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1일 선종한 프란치스코 교황. 연합뉴스제266대 프란치스코 교황이 선종하면서 로마 가톨릭교회는 애도 기간을 거쳐 이르면 내달 초 차기 교황 선출 회의인 '콘클라베'가 시작될 것으로 보인다.
교황 선출 규정은 1996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발표하고 베네딕토 16세 교황이 2007년, 2013년 개정한 교황령 '주님의 양 떼'(Universi Dominici Gregis)를 따른다.
'열쇠로 문을 잠근 방'을 의미하는 라틴어 '콘 클라비스'(Con clavis)에서 유래한 '콘클라베'(CONCLAVE). 로마 가톨릭교회에서 교황을 선출하는 선거 제도로, 교황 선종 시 선거권을 가진 추기경단이 소집되어 교황을 선출하는 비밀회의를 이른다.
2023년 1월 베네딕토 16세 장례 당시의 프란치스코 교황. AP-연합뉴스 콘클라베, 어떻게 진행되나
김항안 한국교회정보센터 대표가 발표한 '천주교 교황과 선출방법'에 따르면 교황 선거권은 80세 미만의 추기경들만이 가진다. 사도좌(使徒座·sede)가 법적으로 교황 사망부터 만 15일 이상 최고 20일까지 전 세계 추기경들의 도착을 기다린 다음에 교황 선거를 시작한다.
교황 선출을 위한 비밀회의는 바티칸 시국 영토 안의 지정된 장소와 건물에서 열리며, 이 건물들과 장소는 교황 선출의 공식 발표 때까지 폐쇄된다. 숙소인 산타 마르타의 집과 시스티나 성당까지는 버스를 이동해 움직인다.
또 콘클라베 기간 전화, 인터넷, 신문 구독 등 외부와의 소통이 절대적으로 금지되며 바티칸 경찰은 전자 보안장치를 동원해 규정 준수 여부를 감독한다.
교황 선거는 비밀 투표로 진행한다. 새 교황 선출을 위해서는 출석한 추기경단의 총수를 기준으로 3분의 2 이상의 득표수가 나올 때까지 계속된다. 13일간 투표했는데도 당선자가 나오지 않으면 최다 득표자 2명을 놓고 결선 투표를 벌인다. 이때도 3분의 2 이상 득표해야 한다.
투표는 무기명으로 행해지며, 투표용지 상단에는 'Eligo in Summum Pontificem'(나는 이 사람을 최고의 교황으로 선택한다)라는 라틴어가 인쇄돼 있다. 선거인 추기경들은 기표한 투표용지를 들고 서열에 따라 제단으로 나아가 "나는 심판하실 주 그리스도를 증인으로 삼아 하느님 앞에서 당선되어야 한다고 판단하는 사람에게 투표했습니다"라고 한 후 제단 위에 있는 집표함에 투표용지를 넣는다.
'흰 연기' 나오는 시스티나 성당. EPA-연합뉴스투표가 끝난 후에는 선거에 쓰였던 투표용지는 소각된다. 이때 검은 연기는 새 교황이 아직 뽑히지 않았다는 신호이고, 하얀 연기는 새 교황이 뽑혔다는 신호다. 새 교황이 결정되면 하얀 연기와 함께 성베드로 대성전에 있는 종을 쳐서 새 교황이 선출됐음을 알린다.
교황 선거에서 차기 교황으로 선출된 당선자는 교황 직책 수락 의사를 밝히면서 즉시 자신의 본명을 버리고 평소 존경하던 성인이나 전임 교황의 이름을 골라서 자신의 교황 이름으로 삼아 공표해야 한다.
새 교황의 이름은 수석 부제 추기경이 곧바로 성베드로 대성전 발코니에서 선출 사실과 함께 공포한다. 새 교황은 즉위와 동시에 일명 '어부의 반지'(Pescatorio·페스카토리오)라 불리는 교황 반지를 낀다.
새 교황이 확정되는 그는 '수용한다'(Accepto)는 답변으로 공식 확인하고, 수석 추기경이 회랑 가운데로 나와 군중에게 '하베무스 파팜'(Habemus Papam·우리에겐 교황이 있다)이라고 말하며 새 교황의 이름을 알린다.
