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글 싣는 순서 |
①"얘를 어디다 놓지"…1998년, 7명의 여경이 들은 말 ②경찰이야 아줌마야?" 그래도 여경은 현장을 지킨다 ③여경 37.8% 시대… 남녀 통합선발 시작, 그 다음은? |
1998년, 신임 경찰관 중 여성은 단 7명이었다. 그중 한 명이었던 김세령 경감(이하 계급 생략). 25살이었던 김세령은 약 30년이 흐른 지금까지도 입직 당시의 충격을 또렷하게 기억한다."'얘(여자)를 어디다 놓냐?'고 하더라고요. '배치'라는 단어도 쓰지 않았어요. 현장에 발령됐을 때, 마치 '짐짝' 같은 대우를 받았어요."
짐짝 취급은 기본, 외모 평가가 덤으로 따라왔다. 지휘부에 신고식을 하던 날 선배들은 김세령과 여경들의 얼굴을 훑었다. "네가 제일 낫다". 김세령의 동기는 칭찬의 탈을 쓴 평가를 들어야만 했다. 그 순간 김세령은 본능적으로 생각했다. 어떻게든 생존해야 한다고.
유엔 평화유지군(UN PKO) 파견 당시 김세령 경감의 모습. 김세령 경감 제공
모든 사람에게 잘하려고 안간힘을 쓰며 1년을 버티던 어느날, 전주행 버스에 몸을 실은 채 창밖을 멍하니 바라보던 김세령은 "너무 지친다, 너무 피곤하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내가 연예인인가? 내가 왜 모든 사람에게 잘 보여야 하고, 내가 왜 모든 사람한테 인정을 받아야 하지?" 끊임없이 자신의 능력과 존재가치를 증명해야 하는 삶은 너무도 피로했다.
28년이 지난 2026년에도 현장의 여경들은 여전히 심판대에 오른다. 2019년 이른바 '대림동 여경 논란'을 시작으로 '여경의 자격'은 끊임없이 심판받고 있다. CBS 씨리얼은 29년차 여경 김세령(경찰인재개발원 교수요원・경찰젠더연구회장)을 만나 여경무용론의 역사를 들어봤다.
"얘를 어디다 놓지?"…30년 묵은 '여경 무용론'

1990년대의 여경들이 마주한 것은 조직 밖의 혐오가 아닌 조직 안의 차별이었다. 조직은 여경에게 끊임없이 증명을 요구했다. 김세령은 여경 선배가 승진해서 나간 자리로 들어갔을 당시, 남성 동료로부터 여경 선배에 대한 평가를 가감없이 들었다고 한다. "여경 선배랑 계속 비교를 하더라고요. '그 선배는 이렇게 했는데, 그래도 너가 나아' 이런 말을 계속 해요. 그러면 저는 또 어떻게든 인정을 받으려고 하죠". 김세령은 이를 "우리 조직이 여경한테 가하는 가스라이팅"이라고 표현했다.
김세령을 포함한 여경들 앞에는 늘 두 가지 잣대가 놓여있었다. 김세령은 "경찰로서의 역할을 잘 해야 했고, 동시에 '여성'으로서의 역할도 잘 해내야 했다"며 "그러다보니 여성성을 지우려고 했던 것 같다. 어차피 두 가지 잣대를 전부 충족시킬 수 없으니, 내 개인의 목소리를 지우는 방식으로 인정받으려 노력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실제로 어느 순간부터 김세령은 화장을 하지 않기 시작했고, 웬만한 남자보다 훨씬 짧은 길이의 머리를 유지했다. 여경이 아닌 경찰로 살아남기 위한, 김세령만의 생존법이었다.
그럼에도 머릿속엔 늘 물음표가 떠있었다. "김세령이 잘못하면 그냥 김세령이 잘못한 걸로 평가를 받아야 하는 거 아닌가요? 그런데 김세령이 잘못하면 여경 전체가 잘못하는 게 돼요. 그러면 모두가 위축되죠."

여경 무용론에 불이 붙은 계기는 2019년 벌어진 이른바 '대림동 여경 논란'이었다. 경찰을 폭행하는 취객들을 진압하는 과정에서 여경이 무전으로 도움을 요청하는 장면을 편집한 영상이 온라인에 퍼지자, 여경은 필요없다'는 여론이 힘을 입기 시작했다. 경찰이 원본 영상을 공개하며 '매뉴얼대로 대응한 것'이라고 입장을 밝힌 이후에도 여경 무용론은 쉽게 사그라들지 않았다.
