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리블하는 이기혁. 연합뉴스한국 축구대표팀의 정신적 지주 역할을 맡은 한덕현 코치(중앙대 의대 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가 수비수 이기혁(강원)의 단단한 멘털을 치켜세웠다.
북중미 월드컵이 낳은 새로운 스타 이기혁은 체코와의 조별리그 1차전에서 스리백의 왼쪽 스토퍼로 선발 출전해 한국의 2-1 역전승에 발판을 놓았다. 실점 장면에서 약간의 아쉬움을 남기기도 했으나, 경기 내내 A매치 경험이 적은 신예답지 않게 대범하고 노련한 경기 운영을 선보였다.
16일(한국시간) 멕시코 과달라하라 인근 사포판의 치바스 바예 베르데 훈련장에서 만난 한 교수는 "이기혁과 처음 면담할 때 긴장한 기색을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큰 무대를 앞두고 떨리는 것이 자연스러운 상황임에도 담담한 모습에 놀랐다"고 털어놨다. 이어 "기대를 많이 했는데 실제 경기에서도 제 몫을 완벽히 해냈다. 스스로 준비를 철저하게 한 덕분"이라고 칭찬했다.
한 교수는 미국 솔트레이크시티 전지훈련부터 대표팀에 합류해 선수단의 심리적 안정을 이끌고 있다. 송준섭 대표팀 수석주치의는 "이번 대회에서 처음으로 정신과 전문의를 의무팀에 포함했다"며 "건강한 정신에서 건강한 육체가 나온다는 홍명보 감독의 철학에 따라 한 교수가 합류하면서 선수들이 심리적으로 큰 안정을 얻었다"고 설명했다.
한 교수는 인터뷰 내내 대표팀의 체계적인 준비 과정과 선수들의 강인한 정신력에 강한 신뢰를 보였다. 그는 "스포츠 정신의학 분야에 25년 넘게 몸담으며 야구와 올림픽 축구 등 수많은 대표팀을 지켜봤지만, 이번 팀은 확실히 특별하다. 한마디로 '되는 팀'의 분위기를 갖췄다"며 자신감을 드러냈다. 외부의 시선이나 평가와 무관하게, 팀이 내부적으로 다져온 과정을 보며 확신을 얻었다는 뜻이다.
이러한 자신감의 배경에는 빈틈없는 전략과 대비가 있었다. 한 교수는 "외부에서 상상하기 어려울 만큼 코칭스태프 회의가 정교하게 돌아간다. 심리 관리를 위해 회의에 동석하는데, 체코전을 준비하며 발생 가능한 모든 시나리오를 검토하는 모습에 감탄했다. 전략, 전술, 심리적 대비가 삼박자를 이뤘기에 역전승이라는 결과를 낼 수 있었다"고 강조했다.
선수들이 보여준 의연한 태도에도 박수를 보냈다. 한 교수는 "1차전을 앞두고 중압감을 느끼는 선수가 있을까 염려했으나 기우에 불과했다. 이기혁을 포함한 선수들이 놀라울 만큼 평정심을 유지했다. 정신의학적 상식이 깨지는 흥미로운 경험을 하는 중"이라고 전했다. 일방적인 홈 관중의 응원이 예상되는 멕시코와의 2차전을 앞두고도 정작 긴장하는 쪽은 선수들이 아닌 한 교수 자신뿐이었다.
한 교수는 "많은 관중 앞에서 위축되지 않겠냐고 슬쩍 물었더니, 선수들이 오히려 나를 위로하며 걱정하지 말라고 웃어 보이더라. 유럽 무대 등 큰 경기 경험이 풍부한 선수들이 많아 대규모 관중의 야유나 압박에도 쉽게 흔들리지 않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완벽한 준비를 마친 한 교수는 다가오는 멕시코전에서도 특별한 지시 없이 선수들에 대한 믿음을 이어갈 계획이다. 한 교수는 "1차전 직전 찾아온 선수들에게 '그저 평소 하던 대로만 하자'고 이야기했다. 과도하게 힘을 줄 필요 없이 준비한 만큼만 보여주면 된다고 마음을 열어줬다"며 "멕시코전 역시 같은 마음이다. 선수들이 이미 충분히 잘해내고 있는 만큼, 하던 대로 본연의 실력을 발휘해주길 바란다"고 격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