그러면 새 교황은 군중 앞에 나타나 '로마시와 전 세계에게'를 의미하는 라틴어 "우르비 에트 오르비"(Urbi et Orbi)라는 말로 전 세계 가톨릭교회 신도들과 시민들에게 첫 축복을 베푼다.
유흥식 추기경. 연합뉴스 최초의 비백인 교황 탄생할까
AFP 통신 등 외신에 따르면 현재 투표권이 있는 추기경은 138명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이 중 110명을 직접 임명했으며, 베네딕토 16세와 요한 바오로 2세가 임명한 추기경은 각각 23명과 5명이다. 한국에서는 올해 74세인 교황청 성직부 장관 유흥식 추기경에게 투표권이 있다.
무엇보다 이번 콘클라베를 통해 최초의 '비(非)백인' 교황이 탄생할지 전 세계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영국 일간 텔레그래프는 "선두 주자가 첫 아시아 출신 교황이 될 수 있다"며 필리핀의 루이스 안토니오 타글레 추기경을 유력 후보로 꼽았다. 개혁 성향인 그는 2013년 콘클라베 때도 교황 후보에 이름을 올렸다.
빈곤, 인권 문제에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며 아프리카 교회의 미래를 상징해 온 콩고민주공화국 출신 프리돌랑 암봉고 베상귀 추기경도 유력한 후보 중 하나다.
여기에 영국 이코노미스트는 한국의 유흥식 추기경도 차기 교황 후보군으로 거론했다. 이코노미스트는 "신학적으로는 주류라고 하지만 사회적 불의를 규탄하는 데 적극적이었던 요한 바오로 2세와 비슷하다"고 전했다.
첫 아메리카 대륙 출신이었던 프란치스코 교황에 이어 가톨릭이 '변화'를 선택할지 여부도 초미의 관심사다.
가톨릭 내 개혁파와 보수파로부터 두루 지지를 받는 후보로 알려진 교황청 서열 2위인 피에트로 파롤린 국무원장 역시 유력 후보로 꼽힌다.
개혁파인 프란치스코 교황과 대척점에 있는 보수 성향의 인물인 헝가리 출신 페테르 에르되 추기경이 보수 진영의 유력 후보로 거론되는 인물이다. 그는 유럽의 난민 수용과 이혼·동성혼에 반대해 왔다.
2013년 3월13일 당시 콘클라베에서 신임 교황으로 선출된 프란치스코 교황이 바티칸 성 베드로 성당 발코니에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역대 교황 '이탈리아' 출신 가장 많아
초대 교황인 베드로 사도부터 프란치스코까지 모두 266명이 교황직에 올랐다. 교황이 되기 위해서는 어떤 국적을 가져도 상관없다.
역대 교황 가운데 210명은 이탈리아 출신이고, 이 중 99명은 로마 출신이다. 나머지 56명은 △프랑스 출신 16명 △그리스 출신 12명 △독일 출신 8명 △시리아 출신 6명 △팔레스타인, 스페인, 아프리카 출신 각 3명 △잉글랜드, 포르투갈, 네덜란드, 폴란드, 아르헨티나 출신 각 1명씩이다. 아직 아시아 지역 출신의 교황은 선출된 적이 없다.
초대 교황을 제외하고 가장 오랫동안 교황직을 수행한 교황은 제255대 비오 9세(1846~1878년 재위)로 31년 8개월을, 그 뒤를 제264대 요한 바오로 2세(1978~2005년 재위)가 26년 6개월을 재임했다.
266명 중 역대 교황 중 '대 교황'이라는 칭호를 받은 이는 제45대 레오 1세(440~461년 재위)와 제64대 그레고리오 1세(590~604년 재위) 두 명뿐이다.
역대 교황 이름 가운데 가장 많이 선택된 것은 '요한'으로, 지금까지 통틀어 23명의 교황이 이 이름을 선택했다. 요한 다음으로 그레고리오와 베네딕토가 16명, 클레멘스가 14명, 레오와 인노첸시오가 13명, 비오는 12명이 있었다.
다만 '베드로'는 초대 교황인 베드로만을 위해 쓰도록 정해져 있어 베드로를 교황 이름으로 쓴 사례는 없다. 이는 베드로를 향한 예수의 명명을 존중하는 차원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