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1월 18일 동덕여자대학교 정문 인근 도로에 '공학 반대' 문구가 락커로 칠해져 있다. 주보배 기자 반년 가까이 지속된 동덕여자대학교(동덕여대)의 공학전환 학내 갈등이 학교 측 형사고소 취하 결정으로 일단락되는 모양새다. 시설물 복구 비용 문제가 남아있지만 시위 학생 측에 온전히 책임을 묻기 보다 학교 구성원들이 함께 해결 방법을 강구하겠다는 게 대학 측이 내놓은 입장이다. 교육계에서는 이번 사태가 대학에는 학생 소통 강화, 학생에는 과격 시위 자제의 계기로 작용해야 한다는 조언이 나온다.
동덕여대, 학생 고소 취하…경찰 수사는 계속
동덕여대는 공학 전환에 반대하며 본관을 점거했던 학생들에 대한 형사 고소 취하서와 처벌불원서를 경찰에 제출했다고 15일 밝혔다. 동덕여대 김명애 총장은 이날 담화문에서 "반목과 불신, 학교 이미지의 실추 등 견디기 어려운 내·외부적인 상황을 체감하면서 기존에 취한 법적 조치를 취하하기로 했다"며 "이는 해당 행위가 정당화될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했지만 궁극적으로는 처벌과 대화와 포용으로 문제를 풀어야 하는 교육기관으로서의 입장에 의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 총장은 특히 "앞으로 교육 과정과 운영 등 모든 중요한 사안에 대해 구성원들과 한층 더 협의하는 문화를 만들어가겠다"며 학생과 교수, 직원, 동문 등 모든 구성원이 참여하는 '공학전환공론화위원회'(공론화위)를 구성해 쟁점이 된 공학 전환 문제를 논의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류영주 기자
당초 학교 측은 시위로 인한 피해 금액이 최대 54억 원이라고 추산했는데, 학생들에게는 배상금을 사실상 요구하지 않기로 했다. 복구 비용 문제는 학내 구성원들과의 협의를 거쳐 대안을 마련하겠다는 것이다. 동덕여대 관계자는 CBS노컷뉴스와의 통화에서 "(시설물) 복구 비용 관련해서도 학생, 교직원 등 구성원 모두가 공론화위처럼 협의위원회를 만들어서 같이 방법을 강구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학교의 결정에 대해 동덕여대 제 58대 총학생회 비상대책위원회·중앙운영위원회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형사고소 철회는 시작입니다. 동덕여대가 계속될 수 있도록 함께 해주십시오' 제목의 입장문을 내고 "공론화위에서 남녀공학 반대는 물론이고, 논의 과정에서 학생 의견이 다를 시 의견이 충분히 개진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다만 이번 고소 취하가 곧장 경찰 수사 종결로 이어지는 건 아니다. 재물손괴 등 혐의는 피해자가 처벌을 원하지 않으면 형사 처벌할 수 없는 반의사불벌죄에는 해당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서울경찰청 광역수사단 형사기동대는 고소, 고발, 진정 등 총 75건을 접수해 33명을 공동재물손괴 혐의 등으로 입건해 수사 중이라고 밝혔다.
경찰 관계자는 "학교 측에서 고소 취소장을 제출했으나, 해당 사안은 친고죄나 반의사불벌죄에 해당하지 않고, 여타 고발 등도 그대로 유효하다"며 "계속 수사해 조만간 사건을 종결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장시간 이어졌던 학내 갈등은 지난해 11월 동덕여대의 남녀공학 전환 가능성이 학생들에게 알려지면서 촉발됐다. 학생들은 충분한 논의 없는 전환 시도라며 본관을 점거하고 교내 시설물에 래커칠을 하는 등 시위를 벌였다. 대학은 법적 책임을 학생들에게 묻겠다며 같은달 29일 공동재물손괴와 공동건조물침입 등 혐의로 총학생회장을 포함한 학생 21명에 대한 고소장을 서울경찰청에 접수했다.
교육계 "공동의 노력으로 공동체성 회복해야"
교육계에선 학교 측 형사고소 취하 조치를 계기로 대학과 학생이 소통 구조를 정비하고, 공동체성을 회복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광주교대 교육학과 박남기 교수는 "학생에게 직결되고 관심 있는 주제를 논하고자 할 때는 이슈화 단계부터 학생을 참여시키고 지속적으로 논의하는 의사결정 구조 체제를 갖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양대학교 교육학과 박주호 교수도 "어떤 사안이 발생되기 전에 공개적으로 이야기하고 논의하는 것이 가장 최선"이라고 말했다.
경인교대 교육학과 박주형 교수는 "(형사고소 취하가) 끝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학생들도 (시위) 행위에 대해 성찰을 한다거나 같이 공동의 노력을 해서 공동체성을 회복하는 시작점인 것 같다"고 했다.
박 교수는 그러면서 "학생과 학교는 공동체라는 점에서 법으로 다투기 보다는 양보, 포용, 배려해야 한다. 그런 관점에서 동덕여대의 처벌불원서는 환영받을 만한 일"이라며 "함께 공존하고 관계를 회복하고, 학교의 공동 목표를 달성하는 게 (이번 사태의) 초점"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