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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明 사신, 美 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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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묘 정전. 국가유산청 궁능유적본부 제공종묘 정전. 국가유산청 궁능유적본부 제공
명나라가 조선에 요구한 조공 품목은 금과 은, 놋그릇, 사냥매와 동물 가죽, 옷감, 도자기 등이었다. 그러나 명이 집요하게 요구한 조공이 따로 있었으니, 바로 '사람'이었다.

조선왕조실록에 따르면 태종 7년 8월 6일 중국 사신이 태종에게 전한 황제의 칙서 내용은 이렇다.

'짐이 안남(安南)에서 화자(火者·거세한 소년) 3천을 데려왔으나, 모두 우매하여 쓸 데가 없다. 오직 조선의 화자가 명민(明敏)하여 일을 맡겨 부릴 만하다.'
 
화자 외에 명나라가 요구한 인간 공물은 처녀들이었다. 조선왕조실록 태종 9년 5월 3일 기록에서 명나라 황제는 '지난해 너희가 데리고 와서 바친 여자들은 살찐 것은 살찌고, 마른 것은 마르고, 작은 것은 작아서 모두 매우 좋지 못하였다'고 평했다.
 
명나라의 처녀, 화자 요구는 세종에게는 큰 고민이었다. 즉위 9년 7월 세종은 '어제 처녀들이 (명나라에) 갈 적에 어미와 자식이 서로 이별하게 되니 그 원통한 것은 이루 말할수 없었다. 그러나 이 일은 국내의 이해(利害)에만 관계되는 것이 아니라 외국에 관계되어 조정 신하들의 비교가 아니므로 간할 수도 없고 다만 영(令)만 따를 뿐'이라고 밝혔다. 인신 공납은 가슴 아프지만 강대국의 횡포를 받아들이는 것이 유일한 생존 방법이라는 약소국 군주의 현실 한탄이었다.
 
명나라에 끌려간 처녀들은 황제의 후궁으로 살다가 순장되거나 '부엌데기'로 일생을 보냈다. 화자들은 환관이 됐다. 이들 가운데 일부는 명나라 사신이 돼 조선에 자주 파견되기도 했다. 말이 통하고 조선 사정에 밝아 조공을 뜯어내기에 안성맞춤이었다. 하지만 황제를 등에 업은 사신들의 행실은 좋지 못했다. 조공 외에 뇌물을 요구하거나 친인척에 관직을 내릴 것을 압박했다. 황해도 출신 윤봉이 대표적이다. 그는 조선 전기에 13차례나 사신으로 파견됐다. 올 때마다 2~3달씩 조선에 머물며 하루가 멀다 하고 놋그릇과 가죽, 도자기 등 각종 물품을 요구했다. 친인척 50여명에게 관직을 내리도록 압박했고 증조부까지 3대 추존을 요구해 관철시켰다. 명으로 복귀할 때에는 배웅 나온 조선 관리에게 황해도 고향집을 다시 지어달라며 설계도를 건네기도 했다. 윤봉과 함께 파견된 사신 창성(昌盛) 또한 탐욕스러웠다. 세종은 '창성은 욕심껏 구하기를 싫어하지 않기 때문에 청하는 것이 매우 많다. 비록 처녀와 응견(鷹犬, 사냥매와 사냥개)의 명목으로 왔지만 실상은 모리(謀利)하기 위하여 온 것이며, 탐내고 욕심 부리는 것이 윤봉보다도 심하다'고 개탄했다.
 미셸 스틸 주한미국대사가 지난달 30일 인천국제공항 제2여객터미널을 통해 입국하며 인사하고 있다. 미셸 스틸 대사 왼쪽은 남편 숀 스틸 변호사. 연합뉴스미셸 스틸 주한미국대사가 지난달 30일 인천국제공항 제2여객터미널을 통해 입국하며 인사하고 있다. 미셸 스틸 대사 왼쪽은 남편 숀 스틸 변호사. 연합뉴스
최근 주한 미국 대사로 임명된 미셀 박 스틸 대사가 한국으로 부임했다. 1년 이상 비어있던 미국 대사 자리를 채운다는 점에서 환영한다. 특히 그는 한국에서 태어나 20세 때 미국으로 이민 간 한국 출신이어서 더 큰 환영을 받는 듯하다. 그만큼 기대도 크다.
 
그러나 그의 과거 정치 행보를 보면 마냥 환영하기도 찜찜하다. 명나라 사신처럼 뇌물이나 사익을 추구할 리는 없겠지만 미국의 이익을 위해 다른 나라의 주권까지 침해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기 때문이다.
 
스틸 대사는 한국 출신이지만 국적은 미국이며 정치 성향은 '마가'로 일커어지는 미국 우선주의자다. 북한과 중국에 대한 입장도 강경하다. 자유로운 세계 무역과 남북 통일, 동북아 평화 안정을 추구하는 한국 정부와 부딪칠 부분이 많아 보인다. 국내 극우 세력과 교류하며 내정까지 간섭할 수 있다는 걱정을 하는 사람도 있다.
 
스틸 대사는 한국에 일고 있는 이런 우려를 잘 헤아려 처신해야 한다. 미 트럼프 행정부가 무리한 요구를 거듭해도 한국의 대통령과 관료들은 세종처럼 고민 끝에 이를 받아들일 수 있겠지만 한국민들은 점점 미국에 등돌릴 수 밖에 없다. 그럴수록 한국 출신 스틸 대사에 대한 야속한 감정은 커지기 마련이다.
 
스틸 대사는 한국 입국 직후 '한미 간 협력을 기대한다'고 밝혔다. 진정한 협력은 상호 호혜적이어야 한다. 일방적인 압박으로는 항구적 협력을 이룰 수 없다. 한미 관계가 악화되지 않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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