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뉴스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가 집권 이후 최대 위기에 직면했다. 이달 초 집권 자민당 초선 의원들에게 상품권을 건넨 것이 정치자금법 위반 소지가 있다는 언론 보도가 잇따르고 있다. 전임 기시다 후미오 전 총리의 퇴진 배경이 된 자민당 정치자금 스캔들이 수습되기도 전에 또 비슷한 논란이 불거지면서 이시바 총리의 퇴진 가능성까지 제기되고 있다.
13일 아사히신문은 복수의 자민당 의원들이 이시바 총리 비서로부터 1인당 10만엔(약 98만원) 상당의 백화점 상품권을 받았다고 보도했다. 이시바 총리 측이 상품권을 전달한 의원은 약 15명으로, 총 100만엔(약 1천만원) 규모로 전해졌다. 회식 당일 총리 비서는 참석 의원들의 사무실을 방문해 "오늘의 선물"이라는 설명과 함께 상품권을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상품권을 받은 의원 대부분은 이시바 총리 사무소에 반납한 것으로 전해졌다. NHK에 따르면 일부 의원들은 자민당 '비자금' 스캔들을 언급하며 "부끄러움을 느꼈다"며 반납했다고 한다. 자민당이 비자금 스캔들로 인해 중의원 선거에서 참패하고 기시다 전 총리가 퇴진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시점에 또 정치자금 문제에 휘말릴 경우 자민당의 위기가 더욱 심화될 수 있다는 우려가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자민당 비자금 스캔들은 지난 2023년 주요 의원들이 정치 후원금 행사 참석 티켓을 판매하면서 일부 수익을 보고하지 않고 비자금으로 조성한 사건이다. 수십억엔대의 비자금이 조성됐을 가능성도 거론됐다. 이 사건으로 인해 기시다 후미오 당시 총리의 리더십이 크게 흔들렸으며, 지지율 급락과 함께 퇴진의 배경이 됐다.
아사히신문은 "정치자금규정법은 선거운동을 제외하고 개인으로부터 정치인에 대한 금전 기부를 금지하고 있다"며 이번 상품권 지급이 법에 저촉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시바 총리는 언론의 해명 요청에 "내부 모임이기 때문에 자세한 내용은 밝히기 어렵다"고 답했다. 그러나 논란이 커지자 이날 밤 총리 관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회식 기념품 겸 참석자 가족들에 대한 감사의 의미였다"며 "내 사비로 구입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정치자금법 위반 가능성에 대해서는 "정치활동과 관련된 기부가 아니다"라며 법률 위반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이전에 다른 모임에서도 상품권을 지급한 적이 있느냐'는 질문에는 "(이번이) 처음은 아니었다"며 "나를 위해 일해준 인재와 그 가족들에게 감사의 뜻으로 지급한 것"이라고 답했다.
'총리가 정치인들과 회식하는 것이 정치활동 아니냐'는 지적에는 "왜 정치활동이 되느냐"며 단순한 격려 차원이라고 반박했다. 이어 "법률 위반은 아니지만, 논란을 일으켜 송구하다"면서 총리직 사퇴 가능성을 일축했다.
노부유키 이와이 니혼대 정치학 명예교수는 아사히신문에 "10만엔 상당의 상품권은 사회가 용인하는 기념품의 범위를 넘어선다"며 정치자금법 위반 소지를 지적했다. 정치자금 문제 전문가인 이와이 도모아키 니혼대 명예교수 또한 마이니치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정치인이 개인에게 돈을 건네는 행위는 정치자금법에서 금지돼 있다"며 위법 가능성을 언급했다.
일본 언론들은 이번 논란이 이시바 총리의 입지를 크게 흔들 수 있다고 분석했다. 자민당 내에서도 "총리 선거를 다시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자민당은 비자금 스캔들의 여파로 총리 교체와 중의원 선거 참패를 경험한 바 있어, 오는 7월 참의원 선거를 앞두고 조기 리스크 해소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커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