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글 싣는 순서 |
①"얘를 어디다 놓지"…1998년, 7명의 여경이 들은 말 ②"경찰이야 아줌마야?" 그래도 여경은 현장을 지킨다 ③여경 37.8% 시대… 남녀 통합선발 시작, 그 다음은? |
"아 경찰이야? 난 또 옆집 아줌마인 줄 알았어. '경!찰!' 이렇게 (머리에) 붙이고 다녀 (웃음)".광화문 집회 현장에서 도로 통제를 하던 12년차 여경 정선영 경사(이하 계급 생략)가 집회 참가자인 중년 남성에게 들은 말이다. 정선영은 "아 서운해, 그런 말 하면 어떡해요. 아줌마 소리 너무 오랜만에 듣는다"고 받아쳤다.
넉살 좋게 대응하는 정선영에게 중년 남성은 다정한 말도 덧붙인다. "수고 많아요". 조심하라고 걱정까지 해준다. 2026년, 경찰 조직 밖으로 번진 여경에 대한 차별은 보다 진화한 모습이었다. 혐오는 일상에 스근히 스며들었고, 때로는 농담을 때로는 호의를 가장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CBS 씨리얼은 만연해진 혐오를 버텨내고 있는 서울 종로경찰서 경비과 소속 여경 3명의 하루를 따라가봤다.
"여경 못버틸 걸?" 남경들 나가고 혼자 남았다

지난 7월 25일, 서울 종로경찰서 경비과 소속 정선영과 박수현 경장(이하 계급 생략), 김예지 순경(이하 계급 생략)은 어김없이 주말 광화문 집회 현장에 투입됐다.
경비과의 여경들에게 강인한 체력은 필수다. 집회 참가자들을 통제하기 위한 폴리스라인(PL) 설치부터 차로 통제를 위한 라바콘 설치까지, 계속해서 '힘'을 써야만 한다. 소음측정기와 풍향계, 모니터를 계속해서 주시해야 하기에 집중력도 필수다. 집시법을 위반하는 집회 참가자가 나타날 경우, 바로 출동해 명령을 내리고 상황을 통제해야 하기 때문에 한시도 긴장을 놓을 수 없다.
낮 최고기온이 32도에 달하던 날이었지만, 3명의 여경은 끄떡 없었다. 막내 김예지는 한시도 가만있지 않고 집회 현장을 돌아다녔고, 박수현은 뚫어져라 소음측정기와 풍항계, 모니터를 바라보며 긴장을 늦추지 않았다. 최고참인 정선영은 후배인 박수현과 김예지에게 힘을 북돋아주며 현장을 진두지휘했다.

정선영은 "경비 업무를 한지는 5년 정도 됐다. 현재는 대테러 작전 업무를 하고 있다"며 "여전히 여경은 경비에 안 맞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아직도 있고, 경비는 여경이 못 버티는 곳이라고 얘기를 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이어 "그런데 지금 종로경찰서 경비과에는 여경이 3명 있다"며 "처음 왔을 때는 혼자였는데, 그에 비해서 아주 행복한 일상을 보내고 있다"고 말하며 웃었다.
정선영은 옆에서 채증 업무를 하던 박수현을 가리키며 "이 친구(박수현)도 그런 얘기를 듣고 왔다. '너는 못할 거라고, 오래 못 하고 나갈 거다'라는 말을 듣고 왔다"며 "그런데 그때 들어온 남경들 다 나갔는데 얘만 남았다"고 설명했다.

물론 좋은 일만 있는 건 아니다. 현장에 나가기 전엔 항상 굳은 각오가 필요하다. 정선영은 "기본적으로 여경이 왜 필요하냐는 말을 듣는다"며 "어떤 이슈가 딱 터지면 현장 나갈 때 욕을 먹을 각오를 하고 나가야 한다. 이유는 없다. 왜냐? 여경이라서"라고 토로했다.
정선영은 '여경이라' 욕을 먹는 데는 이미 이골이 났다. 욕을 먹는 정선영이 걱정하는 건 자신의 마음, 자신의 상처가 아니다. "여경이라서 욕을 먹을 각오를 하고 현장에 나가는 것 자체가…경찰관이 자신의 업무를 더 잘해야 되는데, 욕을 먹을까봐 위축되는 것이 과연 국민들한테 좋을까요?".
여경 욕하면, 치안 나아지나요?

