 쓰는 한국어를 다듬어 소설에 담았다. 섬세한 심리 묘사와 절제된 문장, 소외된 인물에 대한 연민은 그를 '한국 단편소설의 완성자'로 불리게 한 바탕이 됐다.

정치와의 관계는 복잡했다. 일제강점기에는 카프 계열의 문학과 거리를 두고 순수문학을 지향했지만, 해방 뒤 좌파 진영과 가까워졌고 결국 월북했다. 북한에서도 지도자 우상화와 선동적 문학에 불편함을 드러냈고, 이후 숙청되며 작가로서의 삶도 사실상 막을 내렸다.

책은 이태준을 영웅이나 배신자로 단순화하지 않는다. 끝내 시대의 이념에 휩쓸렸지만 문학을 정치의 도구로 삼는 데에는 거리를 두려 했던 인물, 그리고 순도 높은 우리말 문장을 남긴 작가로 그의 생애를 다시 읽는다.

1988년 해금 이후 이태준의 작품은 다시 평가받기 시작했다. '문장강화'를 비롯한 그의 글은 지금도 문장을 공부하는 이들에게 읽히고 있다.

안재성 지음 | 인문서원


창비 제공창비 제공
만주국 조선인 소년에서 중국 외교관, 북한의 교수, 남파 공작원, 남한의 역사학자까지. '무함마드 깐수'라는 이름으로 더 널리 알려졌던 역사학자 정수일의 삶은 한 개인의 전기가 아니라 20세기의 국경과 이념을 관통한 기록에 가깝다.

정수일은 1934년 만주국의 조선인 마을에서 태어나 중국과 북한, 중동과 동남아시아, 한국을 오가며 여러 국적과 이름으로 살았다. 베이징대 학생과 중국 외교관, 북한의 대학교수, 남파 공작원, 남한의 역사학자라는 서로 다른 이력이 한 사람의 생애 안에 겹쳐 있다.

정수일의 삶을 처음부터 끝까지 추적한 평전 '일곱개의 이름: 정수일 평전'은 1996년 위장간첩 '깐수'로 체포돼 사형을 구형받던 법정에서 시작한다.

당시 정수일은 자신의 목숨보다 압수된 컴퓨터 속 '고대 동서교류사' 원고를 살려달라고 호소했다. 이 장면은 공작원과 학자라는 두 얼굴 가운데 무엇이 그의 삶을 끝까지 붙들었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옥중에서도 연구는 멈추지 않았다. 그는 '이븐 바투타 여행기'를 아랍어 원전에서 우리말로 옮기고 '실크로드학', '고대문명교류사' 등의 원고를 썼다. 출소 뒤에는 세계 각지의 실크로드 현장을 직접 답사하며 문명교류사를 하나의 학문 체계로 정립하는 데 힘을 쏟았다.

저자 차병직은 정수일과 약 20년간 교류하며 들은 증언과 재판 기록, 저작, 동시대 자료를 대조해 그의 생애를 재구성했다. 공작원으로서의 선택을 미화하지도, 간첩이라는 이름으로 학문적 성취를 지우지도 않는다. 대신 한 인간이 국경과 이념, 분단과 냉전의 경계를 어떻게 넘나들었는지를 따라간다.

정수일은 2025년 2월 세상을 떠날 때까지 연구를 놓지 않았다. 책은 일곱 개의 이름과 다섯 개의 국적을 거쳤지만 책상 앞에서는 끝내 한 사람이었던 그의 삶을 통해 한 인간을 평가한다는 일이 무엇인지 묻는다.

차병직 지음 | 창비

영문기사 보기 (View English Article)

0

0

실시간 랭킹 뉴스

오늘의 기자

여러분의 제보가 CBS노컷뉴스의 시작입니다. 끝까지 취재하겠습니다.

상단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