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남동발전(주) 영흥화력발전소.화력발전소에서 나오는 온배수 피해 보상 문제로 장기간 줄다리기를 벌여온 인천 지역 어민들과 영흥화력발전소 간 갈등이 법정 다툼으로 확대될 전망이다.
온배수 피해 범위와 보상 기준 등을 놓고 발전소와 어민 간 정보의 비대칭성, 법적 기준 부재 등이 갈등 해결을 요원하게 하고 있다. 전국적으로 화력발전소와 원자력발전소의 온배수 피해 보상 문제가 십수년째 이어지고 있어 근본적인 대책 논의가 필요해 보인다.
어민들 "온배수 피해 범위·보상금액 등 불합리" 소송 검토
7일 한국남동발전 영흥발전본부와 인천 지역 어민단체 등에 따르면 인천 옹진군 영흥화력발전소 인근 섬 어민들은 발전소를 상대로 온배수 피해 범위와 보상 등에 대한 소송을 검토하고 있다.
주요 쟁점은 영흥화력발전소 온배수의 피해 범위와 보상 금액과 시기 등이다. 인천 옹진군 영흥·자월면 주민들은 2018년부터 영흥화력발전소의 온배수 배출로 인한 생계 피해를 주장해왔다.
이에 남동발전은 2021년 대이작·소이작·자월·승봉어촌계 등과 약정을 맺고 2022~2023년 부경대학교 해양과학공동연구소에 '영흥전본부 1~6호기 가동으로 인한 온배수영향 어업피해조사 용역'을 의뢰했다. 부경대는 이 조사를 통해 온배수 직접 피해 범위를 영흥도 남쪽 6.7㎞, 북쪽 7.7㎞까지라고 정했다.
남동발전은 이 결과를 토대로 애초 약정을 맺은 어촌계 가운데 소이작도 인근 해상은 손해배상 대상에서 제외했다. 소이작도가 대이작도와 불과 1㎞ 남짓 떨어진 데다 두 섬의 어민들이 같은 어장에서 조업하는 상황에서 이같은 결정은 반발을 야기했다.
남동발전이 손해배상 약정을 맺어놓고 용역 결과를 핑계로 온배수 피해 범위를 줄였고, 손해배상도 단 1차례로 제한해 앞으로의 피해에 대해서는 '면죄부'를 받으려 한다는 비판이 나왔다.
남동발전은 피해보상 대상을 영흥화력발전소 실시계획 승인 고시일 이전에 어업을 했던 사람들로만 한정했다. 영흥화력발전소의 각 발전기 실시계획 승인일은 1·2호기 1995년 7월20일, 3·4호기 2004년 4월14일, 5·6호기 2009년 10월16일이다. 시점에 따라 최대 30년 전부터, 최소 16년 전부터 어업을 해야 보상을 받을 수 있는다는 의미다.
남동발전은 이번 손해배상을 통해 과거 30년간 받은 피해와 미래의 피해까지 산정해 손해배상하는 이른바 '영구보상'을 하겠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어민들은 미래의 피해를 예측하는 게 불가능하고, 손해배상 액수도 전체 어민에 대한 배상액이 모두 46억원에 그쳐 턱없이 부족하다고 반발한다. 해당 지역의 어민 인구를 감안하면 어민 1명당 30여년 전부터 앞으로 어업을 그만두는 시점까지 온배수 피해로 인한 보상금액이 몇백만원 수준에 불과한 셈이다.
영흥화력발전소 온배수 배출에 따른 피해 보상 범위. 이작도어촌계 제공전국 원자력·화력발전소-어민, 온배수 피해 갈등 십수년째…기준조차 없어
이같은 갈등이 장기화되는 데는 그동안 온배수 피해를 외면한 정부의 기준 마련 부재, 온배수 피해와 배출량 등을 감춘 발전사와 피해를 입었지만 이를 과학적을 증명하기 어려운 어민들 사이의 정보 비대칭성 등이 원인으로 지목된다.
발전소 온배수(thermal discharges)는 발전과정에서 발생한 열을 바닷물로 식힌 뒤 이를 그대로 바다에 배출하는 물을 의미한다. 일종의 발전소 냉각수인 셈이다. 이 때문에 온배수는 바닷물 온도 상승을 야기한다.
발전소 온배수는 취수 전인 자연배수 대비 수온이 연평균 약 7℃ 정도 높다. 발전소 1기에서 사용하는 해수의 양은 초당 약 50~60톤이다. 온배수는 취수 전에 비해 따뜻해진 상태로 해양에 배출된다는 점에서 수산업적 피해와 해역 온도 상승, 나아가 해양에 흡수됐던 이산화탄소가 다시 대기로 방출되는 원인으로 작용한다는 점에서 그동안 논란이 됐다.
전 세계 주요국은 일찌감치 온배수가 해양오염 가운데 하나라고 보고 온배수 배출 기준 등을 명시한 법률을 제정했다. 미국은 1996년, 캐나다는 2002년, 일본은 2005년에 각각 온배수 배출 관련 법을 제정했다. 이들 국가들은 모두 '온배수와 해수와의 수온 차를 일정 수준 초과해서는 안된다'는 내용을 법률에 담고 있다.
