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검색
  • 댓글 0

실시간 랭킹 뉴스

[기고]트럼프-김정은 시즌 2가 곧 시작될 조짐들

노컷뉴스 이 시각 추천뉴스

이 시각 추천뉴스를 확인하세요

연합뉴스연합뉴스
트럼프 2기 행정부가 출범한 지 1년 4개월여가 지났다. 관세 전쟁, 우크라이나 종전 압박, 그리고 이란과의 전면전 위기까지…트럼프 외교는 정신없이 세계를 흔들어왔다. 그 소용돌이 속에서 한동안 잠잠하던 한반도도 다시 꿈틀대기 시작했다.

아직 대화의 문이 완전히 열렸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그러나 지정학의 막전막후에서 크고 작은 신호들이 동시에, 그리고 매우 빠르게 쌓이고 있다. 2018년 전 세계를 뒤흔들었던 미·북 정상회담, 이른바 '시즌 1'의 데자뷔를 일으키는 네 가지 조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희망 회로'를 한번 돌려보자.

첫 번째 조짐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평양행 가능성이다.


최근 외교가에는 시 주석의 방북설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표면적으로는 지난해 9월 김정은의 베이징 방문에 이은 답방 성격이다. 주목해야 할 점은 타이밍이다. 시진핑은 늘 미·북 관계가 크게 움직이는 변곡점마다 평양을 찾았다.

얼마 전 열린 미·중 정상회담에서 두 나라는 발표문의 뉘앙스를 달리했다. 미국 측 팩트시트에는 '북한 비핵화'가 명시됐고, 중국은 '한반도 문제가 논의됐다'고 뭉뚱그렸다. 어느 쪽 수사가 실제에 가깝든, 북한 문제가 테이블 정중앙에 올랐다는 사실은 명백하다. 트럼프가 시진핑에게 김정은을 향한 자신의 뜻을 전달해달라고 요청했을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물론 시진핑이 평양에서 북한을 거칠게 압박할 리는 없다. 우크라이나 전쟁을 계기로 급격히 심화된 북·러 밀착에 베이징은 상당한 당혹감과 질투심을 느끼고 있다. 러시아가 북한에 돈과 물자, 군사적 후원을 제공하는 상황에서 중국이 북한을 몰아붙일 이유는 없다. 오히려 "여전히 러시아보다 중국이 더 중요한 파트너"라는 점을 설득하려 할 것이다.

여기에는 한국을 향한 메시지도 담겨 있다. "남북 관계에서 무언가를 도모하려면 결국 중국을 통과해야 할 것이다." 중국은 늘 이런 방식으로 지역 외교를 레버리지로 활용해왔다. 이재명 정부의 대북 행보에도 같은 청구서를 내밀 것이다.

두 번째 조짐은 트럼프-김정은 시즌 1을 거들었던 외교관들의 동선이다.


비비안 발라크리쉬난 싱가포르 외무장관이 최근 평양을 방문한 뒤 서울을 찾았다. 2018년 첫 미·북 정상회담 때도 그는 싱가포르 외무장관으로서 북한을 거쳐 한국을 방문했다. 외교 세계에서 반복은 우연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비록 그가 이번 방한에서 "북한이 현재 대화에 적극적이지 않아 보인다"며 신중한 모습을 보였지만, 대화 의지가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대화의 통로가 될 수 있는 인물이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흥미롭다.

여기에 또 하나의 이름이 겹친다. 미국 국무부의 앨리슨 후커 정무차관도 이번 주 한국을 찾는다. 공식적인 방문 목적은 핵추진 잠수함 건조 등 한미 정상 합의 사안을 이행하기 위한 양자 실무그룹 출범을 위해서다. 그러나 그가 트럼프 1기 시절 미·북 대화의 실무를 담당했던 외교관이라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현재 국무부 넘버 3인 그는 미·북 대화가 재개된다면 실무 키맨 역할을 할 인물이다.

세 번째 조짐은 남북 관계의 이면에서 감지되는 미묘한 신호다.


북한은 공식적으로 여전히 한국을 상대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김정은은 남북관계를 더 이상 특수관계가 아니라 '적대적 두 국가' 관계로 규정했다. 그러나 현실은 늘 선언보다 복잡하게 움직인다.

지난 4월 이재명 대통령이 무인기 침투 사건에 대해 유감을 표명하고 재발 방지 방안을 밝히자,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은 담화를 내고 이를 "솔직하고 대범한 사람의 자세"라고 화답했다. 남북관계가 경색된 지금, 이런 신속한 반응이 나왔다는 점은 이례적이다.