2021년 양평 흉기난동 사건 당시에도 '출동한 여경이 엄마를 외치며 도망갔다'는 논란이 일었다. 사실이 아니었으나, 사실관계와 무관하게 비난은 거세졌다. 같은해 인천 층간소음 흉기난동 사건 당시에도 출동한 남경과 여경이 모두 현장을 이탈했지만 비난은 오롯이 여경을 향했다.
여경 무용론은 현재 진행형이다. 지난 6월에도 '수원 인계동 여경 영상'이 퍼지며 여경의 현장 대응이 적절하지 못했다는 비난이 쏟아졌다. 차별과 혐오의 대를 끊고 싶었던 김세령의 마음과 현실은 달랐다.
증명하는 삶 대신,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하지만 차별과 혐오는 오히려 김세령의 동력이 됐다. 증명하려 애쓰는 삶 대신, 애써 지웠던 자신의 목소리를 다시 내기 시작했다. 김세령은 "그간 겪은 어려움들이 실은 내가 스스로 목소리를 내게끔 한 동기가 된 것 같다"며 "스스로 목소리를 내고 여경들끼리 연대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말했다.
목소리를 낼 수 있게 해준 것은 함께 힘을 보태준 여경들이었다. 2017년 경찰개혁위원회 인권분과 논의 과정에서 태동한 '경찰젠더연구회'는 조직 내에서 겪어온 차별과 경험을 나누는 10명 남짓 규모의 모임에서 시작됐다.
연구회 소속 여경들은 조직 내 성평등 문제부터 스토킹·데이트폭력 등 젠더폭력 대응, 성차별 관행 개선 등을 위한 학습과 연구를 진행하고, 함께 목소리를 낸다. 김세령은 2023년부터 회장직을 맡아 연구회를 이끌고있다. 이제는 100명이 넘는 여경들이 함께하고 있다.
유엔 평화유지군(UN PKO) 파견 당시 김세령 경감과 동료들의 모습. 김세령 경감 제공
김세령이 '여'경으로서의 삶에만 열중한 것은 아니다. 여'경'으로서의 삶에도 열심이었다. 김세령은 2014년부터 약 3년간 아프리카 유엔(UN)에서 평화유지군(PKO)로 활약했다. 힘도 곧잘 썼다. 현장에서 강간범도, 현행범도 잡아냈다. 한국에서는 여경이라는 이유로 순찰팀 근무조차 쉽지 않았지만, 뒤늦게 찾아온 현장에서도 김세령은 경찰로서 자신의 역할을 해냈다.
김세령 뿐만 아니라, 김세령의 동료 여경들도 마찬가지다. 김세령은 대구경찰청 소속 곽미경 경정의 이야기를 기억한다. 김세령은 "과거 곽미경 선배의 지역에서, 피의자가 수갑을 찬 상태로 도주하는 일이 있었다고 한다. 검거 작전이 시작됐지만 그곳의 유일한 여경이었던 선배는 '너는 집에 가'라며 배제됐다"면서 "홀로 동네를 돌던 선배는 골목에서 손목에 수건을 돌돌 만 채 담배를 피는 사람을 발견했고, 수상함을 감지한 끝에 검거에 성공했다"고 전했다.
김세령은 "선배의 예리한 관찰력 덕분에 가능했던 일"이라며 "수사는 단서를 찾고 해석하는 일인 만큼, 다양한 관점이 필요하다"며 "경찰조직은 남성으로만 이루어지거나 하나의 특성으로만 이루어지면 안된다"고 덧붙였다.
"여경이라는 존재, 이 존재를 없앤다고 없앨 수가 없어요. 역사적으로도 그렇고 이미 현존해 있어요. 없앨 수가 없다니까요. 이 당연히 있는 존재들에 대해서 '필요 없다'라고 얘기하기보다는, 우리한테 요구해줬으면 좋겠어요. 여경한테 '나는 이런 여경을 원해. 그러니까 너희들 이 역량을 좀 키워줘' 라고요. 그러면 우리가 열심히 키워 볼게요."여전히 김세령은 후배 여경들을 보면 마음이 아프다. "지금 젊은 여경들은 저보다 훨씬 힘들죠. 왜냐하면 그 친구들은 경찰 조직 내에서만 싸우는 게 아니라 밖에 나가서 시민들의 시선을 그대로 받아들여야 하는 거잖아요 현장에서. 그래서 그게 참 안타깝고 그래요."
조직 내 차별은 이제 조직을 넘어선 혐오로 번졌다. 1998년, '네가 제일 낫다'던 그날의 평가가 아직 끝나지 않은 것. 2026년, 현장의 여경들은 어떤 모습의 차별과 혐오를 마주하고 있을까.
(2편에서 계속)영문기사 보기 (View English Artic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