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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명관 "재벌 선망의 시대…문학에서 서민이 사라졌다"[현장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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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만의 장편소설 '아코디언' 출간
폐허의 서울에서 피어난 생존과 연대

천명관 작가가 17일 서울 마포구 서교동 창비에서 열린 장편소설 '아코디언' 출간 기념 기자간담회에서 질문에 답하고 있다. 창비 제공천명관 작가가 17일 서울 마포구 서교동 창비에서 열린 장편소설 '아코디언' 출간 기념 기자간담회에서 질문에 답하고 있다. 창비 제공
"예전에는 문학이나 드라마에 골목길 사람들, 서민들의 이야기가 있었고 그 공감을 통해 세상의 온기를 느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직업이나 재력의 선망의 시대가 됐습니다."

장편소설 '고래'로 2023년 인터내셔널 부커상 최종 후보에 올랐던 천명관 작가가 10년 만의 신작 장편소설 '아코디언'으로 돌아왔다.

천 작가는 17일 오전 서울 마포구 창비서교빌딩 50주년홀에서 열린 출간 기자간담회에서 "요즘 하위 주체들의 이야기는 이제 어디에서도 잘 다뤄지지 않고, 오히려 격리해야 할 존재처럼 그려지는 경우가 많다"며 "결국 서로 공감하고 함께 이겨내지 않으면 방법이 없는데, 증오와 혐오만 커지는 상황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아코디언'은 한국전쟁 직후 1950년대 서울을 배경으로 한 장편소설이다. 해방촌 산자락의 움막, 동대문과 명동 거리, 미군 기지촌과 극장가를 오가는 앵벌이 아이들의 생존기를 그린다.

주인공 동이는 피난길에서 엄마의 손을 놓친 뒤 거리의 고아가 된다. 그는 '양 목사'가 거느리는 앵벌이 움막에 떠밀려 들어가고, 정류장과 지하도, 백화점 앞에서 깡통을 앞에 두고 하루를 견딘다. 앞을 보지 못하지만 노래를 부르는 연이, 걷지 못하지만 상황을 읽는 거북이, 한 팔을 잃은 깜상, 미군 기지촌을 오가며 생존술을 익힌 미키 등 상처를 지닌 아이들이 동이의 곁에 모인다.

천 작가는 이 작품을 두고 "한국전쟁에 관한 이야기를 쓰고 싶다는 욕망이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전쟁은 한국 사회의 지형을 만든 근원적인 사건이고, 우리는 여전히 그 자장 안에 살고 있다고 생각한다"며 "전쟁이라는 거대한 사건 속에서 가장 비참한 밑바닥에 놓인 아이들에게 마음이 끌렸다"고 설명했다.

천명관 작가가 17일 서울 마포구 서교동 창비에서 열린 장편소설 '아코디언' 출간 기념 기자간담회에서 질문에 답하고 있다. 창비 제공천명관 작가가 17일 서울 마포구 서교동 창비에서 열린 장편소설 '아코디언' 출간 기념 기자간담회에서 질문에 답하고 있다. 창비 제공
작품은 오래된 구상에서 출발했다. 천 작가는 "'고래'를 쓰고 난 뒤 떠올린 아이디어 중 하나였다"며 "처음에는 지금보다 훨씬 방대한 3부작을 구상했고, 스타일도 전혀 달랐다"고 말했다.

그는 과거 '길의 노래'라는 제목으로 연재했던 원고를 다시 붙잡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고 했다. 영화 작업 등으로 공백이 생겼고, 시간이 흐르며 작가의 감각도 달라졌다.

천 작가는 "다시 원고를 보니 예전의 현란한 이야기 방식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며 "1000매가 넘는 원고를 300매 정도로 줄이고, 전체 구상과 문체를 바꿨다"고 말했다. 이어 "처음부터 쓰는 것보다 개작이 더 힘들었다"며 "제가 쓴 책 중 가장 지난한 과정을 거친 작품"이라고 했다.

제목이 된 아코디언은 작품 속에서 동이의 운명을 바꾸는 사물이다. 낡고 붉은 아코디언을 손에 넣은 동이는 단 한 번 들은 노래도 손끝으로 되살려내는 재능을 발견한다. 깡통 앞에 엎드려 있던 소년은 아코디언을 어깨에 메고 거리로 나서고, 구걸은 어느 순간 거리 공연이 된다.

천 작가는 "아코디언은 거리의 악기라는 이미지가 있다"며 "이동할 수 있고, 베이스와 멜로디가 함께 있는 풍부한 악기"라고 말했다. 그는 "아코디언 소리에는 아련함과 슬픔이 있다"며 "작품 안에서 아코디언은 생의 의지, 죽음의 반대편에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창비 제공창비 제공
소설 곳곳에는 '럭키 서울', '목포의 눈물', '슈샨 보이', '홍콩아가씨', '베사메무쵸' 등 1950년대 대중가요의 제목과 정서가 배어 있다. 천 작가는 "그 노래들은 제 세대의 노래는 아니지만 어머니가 들려주던 노래였다"며 "그 시대 노래만큼 민중의 삶과 밀착한 노래는 없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상처와 트라우마뿐 아니라 익살, 아이러니, 미지의 세계에 대한 동경이 그 노래 안에 있었다"며 "이 작품은 그 시대 노래에 바치는 헌사이기도 하다"고 덧붙였다.

'고래'의 환상성과 달리 '아코디언'은 리얼리즘에 가까운 작품이다. 천 작가는 "'고래'를 쓸 때는 제 머릿속 상상력이 뻗어나가는 대로 둔 이야기였다면, 이번 작품은 현실의 부조리와 착취, 불평등을 담은 이야기"라며 "뻗어나가는 상상력을 의식적으로 가두려 했다"고 말했다.

다만 과거 리얼리즘 문학의 방식과는 달라야 한다고 봤다. 그는 "리얼리즘 문학이 오래 유효하지 않게 된 데에는 독자들의 요구가 달라진 측면이 있다"며 "이 소설도 지루하지 않게 쓰려고 했다. 미스터리와 장르적 요소도 들어 있다"고 했다.

천 작가는 자신을 "현실의 부조리를 쓸 수밖에 없는 작가"라고 말했다. 그는 "사회의 아픔과 부조리를 담아낼 수밖에 없다"며 "서로 다르지 않구나, 누구나 고민과 결핍이 있구나 하는 감각을 느끼게 하는 것이 문학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창비 제공 창비 제공 
2023년 '고래'가 인터내셔널 부커상 최종 후보에 오른 데 대해서는 "인생에서 가장 재미있는 해프닝이었다"고 돌아봤다. 그러면서도 "앞으로도 소설을 계속 쓸 것"이라며 "집필 일정이 밀려 있어 바쁘게 보낼 것 같다"고 말했다.

천 작가는 독자들에게 "'아코디언'의 결이나 마음을 함께 느꼈으면 좋겠다"며 "책이 제 손을 떠난 뒤 어떻게 읽힐지는 알 수 없지만, 이 이야기에 담긴 마음을 같이 느껴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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