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문수 국민의힘 대선 후보와 한덕수 무소속 예비후보가 7일 오후 서울 종로구의 한 식당에서 단일화 관련 회동을 하기 전 악수하고 있다. 류영주 기자국민의힘 지도부의 '단일화 프레임'이 애초부터 무소속 한덕수 대선 예비후보를 염두에 둔 게 아니냐는 비판이 나온다. 경선 초기만 해도 '반(反) 이재명 빅텐트'를 외치더니, 김문수 후보가 선출된 직후부터는 마치 '한덕수와의 단일화'가 기본값이었던 것처럼 언급하고 있어서다.
단일화는 빅텐트로 가는 여러 방법 중 하나에 불과한 데다가, 각각 내포하고 있는 의미가 엄연히 다른 단어인데도 사실상 '한덕수 추대'를 위해 교묘하게 섞어 쓰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김문수 압박용 '단일화 찬반 여론조사'
7일 국민의힘은 오전 9시부터 약 12시간 동안 당원들을 대상으로 긴급 ARS 여론조사를 진행했다. 해당 조사는 먼저 당원이 맞는지 확인한 뒤 '국민의힘의 21대 대선 승리를 위한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와 무소속 한덕수 후보 간의 단일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지'를 물었다.
'필요하지 않다'고 선택할 경우 조사는 종료되고, '필요하다'를 선택한 사람에 한해서 '단일화 시기는 대선 후보 등록 전과 후 중 언제 해야 된다고 보는지'를 선택하도록 했다.
이 조사는 지도부가 김 후보를 압박하기 위한 목적으로 시행됐다. 김 후보가 선출된 후 한덕수 전 총리와의 단일화 작업에 나서지 않자 '당심'을 앞세워 이를 관철시키겠다는 것이다. 권영세 비상대책위원장은 "조사 결과에 따라 필요한 조치를 밟아 나갈 것"이라고 으름장을 놓기도 했다.
국민의힘 이상민 대전 유성을 당협위원장 등 40명의 원외 당협위원장들이 6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김문수 후보와 무소속 한덕수 후보의 단일화를 촉구하는 모습. 연합뉴스이미 중진 등 다수 의원들과 수십여명의 원외 당협위원장들이 연달아 '단일화 촉구' 성명을 내는 등 연판장을 돌렸고, 지도부가 기습적으로 전국위원회와 전당대회 소집을 공고하는 등 여러 압박 카드를 사용했음에도 김 후보가 꿈쩍도 하지 않자 더 센 방법을 꺼내든 셈이다.
하지만 지도부가 이 과정에서 교묘하게 단어를 바꿔 당원들을 기망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애초 '반(反) 이재명 빅텐트'를 외쳐왔는데, 김 후보가 선출된 후에는 갑자기 '한덕수와의 단일화'로 은근슬쩍 프레임을 전환했다는 것이다. 당 안팎에선 김 후보를 배제하기 위한 의도가 있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한 국민의힘 관계자는 "당원들에게 찬반을 물을 거면 단일화가 아닌 빅텐트에 대한 의견을 묻는 게 맞다"며 "단일화로 물어보든, 빅텐트로 물어보든 모두 찬성율이 높을 것이다. 당원들이 느끼기엔 결과적으로 같은 것이라고 보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하지만 두 단어가 내포하고 있는 의미는 완전 다르다"며 "단일화는 오직 한덕수만을 위한 단어지만, 빅텐트는 이준석·황교안 등 범보수 전체와의 연대까지 내포하고 있다. 특히 단일화는 한 전 총리가 주인공이지만, 빅텐트로 보면 김 후보도 기둥이 될 가능성이 잠재돼 있다"고 강조했다.
여론조사 질문 자체에 특정 답을 유도하는 표현이 들어가 있어 부적절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대선 승리를 위한' 이라는 전제가 달렸기 때문이다. 당원 입장에서는 찬성을 누를 수밖에 없는 셈이다.
또 다른 관계자는 "지도부가 교묘한 말장난으로 당원과 국민들을 기망하고 있다"며 "당원들은 대선에서 이길수만 있다면 빅텐트든 단일화든 다 찬성한다는 입장인데, 이를 이용해서 본인들 입맛대로 사용하고 있다. 사실상 처음부터 '한덕수 추대'가 목적이었다는 걸 자인한 꼴"이라고 비판했다.
실제 동아일보가 여론조사 전문기관인 리서치앤리서치에 의뢰해 지난 4~5일 전국 18세 이상 성인 남녀 1013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뒤 이날 발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단일화'나 '빅텐트' 모두 찬성 비율이 높게 나왔다.
'김 후보와 한 전 총리 간 단일화 찬반'에 대해선 찬성 42.9%, 반대 35.8%, 잘 모름 21.3%로 집계됐고, '빅텐트 찬반'을 물었을 때는 찬성 45.0%, 반대 39.6%, 잘 모름 15.4%로 나타났다.
특히 국민의힘 지지층에선 '단일화 찬성'이 89.6% 였고, '빅텐트 찬성'도 80.7%에 달했다. (무선 RDD 표본, 전화면접 100% 방식. 응답률 10.0%. 표본오차 95% 신뢰수준에 ±3.1%p.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일각에서는 선관위에 공식 후보로 등록하기 전 상황에서 이른바 '단일화'를 한 뒤, 특정 당 후보로 등록하는 것 자체도 사실상 '경선'이라고 봐야하는데 지도부와 의원들이 교묘하게 바꿔 부르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노무현-정몽준 단일화' 사례에서의 감동을 억지로 재현하고자 단어를 오용하고 있단 것이다.
의총→비대위→선관위 개최…토론+여론조사 '로드맵' 의결
국민의힘 권영세 비상대책위원장과 이양수 중앙당선관위원장이 7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의원총회에 이어 열린 비상대책위원회의와 선거관리위원회의를 마친 뒤 나오고 있다. 연합뉴스김문수 국민의힘 대선 후보와 한덕수 무소속 대선 예비후보의 전날 단일화 협상이 결렬되자 국민의힘은 당초 마련했던 후보 단일화 로드맵(일정)에 따라 양 후보 측에 8일 오후 6시 인터넷 중계를 통한 양자 토론과 9일 여론조사를 제안하기로 했다.
국민의힘은 전날 밤 의원총회와 비상대책위원회를 잇따라 열고 황우여 전 당 선거관리위원장의 사퇴로 공석이 된 선관위원장에 이양수 사무총장(선관위 부위원장)을 위촉했다. 국민의힘 선관위는 이어 후보자 토론-여론조사 일정을 확정하고 비대위는 곧바로 선관위의 단일화 일정안을 의결했다.
국민의힘은 당원을 대상으로 단일화에 대한 여론조사를 진행한 결과도 공개했다. 조사 결과 응답자 가운데 '단일화가 필요하다'라고 답한 의견이 21만 2477명으로 82.82%를 기록했다. 후보 단일화가 필요하다는 응답자 가운데 86.7%는 '11일 대선 후보 등록 마감 이전 단일화가 필요하다'라고 응답했다.
양 후보에게 토론과 여론조사 로드맵을 제안하기로 한 근거가 당원을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 결과다. 김문수 후보가 토론을 거부해도 당은 9일 단일화 여론조사를 강행할 방침이다.
당이 주도하는 단일화 논의에 반발 중인 김 후보 측이 여론조사 결과에 불복할 가능성도 있어 보수 진영 후보단일화를 둘러싼 파열음은 지속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