연합뉴스연합뉴스
눈에 띄는 장면도 있었다. 최근 북한의 여자 축구 클럽 '내고향여자축구단'이 AFC 여자 챔피언스리그에 출전하기 위해 한국을 방문했다. 북한 선수단의 8년 만의 방한이었다. 물론 시즌 1 때 남·북·미 정상회담의 신호탄이 됐던 '평창의 기적'과 비교할 수는 없다. 그러나 '절대 상대하지 않는다'는 공식 입장과 달리, 행동에서는 '선택적 상대'를 하고 있는 셈이다.

네 번째 조짐은 북한의 계산이다.


북한은 트럼프 2기 들어서도 미사일 시험과 무기 개발을 이어가고 있다. 그러나 핵실험이나 ICBM 발사처럼 판 전체를 뒤집는 수준의 고강도 도발까지는 아직 가지 않고 있다. 대화도 없고 합의도 없는데, 왜 일정한 선을 넘지 않는가. 트럼프는 이것을 "김정은이 나에게 보내는 경의"로 해석하고 싶어 한다.

북한은 현재 "비핵화 협상은 테이블에 올릴 수 없다"는 전제를 완강히 고수하고 있다. 만약 이 상태에서 미·북 대화가 시작된다면, 김정은은 이를 '트럼프가 우리의 조건을 수용하고 핵보유국 지위를 암묵적으로 인정했다'는 방증으로 활용할 것이다.

지금 북한의 외교적 레버리지는 시즌 1보다 훨씬 강하다. 러시아라는 든든한 후원자가 생겼다. 북한은 급할 것이 없다. 그러나 급하지 않다는 말이 아무것도 하지 않겠다는 뜻은 아닐 것이다. 오히려 탐색해볼 여유가 생겼다는 뜻으로 읽힌다.

더욱이 베네수엘라, 이란 등을 상대로 거칠게 움직이는 트럼프를 적당히 관리하고 싶은 계산도 있을 것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다가 트럼프의 분노를 사는 것보다, 적절한 시점에 대화 테이블에 앉는 편이 전략적으로 유리할 수 있다.

한국은 어디에 서야 하나.


흥미롭게도 현재 한국은 시즌 1 당시 문재인 정부와 같은 진보 성향의 이재명 정부가 이끌고 있다. 그러나 외교적 기조와 포지셔닝은 그때와 사뭇 다르다.

하나는 역할에 대한 인식이다. 이재명 정부는 대북 문제에서 무리하게 '운전석'에 앉으려 욕심내지 않는다. 트럼프가 먼저 해도 된다. 누군가 북한과 대화하면 된다. 스스로를 '페이스메이커'로 위치시키고 있다. 북한은 현재 러시아와 중국이라는 강력한 뒷배가 있는 만큼 당장 한국에서 받아내고 싶은 것도 없어 보인다. 이런 상황에서 방향성은 분명히 밝히되, 반드시 운전대를 쥐어야 하는 건 아니라는 냉정한 현실주의다.

또 하나는 한일 관계다. 이재명 정부는 윤석열 정부가 복원해 놓은 한일 관계의 흐름을 파기하지 않고 오히려 계승·발전시키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1년간 한일 정상회담이 세 차례나 진행하며 정상 간 친밀함도 과시하고 있다. 시즌 1에서 아베 정권이 최대의 훼방꾼이었다는 점을 기억한다면, 지금의 한일 밀착은 대북 문제에서 협력의 공간을 더욱 넓혀주고 있다.

연합뉴스연합뉴스
동시에 중국을 향한 지렛대가 된다. 중국은 한일 관계의 균열을 전제로 한국에 대한 외교적 영향력을 행사해왔다. 그 전제가 흔들리고 있다. 그렇다고 이재명 정부가 지난 윤석열 정부처럼 중국을 소홀히 하고 있는 것도 아니다.

트럼프와 김정은은 머지않아 다시 만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그것이 비핵화 협상일 가능성은 낮다. 이번 시즌 2는 '핵을 가진 북한을 어떻게 관리하고 억제하며, 나아가 공존할 것인가'를 둘러싼 완전히 새로운 게임의 시작일 수 있다.

한국이 운전석에 앉지 못하더라도 이 레이스에서 이탈해서는 안 된다. 페이스메이커는 우승을 포기한 주자가 아니다. 레이스의 속도와 흐름을 조율하고, 결정적 순간에 판도도 바꿀 수 있다. 이를 위해선 전체 판도를 읽는 전술적 안목과 흔들리지 않는 일정한 리듬, 상황에 따라 완급을 조절하는 유연성이 필요하다. 페이스메이커로서 한국을 지금 결코 나쁜 위치에 있지 않다.

박형주 전 VOA 기자, <트럼프 청구서> 저자

※ 외부 필진 기고는 CBS노컷뉴스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0

0

실시간 랭킹 뉴스

오늘의 기자

※CBS노컷뉴스는 여러분의 제보로 함께 세상을 바꿉니다. 각종 비리와 부당대우, 사건사고와 미담 등 모든 얘깃거리를 알려주세요.

상단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