이탈리아의 경우, 온배수 배출구로부터 1㎞ 내 온도 상승치가 3℃ 이하가 유지되도록 규정하고 있고, 중국도 평균 4℃를 초과하지 않도록 하고 있다.
온배수 배출온도 공개하지 않는 영흥화력…발전사-어민 간 정보 비대칭
온배수 배출로 인한 피해를 가늠할 수 있는 각종 자료들이 국회 국정감사 때나 일부 공개되는 등 주민들이 관련 정보에 접근하는 데 벽이 높다는 점도 갈등 조정을 더욱 어렵게 한다. 남동발전은 국내 다른 발전공기업과 달리 현재 산하 화력발전소의 온배수 배출구와 취수구의 수온을 공개하지 않고 있다.
그러나 2022년 국정감사 당시 남동발전이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송기헌(강원 원주을)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를 보면 영흥화력발전소의 온배수 배출구 온도와 수온의 온도차는 2022년 1월과 2022년 8월 각각 14.6℃를 기록할 만큼 심각한 수준이었다.
2023년 국회 산자위 국정감사 때는 2023년 산업부 산하 주요 6개 발전소(한국서부·중부·동서·남부·남동발전소, 한국수력원자력)의 전체 온배수 배출량이 601억5000만톤에 이른다는 통계도 공개됐다.
십수년째 보상 기준 조사만 '공회전'…고리원전 사례 되풀이 우려도
논란과 우려에도 불구하고 온배수 배출과 관리, 오염 등에 대한 기준 마련은 요원해 보인다.
앞서 2016년에는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에서 온배수를 해양오염의 하나로 보고 이에 대한 수산자원조성금을 부과한다는 내용의 수산자원관리법 일부개정법률안이 발의됐지만 해수부와 산업부 간 이견 충돌로 반영되지 못했다. 이후 간혹 국정감사 등을 통해 발전소 온배수 관리 방안이나 배출 기준 등을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실정이다.
온배수 배출에 대한 법적 기준이 부재하면서 온배수가 실제 해양생태계에 미치는 영향이 어느 정도인지를 둘러싼 논란도 가중되고 있다. 조사기관에 따라 결과도 널뛰고 있어 원자력·화력발전소와 인근 어민 간의 갈등은 십수년째 결과를 내지 못한 채 표류하고 있다.
고리원자력발전소의 경우 2005년부터 인근 어민들과 온배수 피해에 대한 보상을 놓고 20년째 결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발전사인 한국수력원자력은 2007년 부경대 해양과학공동연구소에 조사를 의뢰해 발전소 반경 7.8㎞가 온배수 피해 해역이라고 발표했지만 2009년 전남대 조사에서는 반경 11.5㎞라는 결과가 나왔다. 이에 한수원은 부경대 조사 결과를, 어민들은 전남대 조사 결과를 내세우면서 보상 합의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
결국 법정공방 끝에 법원에서 전남대 결과에 문제가 없다는 판결을 내렸지만 한수원은 2022년 부경대 해양수산연구소에 세 번째 연구 용역을 발주했다.
영흥화력발전소와 인근 어민들의 온배수 피해 보상 갈등도 고리원자력발전소의 전처를 밟는 게 아니냐는 전망이 나오는 이유다.
"온배수 배출로 어업권 손해 발생하면 배상 의무 있어" 판례 주목
다만 영흥도 인근 어민들은 이번 사안이 단순 온배수 피해 범위 산정이나 보상금액을 넘어 '수질오염으로 인해 어업활동 등에 장애를 입은 어민은 오염발생시설의 경영자로부터 관계 법령에 따라 정당한 배상을 받을 수 있다'는 수산업법의 관점에서 소송을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져 그 결과가 주목된다.
수산업법 82조는 '산업시설 기타 사업장의 건설 또는 조업이나 선박, 해양시설과 해저광구의 개발 등에 의한 수질오염으로 인해 면허받은 어업에 피해가 발생한 때에는 그 오염발생시설의 경영자는 관계 법령이 정하는 바에 따라 피해자에게 정당한 배상을 해야 한다'고 규정한다.
이와 관련해 2017년 대구지법 영덕지원 민사나부(강경호 부장판사)는 경북 울진의 한 수산양식업자가 신울진원전 1·2호기에서 나온 온배수로 인해 피해를 입었다며 제기한 민사 소송에서 원고 승소를 선고했다.
이 재판은 당시 한수원이 해당 양식업자를 온배수 피해 보생 대상에서 제외하자 제기된 것으로, 재판부는 "발전소 가동 시 발생되는 온배수 배출이라는 수질오염으로 인해 어업권에 손해가 발생하는 경우 손해를 배상할 의무가 있다"고 판단했다.
해당 재판은 상고와 대법원 파기환송 등을 거쳐 2019년 12월 원고 일부 승소로 선고가 확정됐다.
영흥화력발전소 측은 "온배수로 인해 피해를 받는 어민들에게 정당하고 적법한 수준의 보상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며 "관련 법과 규정에 따른 제약으로 어민들의 모든 의견을 반영하기에는 어려움이 있지만 지역공동체의 일원으로 지역민들과 상생하는 발전소가 되기 위해 지속적으로 소통·협력하는 등 가능한 수준에서 최대한 노력을 기울이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