정선영의 우려처럼, 여경에 대한 차별과 혐오는 여경을 위축시켜 결국 치안에 악영향을 준다. 경찰대학교 한민경 교수와 김세령 경감(경찰인재개발원 교수요원)의 연구에 따르면, 여경에 대한 차별과 혐오는 여경의 조직만족도에 영향을 미친다. 국가인권위원회가 지난 2014년 여경 484명을 대상으로 조사를 진행한 결과, 70%의 여경이 '업무 중 무시당한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이러한 경험(직무수행 중 불인정 경험)은 조직만족도에 영향을 미친다. 차별과 혐오를 겪은 경험이 있는 여경들의 조직만족도는 평균 3.51점인데 비해, 그러한 경험이 없는 여경들의 조직만족도는 평균 3.78점으로 보다 높았다. 차별과 혐오 경험이 여경의 조직만족도를 약 10% 낮춘 셈이다.
김세령은 "조직 만족도가 떨어지면 당연히 조직과 업무에 대한 몰입도가 떨어지고,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굉장한 의문을 가지게 된다"며 "위축됨으로 인해 소극적으로 업무에 대응하게 되고 조직 내에서의 업무 역량이 전반적으로 떨어질 수가 있고, 그렇게 되면 자연히 치안 서비스에 곧바로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분석했다.
한민경 교수 또한 "'내가 왜 굳이 이 일을 해서 이런 평을 듣고 있을까'라는 자괴감을 계속 가지고 일을 하는 사람이 조직 만족도가 높기를 기대하기 어렵다"며 "그러한 사람이 맡고 있는 조직에서의 업무가 국민을 대상으로 하는 대외적인 업무인데, 그렇게 되면 국민에 대한 서비스가 질적으로 좋기를 기대하기는 어렵지 않을까 싶다"고 주장했다.
한 교수는 "이는 조직 안에 있는 여성 경찰관들을 한층 더 웅크리게 하고 자신의 역량을 충분히 발휘하지 못하게 하는 어떤 면에서는 집단적 괴롭힘"이라며 "이런 상황에서 업무에 집중하거나 높은 정도의 서비스가 계속해서 유지되는 것을 기대하기는 어렵지 않을까"라고 덧붙였다.
정선영 또한 "'여경이라서'라는 의심을 하기 시작하면 현장에 나갔을 때 저희도 위축이 된다"며 "내가 자신 있게 나가는 현장도 약간 어떤 큰 이슈가 있을 때는, 내가 나가면서도 무슨 말을 들을지 겁이 난다"고 토로했다.

차별과 혐오의 타깃이 되어버린 여경들. 그럼에도 그들은 묵묵히 맡은 바를 다했다. 전날 당직을 해 밤을 새고도 그날 오후까지 집회 현장을 지키던 김예지는, 집회가 끝나자 제 몸보다 큰 PL을 거뜬히 정리했다. 얼굴에는 땀방울이 송골히 맺혀 있었지만, '힘들지 않냐'는 질문에 김예지는 고개를 저으며 웃었다.
정선영은 "나는 몰라도 내 동생들, 내 후배 여경들은 이런 노동(인터뷰)을 겪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여경이라는 이유로 걱정하시지는 않아도 돼요. 경찰관의 일이라는 것이 성별로서 판단되는 일이 아니고, 우리 모두 남녀가 같은 마음으로 같은 사명을 가지고 일을 하고 있어요. 그러니까 그런 의심이나 우려를 조금 뒤로 미뤄주시고, 오히려 우리 경찰을 기대해 주셨으면 좋겠어요."

이날 이들은 경찰관이라면 응당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지만, '여경'에게는 이 평범한 하루조차 때로는 '여경도 할 수 있다'는 증거가 된다. 올해 처음 남녀에게 같은 기준을 적용한 순경 통합선발 제도 실시 결과, 최종 합격자 중 여성의 비율은 37.8%를 차지했다. 하지만 같은 시험을 통과한 여경들마저도 '증명'하기를 요구받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증명을 요구하는 대신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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